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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리쇼어링? 꿈도 꾸지 마세요

중앙일보 2020.06.08 00:45 종합 31면 지면보기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드디어 선진국이 됐습니다. 사회학 전공 45년 만에 열등감을 극복했습니다.” 지난 주 한국일보 포럼에서 고백한 필자의 심정이다. 주변을 다시 둘러보게 됐다. 지방도시에도 빈촌은 드물고 골목은 정결하다. 농촌, 산촌 풍경도 궁색한 모습을 떨친 지 오래다. 작은 땅뙈기로도 아담한 집에 가족 생계를 꾸릴 작농 기술을 발휘하고, 자가용과 농기구를 다 갖춰 산다. 대도시 달동네는 고층아파트 숲이 됐다. 쫓겨난 사람도 있겠으나 슬럼가로 흘러들지 않는다. 슬럼가가 없는 나라가 선진국이라면, 한국은 이미 오래 전에 선진국이다.
 

K-방역으로 선진국 열등감 극복
유럽은 집단 간 분절 칸막이 사회
한국은 사회적 동질성 세계 최고
동질성 뒷면은 배타성, 경제의 독

특히 의료가 그렇다. 전국민건강보험이 도입된 1989년 이후 한국 의료체제는 공공, 민간 혼합 경로를 조심스레 걸어왔는데, 어느 날 코로나 사태가 한국이 세계 최고임을 알려주었다. 감염력 초특급인 코로나가 한국의 방역망을 뚫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헛일이다. 유럽에서 수술 환자는 수만 명 대기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야 한다. 1997년 영국에서 백만 번째 순번을 받은 아기가 숨졌다. 토니 블레어 당시 노동당 대표가 공공의료 개혁 공약을 내세워 총리에 당선됐다.
 
이후 20년 역사(役事)에도 의료 경쟁력은 후퇴했다. 이런 사정은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역시 비슷하다. 미국의 의료는 돈이다. 보험회사가 일정 지역 진료병원, 의사와 간호인력, 검사전문 병원을 한데 묶어 보험상품으로 판다. 3인 가족 기준 월 2000달러 수준. 1984년, 마트 주차장에서 흑인이 울고 있었다. “딸이 아픈데 병원을 못 보내요.” 오바마케어가 도입돼 약간 나아지긴 했으나 현실은 거의 비슷하다. 코로나 확진자도 숨이 가빠져야 응급차가 달려오지만 완쾌 후 낼 돈이 더 걱정이다. MRI(자기공명영상)와 CT(컴퓨터단층) 촬영을 부담 없이 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부국(富國)이자 개방사회인 유럽의 속사정은 코로나 사태로 여실히 드러났다. 내부에 이질적 집단을 차별하는 제도적 칸막이가 무수히 쳐져 있었던 거다. 이른바 ‘칸막이 개방사회’. 이민, 난민, 계급, 인종, 종교로 나뉜 집단들이 고립된 부족(tribes)을 형성하고 있었던 거다. 외부인을 너그럽게 수용한 개방사회여도 제도적 배제 장벽이 칸칸이 쳐진 일종의 병립(竝立)사회였다. 사회적 혜택을 골고루 나누는 공존, 공생이 아니었다.
 
코로나는 이질적 부족들을 구획한 비무장지대에서 무럭무럭 자랐고 장벽을 쉽게 넘었다. 한국은 국가방역망 내에 누구나 참여했다. 혜택이 돌아올 것을 믿기 때문이다. 사회 내부의 동질성에서 한국을 따라갈 나라가 없다. “한국은 선진국이다!” 그러나 딱 여기까지다.
 
순도 100% 동질성은 어떤 일을 저지를 것인가? 두 달 전 지방도시 마트에서 목격했다. 중년 여인이 계산대 앞에서 목청을 높였다. 마스크 사이로 새나오는 말이 흐릿했는데 곧 사태를 알아차렸다. 줄 뒤에 대기한 외국인 노동자와 가족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았던 거다. 영문을 모르는 그 외국인은 뻘쭘한 표정을 지었다. 마스크 대란에 어디서 그걸 구할까, 내게도 여분이 없었다. 아빠 손을 잡은 열 살 남짓 딸과 눈이 마주쳤다. 초롱한 눈빛에 스치는 원인모를 서러움이 순간 읽혔다.
 
우리가 배양한 극성맞은 동질성과 타집단에 대한 유별난 배타성은 동전의 양면이다. 코로나처럼 전국민 ‘공동의 적’이 아니라 지역풍토병의 전염사태였다면 해당지역민을 멸(滅)하라거나, 이류시민 낙인을 찍었을 것이다. 정치와 사회 영역에서 우리가 정의롭게 참여한 온갖 갈등 사태에도 유별난 배타성이 격돌했다.
 
‘한국형 뉴딜’, 시의적절한 대책이다. 정부의 신속한 대응자세가 돋보인다. 그 중 하나 리쇼어링, 각국 지도자들이 블록경제의 이점을 외치기 시작했다. 기업유턴을 호소하면서 각종 혜택을 늘어놨다. 이전 비용 70% 제공, 법인세 대폭 삭감, 부지제공, 규제 완화 등. 우리도 질세라 보조금과 부지제공을 약속했다.
 
그런데 돌아올까? 답은 ‘꿈도 꾸지 마세요!’다. 아예 현지 노동자들을 통째로 받아들여준다면 모를까, 최저임금제, 법인세, 100여 가지가 넘는 규제에 60%에 가까운 증여세와 상속세가 대기한 숨 막히는 공간으로 자진 회귀한다? 현지노동자를 받아줄리 만무이고, 오더라도 임금비용을 대폭 낮춰줘야 한다. 미국 자동차노조는 유턴기업에 한하여 ‘이중임금’을 허용했고, 독일은 최저임금 동결, 유연근로시간제를 약속했다. 경제에 관한 한 이질성이 경쟁력이다.
 
포스트 코로나는 투 잡(job) 시대다. 자율근무, 시간제 고용의 봇물이 터질 예정인데, 무서운 수비 대장인 주52시간, 최저임금제, 보험료가 눈을 번득이는 한 돌아올 기업은 없다. 더욱이, 외국인과 공생해 본 경험이 없는 나라에 어느 외국인이 몸 바쳐 헌신할까. 출범 20년, 인천 송도 경제자유지역엔 아직 규제가 그득하다. 국제병원, 영리병원도 허용되지 않았다. 이질성과 싸우느라 세월을 보냈다. 동질성, K방역을 이끈 이 유별난 심성은 경제에는 독(毒)이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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