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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경기’ 김영광은 지금 동체시력 강화 중

중앙일보 2020.06.09 00:03 경제 6면 지면보기
7일 대구전에서 프로축구 통산 5번째로 500경기 출전 금자탑을 세운 김영광. 대기록 뒤엔 남몰래 흘린 피·땀·눈물이 있었다. 김성룡 기자

7일 대구전에서 프로축구 통산 5번째로 500경기 출전 금자탑을 세운 김영광. 대기록 뒤엔 남몰래 흘린 피·땀·눈물이 있었다. 김성룡 기자

“이겼다면 좋았을텐데…. 그래도 기쁩니다. 아무나 세울 수 없는 기록이잖아요.”(웃음)
 

2002년 데뷔 18년 만에 기록 달성
7일 대구전서…프로축구 5번째
매일 4~5시간 지옥 훈련은 기본
“라면 한 봉지당 한 골” 자기관리

경기 내내 굳어 있던 베테랑 골키퍼 김영광(37·성남FC)의 표정은 종료 휘슬이 울린 뒤에야 펴졌다. 김영광은 7일 성남 탄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20시즌 K리그1(1부리그) 5라운드 대구FC와 홈경기에 선발 출전했다. K리그 개인 통산 500경기 출장. 프로축구 38년 역사를 통틀어 다섯 번째 나온 대기록이다. 김영광에 앞서 500경기 고지에 오른 선수는 김병지(은퇴·706경기), 이동국(전북·540경기), 최은성(상하이 선화 코치·532경기), 김기동(포항 스틸러스 감독·501경기) 등 4명 뿐이다.
 
김영광은 이날 등번호 ‘500’이 새겨진 특별 유니폼을 입고, 양 팀 선수들의 박수를 받으며 그라운드에 올랐다. 하지만 활짝 웃지 못했다. 소속팀 성남이 1-2로 졌기 때문이다. 개막 5경기만에 첫 패(2승2무). 경기 후 김영광은 “존경하는 (김)병지 형님도 500번째 경기에서 4골이나 먹었다. 실점하고 진 것 때문에 우울하진 않다. (정)성룡이, (김)승규, (유)현이 등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골키퍼들을 비롯해 (이)청용이 등 국가대표 생활을 함께 한 선후배들에게 축하 메시지를 받았다. ‘기록’이라는 게 좋긴 하더라. 평소 연락이 안 닿던 사람들까지 메시지를 보냈다”며 흐뭇해했다.
 
김영광은 ‘꾸준함’의 대명사다. 2002년 전남 드래곤즈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한 이후 여러 번 팀을 옮기면서도 주전을 놓치지 않았다. 2012년엔 울산 현대 수문장으로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한국의 8강행을 이끌었고, 2006년(독일)과 2010년(남아공) 두 차례 월드컵 무대도 경험했다.
 
프로 19년차 장수의 비결은 피나는 노력에 있었다. 김영광은 “청소년 대표 출신으로 프로에 도전할 때 자신만만했는데, 팀 훈련 첫 날 자신감이 무너졌다. ‘캐넌 슈터’라 불리던 노상래 형님의 슈팅을 막아본 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너무 빨라 도저히 못 막겠더라”고 털어놨다.
 
수퍼맨처럼 몸을 던진 김영광. 37세인 그는 여전히 골대 앞에서 펄펄 난다. 김성룡 기자

수퍼맨처럼 몸을 던진 김영광. 37세인 그는 여전히 골대 앞에서 펄펄 난다. 김성룡 기자

골키퍼치고 키(1m83㎝)가 크지 않은 김영광은 ‘점프력을 키우는 것만이 살 길’이라 판단했다. 프로 생활 내내 1m90㎝ 안팎의 장신들과 경쟁한 그는 늘 한 발 빨리, 한 발 더 멀리 뛰어야만 했다. 매일 밤 4~5시간씩 점프와 순발력을 키우기 위해 ‘특훈’을 했다. 줄넘기 2단 뛰기 수천 개를 한 뒤, 허들을 세워놓고 좌우로 뛰어넘었다. 이마저 성에 차지 않으면 인근 테니스장에서 제자리 뛰기로 지칠 때까지 네트를 넘고 또 넘었다.
 
베테랑이 된 지금도 개인 훈련을 거르지 않는다. 최근엔 백민철 성남 골키퍼 코치의 도움을 받아 정면으로 날아오는 볼을 끝까지 눈을 감지 않고 쳐내는 연습을 한다. 20대 시절에 비해 떨어진 운동 능력을 동체시력으로 보완하기 위해서다. 얼굴에 맞는 한이 있어도 공을 끝까지 본다.
 
철저한 자기관리는 기본이다. 김영광은 “프로 데뷔할 때 몸무게가 86㎏였는데, 여전히 86~87㎏대를 유지 중이다. 많이 먹었다 싶으면 다음날 음식 섭취량을 확 줄인다. 밤에 라면 먹는 후배들 보면 솔직히 흔들릴 때도 있지만, ‘라면 한 봉지당 한 골’이라고 되뇌며 꾹 참는다”고 설명했다.
 
현역 시절 전남에서 김영광과 한솥밥을 먹은 김남일 성남 감독은 지난해 겨울 이랜드FC와 재계약하지 못해 은퇴 기록에 선 후배에게 흔쾌히 손을 내밀었다. 백전노장 김영광이 올 시즌 팀의 ‘마지막 퍼즐’이 될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김영광은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 선수단의 실질적인 리더 역할을 맡았다. 성남의 올 시즌 5경기를 모두 풀타임 소화했고, 초반 4연속 무패(2승2무) 행진을 이끌었다. 김영광의 신들린 듯한 선방쇼에 힘입어 성남은 5라운드 대구전에 두 골을 내주고도 전북과 함께 리그 최소 실점(3골) 선두다.
 
김영광은 성남에 입단하며 신인 시절 등번호 41번을 골랐다.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의미다. 그는 “모든 골키퍼는 골대 구석 구석을 날아다니며 커버하는 ‘수퍼맨’을 꿈꾼다. 37세인 나 역시 마찬가지다. 펄펄 날아다니는 짜릿한 축구로 성남 팬들을 웃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성남=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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