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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이 던진 시민단체 자성론

중앙일보 2020.06.09 00:02 종합 1면 지면보기
문재인

문재인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본군 위안부 운동의 대의는 굳건히 지켜져야 한다. 대의는 할머니들의 증언으로부터 시작됐고, 민간의 자발적 참여와 연대가 더해진 것이다. 시민단체의 행태는 되돌아봐야 하지만, 운동 자체를 부정해선 안 된다.’
 

정의연 사태 한달 만에 첫 언급
“위안부 운동 논란 매우 혼란
시민단체의 행태 되돌아봐야
30년 역사 대의는 부정 안돼”
기부금 모금 투명성 강화 약속

문 대통령, 이 할머니 폄훼에 제동
“위안부 운동 이끌어온 것만으로
누구 인정도 필요없이 존엄한 분”
야당 “윤미향 빠진 유체이탈 화법”

문재인(얼굴) 대통령이 8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면서 최근 ‘윤미향 사태’와 관련, 이런 입장을 밝혔다.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정의기억연대(정의연·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 후신)를 거명하지 않고 ‘위안부 운동’이라는 포괄적 명분을 고리로 한 접근이었다. 지난달 7일 이용수 할머니의 폭로 이후 한 달여 만에 나온 문 대통령의 직접 발언이다.
 
사실 문 대통령과 이용수 할머니는 여러 차례 만난 사이다. 대통령 취임 후 청와대 행사에만 네 차례 초대했다. 그간 일본에 맞서 피해자 중심주의를 거론할 때 등장시키곤 했다. 문 대통령 스스론 부산 정대협지부 회원이었다. 그간 여권 진영으로부터 이 할머니가 거센 비난을 받을 때 “문 대통령의 입장은 뭐냐”란 의문이 제기됐던 배경이다.
 
문 대통령은 1890여 자로 답했다. ‘지켜야 할 대의-할머니의 증언-자발적 연대-운동의 정당성’으로 이어지는 논리였다. 우선 문 대통령은 “위안부 운동을 둘러싼 논란이 매우 혼란스럽다. 말씀드리기도 조심스럽다”면서도 “인류 보편의 가치를 실현하려는 (위안부 운동의) 숭고한 뜻이 훼손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위안부 운동 30년 역사는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여성 인권과 평화를 향한 발걸음이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김학순 할머니의 역사적 증언에서부터 위안부 운동은 시작됐다”며 위안부 할머니들을 ‘운동의 출발점’으로 못 박았다. 특히 이용수 할머니를 두곤 “위안부 운동의 역사”라며 “위안부 문제를 세계적 문제로 만드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셨다”고 말했다. 기부금 논란에 대해서는 “시민단체의 활동 방식이나 행태에 대해서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며 “정부는 이번 논란을 계기로 기부금 통합관리 시스템을 구축해 기부금 또는 후원금 모금 활동의 투명성을 근본적으로 강화하겠다. 시민단체들도 함께 노력해 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김학순 할머니 위안부 운동 시작, 이용수 할머니는 그 역사”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 폭로로 불거진 정의기억연대 논란과 관련해 ’이용수 할머니는 위안부 운동의 역사“라며 ’위안부 운동의 대의는 굳건히 지켜져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 폭로로 불거진 정의기억연대 논란과 관련해 ’이용수 할머니는 위안부 운동의 역사“라며 ’위안부 운동의 대의는 굳건히 지켜져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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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은 강성 친문 지지층이 이 할머니를 ‘토착왜구’에 빗대 비난하는 상황에서 이 할머니를 적극적으로 감쌌다. ▶미국 하원에서 최초로 위안부 증언 ▶프랑스 의회에서의 증언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등재를 촉구하는 활동 등을 일일이 언급했다. “위안부 할머니가 없는 위안부 운동을 생각할 수 없다” “위안부 운동을 이끌어오신 것만으로도 누구의 인정도 필요 없이 스스로 존엄하다” 같은 말도 했다.
 
문 대통령은 운동의 정당성도 거듭 강조했다. “30년간 줄기차게 피해자와 활동가들, 시민들이 함께 연대하고 힘을 모은 결과 위안부 운동은 세계사적 인권운동으로 자리매김했다. 결코 부정하거나 폄훼할 수 없는 역사”라고 했고, 또 “일각에서 위안부 운동 자체를 부정하고 운동의 대의를 손상시키려는 시도는 옳지 않다. 위안부 운동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지금의 논란과 시련이 위안부 운동을 발전적으로 승화시키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도 했다. 정의연 등의 회계부정 의혹, 횡령 의혹 등을 콕 집어 언급하기보다 시민단체의 잘못된 관행 등을 지적하는 선에서 발언을 마무리한 것이다.
 
이처럼 2년 가까이 위안부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하지 않던 문 대통령이 이날 이용수 할머니를 특정하며 ‘작심 발언’을 한 것은 그만큼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본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애초 ‘윤미향 사태’가 처음 불거졌을 때부터 청와대 내부에선 관련 입장을 밝힐지를 놓고 갑론을박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의연 관련 의혹을 기본적으로 민간 영역인 시민단체의 일이라 판단해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정부 조사 결과를 살펴보자”(5월 20일)고 한 것도 이의 연장선이다.
 
특히 문 대통령이 이용수 할머니 폭로 한 달여 만에 이날 관련 메시지를 낸 데엔 전날 서울 마포구 연남동 ‘평화의 우리집’ 소장 손영미씨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안이 영향을 끼쳤다는 관측이 나온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의 관련 발언 여부를 이날 오전에야 결정했다고 한다. 윤 의원 등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터라 직접적 언급이 논란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날 문 대통령의 발언으로 여권 내 발언, 특히 이용수 할머니에 대한 인신공격은 사그라들 것으로 보인다. 강훈식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피해 할머니들과 활동가들, 시민들이 연대하고 힘을 모은 결과 지금의 위안부 운동이 존재하는 것”이라며 “이번 논란으로 위안부 운동의 역사가 부정당하거나 평가절하돼서는 안 된다”고 논평했다.
 
하지만 야권의 반응은 싸늘했다. 이번 사안의 본질에 대해 “성역이 되어 할머니의 존엄과 명예를 무너뜨린 장본인이 윤 의원”(김은혜 미래통합당 대변인), “윤미향 의원과 정의연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이용해 사익과 권력욕을 취했다”(안혜진 국민의당 대변인)고 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의 ‘정당한 운동을 해온 시민단체의 회계 문제’란 인식과는 거리가 있다.
 
통합당 ‘위안부 할머니 피해 진상규명 태스크포스(TF)’ 위원장인 곽상도 의원은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위안부 운동에 대해 누가 부인을 했느냐. 다만 이를 훼손한 윤 의원을 처벌하고 정의연을 해체해 달라는 게 이용수 할머니의 절규”라며 “우리 편, 내 편만 챙기는 외눈박이 대통령”이라고 꼬집었다. 안혜진 대변인은 “유체이탈 화법 대신 확실한 입장 표명을 해 달라”고 촉구했다.
  
권호·현일훈 기자 gnom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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