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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 월 50만원’ 땐 311조 필요, 증세·복지구조조정 필수

중앙일보 2020.06.09 00:02 종합 5면 지면보기
“기본소득제의 취지를 이해한다.”(8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
 

기본소득 한번 시작땐 중단 힘들어
올 국세수입 279조 다 쏟아도 부족
아동수당 등 현금성 복지 줄여야
기재부 “우리 여건상 도입 부적절”

“기본소득 문제를 근본적으로 검토해야.”(4일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기본소득제가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여야 모두 기본소득제 방안에 무게를 싣고 공론화를 시작했다. 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핵심 의제로 부상할 분위기다. 하지만 현금 살포의 단맛만 부각하고 필수적으로 동반할 청구서는 외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차 재난지원금 지급 시 국가채무.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2차 재난지원금 지급 시 국가채무.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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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기본소득을 매월 나눠 주는 데 필요한 돈을 정부가 무슨 수로 마련할지다. 기획재정부가 가구당 100만원씩 지급한 긴급재난지원금 예산(14조3000억원),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올 5월 5184만 명)를 기준으로 기본소득제를 시행하는 데 필요한 재정 규모를 추산했다.
 
국가채무

국가채무

가구당 월 20만~50만원을 지급한다고 가정하면 연간 34조~86조원이 든다. 가구당이 아닌 1인당으로 전 국민에게 월 20만원에서 50만원을 주려면 124조원에서 311조원에 이르는 추가 예산이 필요하다. 311조원은 3차 추경 편성 시 정부가 예상한 올해 국세 수입(279조7000억원)을 몽땅 털어넣어도 모자란다.
 
1회성으로 끝날 정책도 아니다. 한번 시작하면 매월, 매년 지급해야 한다. 결국 재원 마련을 위해 정부 수입(세금)을 늘리고 기초연금, 아동수당 같은 기존 복지지출을 대대적으로 구조조정하는 방법밖에 없다. 이미 아동수당·기초연금 같은 현금성 복지 예산은 2017년 36조원에서 올해 본예산 기준 54조원으로 늘었다. 특히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세금을 낼 사람은 줄고, 나랏돈 지원을 받을 사람은 늘어나는 상황에서 증세 논의 없는 기본소득제는 자칫 정부 재정으로 막을 수 없는 ‘폭탄 돌리기’가 될 수 있다.
 
기본소득 소요 예산

기본소득 소요 예산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처음으로 시도된 긴급재난지원금 이후 기본소득의 정치적 가치가 높아졌지만, 기본소득의 재원 마련을 위한 증세 논의 등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미 나라 재정은 바닥을 보인 상태다.
 
전 국민 모두의 기본소득을 보장하려면 모두가 세금을 더 낼 각오를 해야 한다. 이른바 ‘보편 증세’다. 그러나 갈 길이 멀다. 한국의 근로소득 면세자는 38.9%(2018년분 소득 기준)에 이른다. 유리 지갑이라는 근로자조차 10명 중 4명이 세금(근로소득세)을 한 푼도 내지 않고 있는 셈이다. 미국(30.7%), 일본(15.5%)보다 한참 높다. 조준모 교수는 “그렇다고 기본소득만을 위해 증세를 하면 국민이 기본소득을 받는 효용보다 높은 세금을 내는 고통이 커지면서 저항에 봉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기존 현금성 지원 사업을 기본소득제 아래로 합치는 복지제도의 대대적 개편이 앞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본소득을 도입하려면 필요 액수를 정확히 계산하고 재원 마련을 위한 증세는 어떻게 하며, 현재의 복지 시스템을 어떻게 전환해 기존 비용을 줄일지에 대한 토론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기본소득을 줄지 말지에 대한 거친 논의보다는 기본소득을 위해 어떤 복지 제도를 유지하고 정비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곤혹스럽다. 기획재정부는 “우리 여건상 기본소득제를 도입하기엔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세종=하남현·임성빈·허정원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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