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천안문사태 31년, 中축구 전설의 폭탄선언 "공산당 멸망해야"

중앙일보 2020.06.07 11:16
중화권 인터넷 공간이 주말 내내 하오하이둥(郝海東)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국 축구의 전설이 갑작스레 소리 높여 외친 “중국 공산당 타도” 선언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냐”는 중국 사회의 의문이 증폭되고 있기 때문이다.
 

1990~2000년대 최고 골잡이 하오하이둥
천안문사태 31주년인 4일 ‘신중국선언’ 발표
"공산당은 민주주의 짓밟는 테러조직” 비판
“삼권분립, 1인1표에 의한 신중국 건국”
세계 배드민턴 1위 아내 예자오잉도 지지

중국 축구의 전설로 여겨지는 하오하이둥이 지난 4일 갑작스레 중국 공산당을 격렬하게 비판하며 새로운 중국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해 중국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주고 있다. [중국 웨이보 캡처]

중국 축구의 전설로 여겨지는 하오하이둥이 지난 4일 갑작스레 중국 공산당을 격렬하게 비판하며 새로운 중국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해 중국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주고 있다. [중국 웨이보 캡처]

 
시작은 지난 4일이었다. 당초 중국의 1989년 민주화 운동인 ‘6.4 천안문(天安門) 사태’ 31주년을 맞아 화인(華人) 세계의 관심은 홍콩 빅토리아 공원에 쏠렸다. 매년 열리던 추모 촛불 집회를 홍콩 정부가 코로나19를 핑계 삼아 불허해 제대로 열릴지가 관심이었다.
 
한데 정작 사건은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薇博)와 유튜브 등 인터넷 공간에서 터졌다. ‘중국 최고의 골잡이’를 넘어 ‘아시아 최고의 스트라이커’ 등으로 불리며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그라운드를 누볐던 하오하이둥이 폭탄선언을 한 것이다.
 
하오하이둥은 1992년 중국 축구 국가대표로 뽑혀 2004년까지 대표로 활약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국가대표가 된다는 건 끝없이 회의에 참여하고 선서와 구호를 외치는 것“이라며 ’축구가 주는 기쁨이 무시됐다“고 말했다. [중국 바이두 캡처]

하오하이둥은 1992년 중국 축구 국가대표로 뽑혀 2004년까지 대표로 활약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국가대표가 된다는 건 끝없이 회의에 참여하고 선서와 구호를 외치는 것“이라며 ’축구가 주는 기쁨이 무시됐다“고 말했다. [중국 바이두 캡처]

 
제목은 ‘신중국연방건국선언’. 약 20여 분의 동영상에서 하오는 중국 공산당을 격렬하게 비판했다. “중국 공산당은 민주주의를 짓밟고 법치를 위반하는 테러조직”으로 “천안문 시위를 진압하는 잔혹한 행위를 저질렀다”고 말했다.
 
“공산당 멸망은 정의의 필요에 의한 것”이라고도 했다. 또 “중국이 코로나를 전 세계에 퍼뜨렸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삼권분립의 정치체제와 ‘1인 1표’에 의한 신중국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 축구의 역대 최고 골잡이인 하오하이둥이 중국의 축구 꿈나무를 상대로 강연하고 있다. 하오는 ’축구는 기술보다 정직과 선량, 존중, 팀워크를 먼저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웨이보 캡처]

중국 축구의 역대 최고 골잡이인 하오하이둥이 중국의 축구 꿈나무를 상대로 강연하고 있다. 하오는 ’축구는 기술보다 정직과 선량, 존중, 팀워크를 먼저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웨이보 캡처]

 
또 “신중국의 법치와 민주,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 ‘히말라야 감독기구’를 구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티베트 신장 지구의 자치를 내걸고 있어 '히말라야'라는 명칭이 붙은 것으로 추정된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이끄는 현재의 중국 사회주의 체제에 정면 도전장을 낸 것이다.
  
놀라운 건 전날인 3일까지만 해도 세르비아에서 뛰는 그의 아들이 프로축구리그에서 첫 골을 뽑았다는 게 중국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는데 하루 만에 하오의 깜짝 선언이 발표된 것이다. 이에 한때 중국 시나닷컴 검색 순위 1위에 그의 이름이 오르기도 했다.
 
