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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N이 걱정이라고? 트럼프 야망은 이뤄지기 어려워”

중앙일보 2020.06.08 11:12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글로벌 비즈니스 세계가 정치화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제외한 ‘경제번영네트워크(EPN)’으로 기존 글로벌 공급망(Global Supply ChainsᆞGSC)을 대체하려고 한다. 기술력과 상대적으로 싼 생산원가(효율)라는 ‘시장원리’에 따라 1980년 이후 형성된 기존 GSC와는 달리 EPN에는 ‘정치원리’가 그득해 보인다.
리처드 네퓨

리처드 네퓨

 

전 미 국무부 제재정책 담당 수석부조정관 리처드 네퓨 전화 인터뷰

미 기업 CEO들, 中에 의존하다 코로나 사태 와중에 공급 차질 겪어
트럼프가 추진 중인 EPN은 그가 원하는 대로 구성되지 않을 가능성이 커
다만, 동맹국과 전략물자 리스트 만들어 中 의존도 줄이는 수준은 가능
트럼프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리더보다는 푸틴, 김정은과 케미 잘 맞아

비즈니스 리더는 ‘정치적인’ EPN을 어떻게 봐야 할까.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미국의 이코노미스트가 아닌 국제정치 전문가를 전화 인터뷰했다. 주인공은 바로 리처드 네퓨 컬럼비아대의 글로벌에너지정책센터의 선임 연구원이다. 그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서 대이란 정책을 주관한 경험을 바탕으로 『제재의 기술(The Art of Sanctions)』을 썼다.
 
 

트럼프 중국 봉쇄정책은 워싱턴 컨센서스 아냐!

요즘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이 한국 등을 EPN에 참여시키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봉쇄정책이란 말을 아는가. 미국이 냉전 시대에 옛 소련을 겨냥해 썼던 정책이다. 트럼프가 봉쇄정책을 되살려냈다. 중국을 최대한 배제하고 봉쇄하는 국제 시스템을 세우려는 듯하다.”
미국이 나서면 반(反) 중국 글로벌 시스템이 등장하지 않을까.
“미국이 원한다? 트럼프가 추진 중인 EPN이 미국 전체 또는 다수의 야망이라고 나는 생각지 않는다.”
무슨 말인가.
“미국 내에선 중국을 배제하고 봉쇄할지, 아니면 중국과 전략적으로 같이 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야 할지를 놓고 논쟁이 진행 중이다.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미국과 동맹국의 역할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도널드 트럼프의 야망: 중국 봉쇄

도널드 트럼프의 야망: 중국 봉쇄

 

중, 미국 제재가 미미할 것으로 보고 홍콩 압박  

근본적인 의문이 떠오른다. 중국이 정치적ᆞ경제적 제재로 컨트롤 가능한 나라인가.
“컨트롤의 정도가 문제이긴 하지만 나는 제재로 중국을 움직일 수 없다고 본다.”
미국은 (다양한 수단으로) 옛소련을 컨트롤한 적이 있지 않은가.
“예를 들어 설명하는 게 편할 듯하다. 미국은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면 고통스러운 대가를 치르도록 세팅하는 방식으로 베이징의 통일 야망을 저지할 수 있다. 이런 게임 방식이 영원히 작동할지 의문이다.”
무슨 뜻인가.
“미국의 보복 등이 단기적이거나 미미하다고 중국 리더가 믿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중국이 홍콩 보안법을 제정한 것은 미국의 제재 등 후환이 두렵지 않을 수준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는 내가 두려워하는 일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오른쪽)과 블라드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은 2017년 7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정상회담 모습.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오른쪽)과 블라드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은 2017년 7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정상회담 모습.

 

“미래 GSC는 중국 배제가 아니라 덜 의존적일 듯”

다시 EPN으로 돌아가, 실제 구성될 수 있을까. 
“트럼프와 그의 참모들이 원하는 방식과 수준으로 EPN은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본다. 안될 것이다. 다만 부분적이고 제한적인 공급망은 등장할 수 있다.”
제한적인 공급망은 무엇인가.
“코로나19를 계기로 미국 등 많은 나라가 자국민 안전과 전략 물자의 생산과 조달을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미국과 주요 동맹국이 중국에서 생산해 수입하고 싶지 않은 전략물자 리스트를 정할 수 있다.”
반중 전략물자 네트워크를 말하는 것인가.
“반중이라고 해서 중국과 교역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중국 의존을 줄인다는 의미다. 결론적으로 (포스트-코로나 시대엔) 글로벌 공급망이 중국을 배제하는 게 아니라 중국에 덜 의존하는 구조일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보다 미 기업의 주도적인 움직임이 예상된다.”
리처드 네퓨의 『제재의 기술』

리처드 네퓨의 『제재의 기술』

미 기업이 앞장서 반중 공급망을 구성한다는 말인가.
“미 기업들은 중국 현지 생산에 너무 의존한 나머지 (코로나19 사태 와중에) 제품을 미 시장에 적절하게 공급하지 못했다. 이런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트럼프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월가 이코노미스트들이 신흥국 리스크를 평가할 때 ‘신흥국 리더와 트럼프의 관계’도 살펴본다. 트럼프와 한국 문재인 대통령 사이가 어떻게 보이는가.
“내가 심리학자가 아니어서 두 사람 사이에 ‘케미(chemistryᆞ친밀한 관계)’가 잘 이뤄졌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트럼프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리더보다 독재자와 더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러시아 푸틴이나 북한 김정은과의 관계에 더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듯하다.”
리처드 네퓨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1~13년 워싱턴 국가안보회의(NSC)에서 대이란 정책을 지휘했다. 이후엔 국무부에서 제재정책 담당 수석부조정관으로 활동했다. 현재 컬럼비아대학 글로벌에너지정책연구소에서 수석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가 2017년에 쓴 『제재의 기술』은 제재를 직접 실행해본 정책 담당자가 쓴 최초 제재 이론서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조지워싱턴대학에서 국제관계 석사 학위를 받았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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