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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복지' 54조인데 기본소득 경쟁…나라곳간은 이미 비상

중앙일보 2020.06.08 19:00
기본소득제 도입 논의에 불이 붙었다. 발원지는 정치권이다. 여야 가릴 것 없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먼저 띄우자 여권의 잠재적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도 지사에 이어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까지 가세했다. 긴급 재난지원금 같은 ‘현금 복지’의 인기와 파괴력을 총선을 통해 확인하면서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본소득 등 현안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스1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본소득 등 현안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스1

현금 살포의 단맛만 부각하고 필수적으로 동반할 청구서는 외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증세, 복지 구조조정 등이다. 재원 마련 대책 없이 무작정 ‘더 퍼주자’는 논의에만 몰두하기엔 한국의 나라 곳간이 이미 헐겁다. 
  

외환위기 때보다 헐거운 나라 곳간 

8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의 재정 지표는 올해 들어 급격히 악화하며 사상 최악의 기록을 쓰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위해 59조2000억원에 이르는 세 차례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하면서다. 국가채무는 올해 840조2000억원이 될 것으로 정부는 추산했다. 지난해 결산 대비 111조4000억원이 불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38.1%에서 43.5%로 높아진다.   
 
나라 살림 상황을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는 112조2000억 원 적자다.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1년 전 2.8%의 두 배가 넘는 5.8%다.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4.6%)보다 높다. 수치, 증가 폭 모두 ‘역대급’이다.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이마저도 낙관적인 전망이다. 정부는 재정 지표를 예상하면서 올해 경상성장률(경제성장률+물가상승률)을 0.6%로 전망했다. 국제통화기금(IMF) 등 주요기관이 한국의 올해 성장률을 마이너스로 내다보고 있다. 현재 물가상승률은 0%대 초반이다. 경상성장률도 마이너스가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러면 실제 재정 지표는 더 나빠진다.
 

현금 복지 이미 54조원

현 재정이 선진국 대비 양호하다는 게 정부와 정치권의 일관된 주장이다. 하지만 재정 악화 속도가 너무 가파르다는 게 문제다. 전문가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과속”이라며 우려하는 부분이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최근 학술대회에서 “코로나19 위기에서 늘어난 총지출 규모를 하향 조정하지 않으면 2028년 부채비율은 67~80%로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가채무 비율이 80%에 이르면 ‘재정 위기’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게 김 교수의 진단이다.
     
기본소득제 월 지급시 예상 재정 소요. 그래픽=신재민 기자

기본소득제 월 지급시 예상 재정 소요. 그래픽=신재민 기자

아껴 써야할 판인데, 재원 마련없는 기본소득은 도리어 나라 재정에 감당하기 어려운 짐을 안긴다. 전 국민에게 월 50만원을 지급하려면 한 해 예산만 311조원이 든다. 3차 추경 편성 시 정부가 예상한 올해 국세 수입(279조7000억원)을 몽땅 털어 넣어도 모자라다. 재원 마련을 위한 대규모 증세가 불가피한 이유다. 
 
게다가 이미 복지 지출 규모도 상당하다. 아동수당‧기초연금 같은 현금성 복지 예산은 2017년 36조원에서 올해 본 예산 기준 54조원으로 늘었다. 급속한 고령화로 이 비용은 늘어나는 구조다. 전문가들은 기본소득 도입시 복지 시스템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한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본소득을 도입하려면 필요 액수를 정확히 계산하고 재원 마련을 위한 증세는 어떻게 하며, 현재의 복지 시스템을 어떻게 전환해 기존 비용을 줄일지에 대한 토론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기본소득 도입 얻는 이익보다 부담이 더 클 수도" 

증세 및 복지지출 구조조정을 동반해야 하는 기본소득제를 현시점에서 도입할 필요가 없다는 진단도 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규모 증세와 복지 지출 구조조정에 따른 국민의 부담이 기본소득을 통해 얻는 이익보다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곤혹스럽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일 "추가적인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은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다"며 “아직 우리 여건상 기본소득제를 도입하기엔 적절하지 않다는 정부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불붙은 기본소득 논쟁 앞에 이런 정부 입장이 묻히는 모양새다. 
  
재정‧예산 당국이 기본소득 논의에서 소외되고 있는 상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정부는 지금도 고ㆍ저소득에 관계없이 분야별로 세액을 공제해주는 방식으로 기본소득 원칙을 실행하고 있다”며 ”이런 원칙이 정치 논리에 따른 설익은 기본소득 논의로 흔들리면 피해는 결국 저소득층이 떠안는다”고 강조했다.
 
세종=하남현‧허정원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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