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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시민단체가 정부 돈·요직의 통로가 된 비정상 사회

중앙일보 2020.06.09 00:04 종합 30면 지면보기
윤미향 의원이 운영을 맡았던 정의기억연대(정의연)와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에 지난 5년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예산 19억원이 흘러갔다. 공개된 자료로는 그중 수억원의 행방을 확인할 수 없다. 서울시는 남산에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를 세우며 정의연에 수천만원을 지급했는데, 비에 새겨진 명단에서 정의연과 불편한 관계에 있었던 피해자들 이름이 빠져 있는 것이 최근 확인됐다. 그 명단을 정의연이 만들었다. 공적인 돈이 투입된 사업이 부실하고 편향되게 이뤄졌다는 점은 이용수 할머니의 폭로로 윤 의원과 정의연의 활동이 주목받지 않았다면 영원히 감춰졌을 수도 있다.
 

정의연 지원 19억원 중 상당액 행방 묘연
정부 돈에 의지하는 무늬만 시민단체 속출
청와대도 시민단체 활용 방식 되돌아봐야

정의연이 이처럼 정부로부터 많은 돈을 받았다는 것을 국민 대부분은 몰랐다. 피해자 해외 방문, 집회 개최 등의 계기가 생길 때마다 후원자를 모으고 모금을 했기에 시민 성금으로 운영되는 단체로 생각한 국민이 많았다. 또 정의연이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정부와 갈등을 빚은 적이 많았기에 가급적 정부 돈이 아니라 그들과 뜻을 함께하는 시민의 후원으로 활동하리라고 짐작한 이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꾸준히 정부 지원을 받고 있었다. 정부나 지자체는 위안부 문제를 등한시한다는 비판을 면하기 위해, 또는 관심을 표시하는 전시행정을 위해 세금을 쓴 뒤에 제대로 쓰였는지는 들여다보지도 않았다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정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3만7000여 시민사회단체가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을 받았다. 대부분 정부·지자체 사업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보조금이나 용역 대금을 수령했다. 참여연대 등 몇몇 대규모 시민단체는 정부 돈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이를 실천하고 있으나 대다수 단체는 공적 자금에 의지하고 있다. 권력과 자본의 횡포를 감시하겠다며 만든 단체가 기업체의 돈을 받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수익사업’을 하는 것인지, 시민단체 활동을 하는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지경에 놓인 곳도 많다.
 
시민단체는 관직 진출의 통로가 되기도 했다. 과거에도 있었던 현상이지만 현 정부가 들어선 뒤 부쩍 사례가 늘었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출신들이 청와대·정부·여당으로 줄줄이 갔다. 여성단체와 환경단체 출신들도 정부 내 요직을 차지했다. 각종 정부 위원회의 사정도 비슷하다. ‘조국 사태’나 윤 의원 문제에 주요 시민단체들이 옹호나 침묵의 태도를 보인 것은 이런 현상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현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 탈원전, 유화적 북한 접근 등의 이념지향적 정책을 펼칠 때마다 시민단체들을 호위부대로 삼았다. 정책 입안자 중 상당수가 관련 단체 출신들이기도 하다. 어제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정의연) 논란은 시민단체의 활동 방식이나 행태에 대해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청와대와 정부도 시민단체의 존재 의의와 올바른 활용 방식에 대해 되돌아봐야 한다. 돈과 자리로 시민단체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면 권력과 시민사회의 건강한 긴장은 당장 허물어진다. 시민단체를 관변단체로 만들어 늘 비판 대신 박수가 쏟아지게 하면 권력의 타락에 대한 조기 경보음은 영원히 실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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