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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여권 서두르는 삐라금지법, 북한 인권은 외면

중앙일보 2020.06.09 00:02 종합 1면 지면보기
대북 전단 살포를 법으로 막으려는 여당의 드라이브가 숨가쁘다. 김홍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관련 법안을 발의한 데 이어 아직 원 구성도 하기 전인데 김태년 원내대표는 “원 구성이 완료되면 입법을 완료하겠다”는 선언부터 했다.
 

민주당 “국회 원구성 뒤 입법 완료”
삐라가 북 변화 위한 정보유입 역할
대안 고민도 없이 일방 차단 논란

미국은 북한에 정보 유입 지원
김종인 “북에 즉답 현명치 못해”
정세현 “군 동원해 전단 막아야”

김 원내대표는 8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백해무익한 전단 살포는 금지돼야 한다”며 이처럼 말했다. 4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의 반발 담화가 나온 지 불과 나흘 만에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여당이 전단 살포 금지법 입법을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전 통일부 장관) 수석부의장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전단을 막기 위해 “어차피 (전단을 날리는 곳이) 군사지역이라 군이 동원될 필요가 있다”고도 말했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정부 스스로 판단해 조치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김여정 부부장이) 그것을 공격했다고 해서 즉시 답을 보내는 것은 현명치 못한 조치”라고 지적했지만, 여당은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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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는 대북 전단 살포 금지가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와 충돌한다는 점을 여당도 잘 알고 있다는 방증이다. 헌법상 국민의 권리를 제약하려면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당이 내세우는 입법 취지는 ‘접경지역 주민의 생명과 신체, 재산에 심각한 위협을 가할 가능성’이다. “2014년 북한이 전단에 고사총을 발사하고 우리 군이 응사한 적이 있다”(김홍걸 의원),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5년 3월 무력충돌 우려 등으로 전단 살포를 중지시킨 바 있다. 미래통합당이 야당이 됐다고 다른 소리를 해선 안 된다”(김태년 원내대표) 등의 주장이다.
 
삐라 금지는 북 정권 돕고, 외부정보 유입은 북 주민 돕는다
 
과거에도 전단 살포로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됐던 것은 사실이다. 접경지역 주민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은 일견 일리 있어 보인다.
 
하지만 법으로 아예 금지하고 처벌(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까지 가능하게 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명분이 있다 해도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김 원내대표가 언급한 2015년 3월의 상황도 맥락이 다르다. 천안함 폭침 5주기를 맞아 탈북자 단체가 전단 대량 살포를 계획하자 북한이 초강경 대응을 시사한 것은 맞는데, 정부가 수차 만류해 결국 단체 스스로 살포 중단을 택했기 때문이다. 당시 통일부는 “주민들의 안전에 명백한 위험이 발생할 우려가 있을 경우 필요한 조치를 할 것”이라면서도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는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의 영역으로서 강제적으로 규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다른 문제는 “전단이 백해무익하다”며 무조건 틀어막으려는 정부·여당의 태도에서 전단을 보내는 근본적인 목적, 즉 북한 주민에게 외부 정보를 전달해 북한 내부의 변화를 꾀하기 위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북한에 올바른 외부의 정보를 보내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를 촉진하는 것은 북한 내 인권 상황 개선과도 직결되는 문제로 진보와 보수를 따지지 말고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외부 정보 유입은 물리력을 사용하지 않고 권위주의 체제를 변화시킬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다. 과거 냉전시대 때도 미국의 소리(VOA), 라디오 프리 유럽(RFE) 및 라디오 리버티(RL)가 소련과 동유럽권 주민들을 대상으로 실상을 알린 게 공산권 해체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대북 전단이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정부 입장은 수긍이 가지만, 동시에 대북 정보 유입의 근본적 필요성에 공감하고 전단 살포 외의 다양한 방법을 모색한다는 신뢰도 국민에게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친분을 과시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만 하더라도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직후인 2018년 7월 북한 인권법 재승인안에 서명했다. 외부 정보를 유입시켜 북한 내에서 자유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는 방안을 강화하는 내용이었다. 미 국무부는 지난해 대북 정보 유입 사업에 350만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위험이 수반되는 특정한 물리적 행동은 규제할 수 있지만, 대안에 대한 고민 없이 전단을 막는다면 대북 정보 유입 자체를 차단할 수 있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기준에 맞지 않는 것처럼 비칠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대북 전단 금지는 북한 정권을 위한 정책이지만, 대북 정보 유입은 북한 주민을 위한 정책이라는 점도 잊어선 안 된다.
 
김여정은 담화에서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인 탈북자를 ‘똥개’ ‘쓰레기’로 불렀다. “똥개들이 기어다니며 몹쓸 짓만 하니 이제는 주인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때”라며 “쓰레기들의 짓거리에 대한 뒷감당을 할 준비가 돼 있는지 남조선 당국자들에게 묻고 싶다”고 했다. ‘개와 주인’이라는 표현은 당이 주민을 마음대로 통제한다는 북한 정권의 사고방식을 단적으로 보여줄 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비슷한 방식의 통제를 요구하는 것처럼 들린다. 김여정 담화 발표 이후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듯한 여당의 대북 전단 살포 금지법 속도전이 불편한 이유다.
 
황준국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대북 정책은 북한 정권만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라 2500만 명 북한 주민까지 대상으로 해야 한다. 우리가 꿈꾸는 통일도 북한 정권 수뇌부와의 통일이 아니지 않냐”며 “정권에 반대하는 주민에게 막말을 하는 북한 지도체제에 호응하는 듯한 대북정책은 반쪽짜리밖에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유지혜 국제외교안보에디터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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