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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서 연설하게 해줬더니"…대놓고 문 대통령 비판한 北

중앙일보 2020.06.07 18:08
 
2018년 9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5·1 경기장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평양 주민들을 상대로 연설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2박 3일간 방북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2018년 9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5·1 경기장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평양 주민들을 상대로 연설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2박 3일간 방북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북한이 7일 대외선전 매체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 북미 관계 선순환론’을 정면 비판하며 연일 남측 때리기에 몰두하고 있다. 
 
발단은 탈북자 단체의 대북전단(삐라) 살포였지만, 실상은 북ㆍ미 협상 교착의 화살을 한국 정부에 돌리며 돌파구 찾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오는 12일은 2018년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2주년을 맞는 날이다.
 
북한의 대남선전 매체 우리민족끼리는 ‘달나라 타령’이라는 기고에서 “남조선 집권자는 ‘선순환 관계’ 타령을 쩍하면 부하들 앞에서, 인민들 앞에서, 국제사회 앞에서 듣기 싫을 정도로 외워댔다”고 비판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도 “남북관계를 최대한 발전시켜 나간다면 그것이 북미 대화에 좋은 효과를 미치는 선순환적인 관계를 맺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매체는 이어 “북남관계와 조미(북미)관계를 서로 보완하는 것이라고 그럴 듯하게 해석하는데, 지금까지 북남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사사건건 미국에 일러바치고 승인해주지 않으면 손들고 나 앉았다”고 비난했다. 
 
또 다른 대외선전 매체 메아리도 같은 날 “현 남조선 당국은 북남 관계에서 그 무엇을 해결할 만한 초보적인 능력과 의지도 없는 무지·무능 정권”이라고 비난했다. 메아리는 이어 “세 차례의 북남 수뇌 상봉, 군사 분야합의에 이어 그 누구도 감히 바랄 수 없었던 평양 시민들 앞에서의 연설이라는 특대형 환대까지 베풀어졌지만, 현실은 오랫동안 교착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했다. 지난해 9.19 남북정상회담 당시 문 대통령의 평양 연설까지 거론하며 남측 정부를 비판한 것이다. 
 
북한의 노골적인 대남 공세는 지난 4일 김여정의 담화 이후 계속되고 있다. 김여정은 담화에서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남북군사합의서를 거론하며 이를 폐기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 다음 날인 5일에는 북한 통일전선부 대변인이 남북연락사무소 폐기를 언급한 데 이어 문 대통령에 대한 직접 비난까지 이어지는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남측에 대북 제재의 돌파를 강하게 주문하는 한편, 꿈쩍도 하지 않는 미국을 한국 정부가 움직이라는 주문이 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김홍균 전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은 “북한이 전형적인 '남측 길들이기' 국면으로 들어섰다”며 “한국 정부를 강하게 압박해 남북, 북미 관계를 북한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게 만들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①예상치 못한 코로나19 변수

지난달 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안남도 순천에 있는 인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했다. [조선중앙TV 캡처=뉴시스]

지난달 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안남도 순천에 있는 인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했다. [조선중앙TV 캡처=뉴시스]

북한이 이 시점에서 돌연 남측 때리기에 나선 건 연초 ‘새로운 길' 선언으로 북·미 협상의 새판을 짜려 했던 북한의 구상이 제대로 먹혀들지 않았다는 판단에서일 수 있다. 
 
북한의 요구는 3월 22일 김여정의 담화에 잘 드러나 있다. 김여정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 앞으로 친서를 보낸 사실을 공개하면서, “두 나라 사이에 역학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평형이 유지되고 공정성이 보장돼야 대화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일종의 공개 답신을 한 셈인데 ‘공정·평형이 보장된 새로운 협상 방안’을 미국이 가져오라는 의미로 읽혔다.  
 
이와 동시에 북한은 3~4월 단거리미사일을 잇달아 쐈지만, 큰 진전은 없었다. 
 
전문가들은 상반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라는 변수가 터져 북한의 예상과는 달리 상황이 흘러갔다고 분석한다. 2~3월은 북한이 레버리지로 삼아 온 중국이, 3~4월은 미국이 코로나19 대응에 집중하면서 모든 외교 일정이 ‘올 스톱’됐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 입장에선 미국의 관심을 끌만 한 타이밍을 놓쳤다는 지적이다.  
 
위성락 서울대 객원교수는 “북한의 계획상 올 상반기 주요한 도발로 긴장을 고조시켜 미국의 관심을 끌어오고, 중반쯤 가서는 이를 자연스럽게 실무 협상과 정상 차원의 논의로 이어가려 했을 것”이라며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해 도발 카드를 쓰려 해도 '뒷배'인 중국이 여의치가 않았고, 미국도 북한에 크게 관심을 둘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고 분석했다.
 

②트럼프에 베팅한 김정은, 美 향한 선택지 줄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6월 30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군사분계선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6월 30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군사분계선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코로나19에 묻혀 적절한 타이밍을 놓친 북한으로선 오는 11월 3일 미국 대선이 다가올 수록 선택지가 더욱 줄어들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의 불안한 재선 가도는 김정은 위원장 입장에선 큰 변수가 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2018년 싱가포르, 2019년 하노이 정상회담을 성사시켜 정치적 자산을 확보했던 김 위원장 입장에서 ‘선수 교체’는 결코 달갑지 않은 일이다.
 
앞서 김여정 부부장도 3월 담화에서 “수뇌분들 간의 친분”을 강조했는데, 민주당의 조 바이든 후보가 만약 당선된다면 이런 관계가 이어질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트럼프 대통령에 베팅했던 김 위원장 입장에서 미 대선이 5개월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한 방’을 잘못 노렸다가 크게 낭패할 수 있는 입장인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항마인 바이든 후보는 2016년 트럼프 대통령이 가져갔던 펜실베이니아 등 이른바 ‘스윙 스테이트’ 주(州)에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레드라인으로 여기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전략적 도발을 해봤자 트럼프 대통령만 흠집 내고 원하는 결과는 얻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적어도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이 확실시될 때까지 미국을 상대로 큰 도박을 할 수 없다는 얘기도 된다.
 
하반기로 가기 전 트럼프 대통령을 흔들지 않으면서 미국의 자세 변화를 이끌어 내려면 한국을 겨냥하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③딴소리하는 남측 때리기

지난해 6월 30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자유의 집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해 6월 30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자유의 집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런 맥락에서 북한의 최근 대남 비방은 “한국이 미국을 움직여 새로운 협상 방안을 내놓으라”는 메시지로 귀결될 수 있다. 북한 입장에서 새로운 방안이란 김여정이 공개적으로 밝힌 ‘공정하고 균형이 담보된 안’이다.  
 
특히 문 대통령이 공개 제안한 ‘남북→북미 선순환론’을 비판했다는 건 북미 대화 앞에 남북 대화를 먼저 놓은 한국 정부를 향해 “우리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니다”고 알린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북한은 이와 관련, 만약 한국이 미국을 움직이지 않으면 군사 도발을 강행하겠다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한 외교 소식통은 “대남 도발은 트럼프 대통령을 흔들지 않으면서도 북한이 언제든 꺼내쓸 수 있는 수단”이라며 “조만간 남측을 겨냥한 주요한 군사 도발이 있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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