하오하이둥의 공산당 비판 발언이 있기 하루 전인 지난 3일 중국 언론은 세르비아 리그에서 역시 축구 선수로 뛰는 하오의 아들 하오룬저가 첫 골을 뽑았다는 소식을 전했다. [중국 바이두 캡처]

하오하이둥의 공산당 비판 발언이 있기 하루 전인 지난 3일 중국 언론은 세르비아 리그에서 역시 축구 선수로 뛰는 하오의 아들 하오룬저가 첫 골을 뽑았다는 소식을 전했다. [중국 바이두 캡처]

 
그러나 그것도 잠시. 중국 당국의 조치에 따라 팔로워가 770만이 넘던 그의 웨이보 계정은 즉각 폐쇄됐고 중국 인터넷 공간에서 이와 관련된 소식이 신속하게 지워졌다. 소문만 들은 중국 네티즌은 즉각 VPN(가상사설망) 접속을 시도했으나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이어 중국 언론의 대대적인 반격이 시작됐다. 중국의 스포츠 인터넷 사이트 후푸(虎朴)와 신문 체단주보(體壇周報)가 “하오하이둥이 중국의 주권을 엄중하게 해치는 말을 해 관련 토론을 금지한다’며 하오 관련 기사를 모두 내린 것이다.
 
중국 인터넷 스포츠 사이트인 후푸는 왼쪽 상단의 공고를 통해 ’하오하이둥이 유해한 발표를 했기에 이와 관련된 토론을 오늘부터 금지한다“고 밝혔다. [중국 후푸망 캡처]

중국 인터넷 스포츠 사이트인 후푸는 왼쪽 상단의 공고를 통해 ’하오하이둥이 유해한 발표를 했기에 이와 관련된 토론을 오늘부터 금지한다“고 밝혔다. [중국 후푸망 캡처]

 
체단주보는 “스포츠가 정치화되면 안 된다. 스포츠 스타는 분수를 지켜야 한다. 다른 정치세력에 이용돼선 안 된다”며 하오를 비난했다. 하오의 발표가 미국에서 이뤄졌는데 배후엔 반체제 인사 궈원구이(郭文貴)와 스티브 배넌이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중국 부동산 재벌 궈원구이는 미국으로 망명한 상태이며 배넌은 한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오른팔로 활동하던 인물이다. 이 둘은 2018년부터 중국 공산당을 비판하는 ‘혁명폭로’ 운동을 벌이고 있다. 하오의 선언 영문판은 이날 배넌이 낭독하기도 했다.
 
중국 부동산 재벌인 궈원구이는 지난 2017년부터 중국 당국의 수배를 받고 있다. 현재 미국에 머물며 중국 공산당 비판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하오하이둥과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 바이두 캡처]

중국 부동산 재벌인 궈원구이는 지난 2017년부터 중국 당국의 수배를 받고 있다. 현재 미국에 머물며 중국 공산당 비판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하오하이둥과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 바이두 캡처]

 
중국 사회가 ‘멘붕’에 빠진 건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하오가 갖는 영향력, 다른 하나는 하오가 중국 공산당을 향해 이렇게 대놓고 반기를 들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970년생으로, 18세에 중국의 명문 클럽 8.1팀에 입단한 하오는 92년부터 2004년까지 중국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2002년 한·일 월드컵축구대회 때 중국을 최초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시킨 주역이다.
  
하오하이둥이 ‘천안문 사태’ 31주년을 맞던 지난 4일 갑작스레 중국 공산당을 비판하고 중국의 민주사회 건국을 주장하는 ‘신중국연방선언’을 발표해 중국 사회가 충격에 빠졌다. [중국 바이두 캡처]

하오하이둥이 ‘천안문 사태’ 31주년을 맞던 지난 4일 갑작스레 중국 공산당을 비판하고 중국의 민주사회 건국을 주장하는 ‘신중국연방선언’을 발표해 중국 사회가 충격에 빠졌다. [중국 바이두 캡처]

 
중국 대표로 115회 출장해 41골을 뽑았다. 지금까지 깨지지 않는 최다 기록으로 중국인들의 뇌리에 그는 ‘집단 기억’으로 남아 있다. 지난 5월 9일엔 국제축구연맹(FIFA)이 그의 생일 축하 메시지를 전했을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크다.
 
더 놀라운 건 그가 바른말 잘하기로 유명해 ‘대포(大炮)’란 별명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공산당을 대놓고 비난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세계 여자배드민턴 랭킹 1위 출신의 예자오잉(葉釗潁)과 재혼했고 중국에 축구학교도 설립했다.
 
하오하이둥은 지난해 세계 여자배드민턴 1위 출신의 예자오잉과 재혼했다. 예자오잉은 세계 랭킹 1위였지만 2000년 시드니올림픽 준결승전에서 동료 선수에 일부러 지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이후 그는 ’자유를 찾고 싶다“며 은퇴했다. [중국 제남시보망 캡처]

하오하이둥은 지난해 세계 여자배드민턴 1위 출신의 예자오잉과 재혼했다. 예자오잉은 세계 랭킹 1위였지만 2000년 시드니올림픽 준결승전에서 동료 선수에 일부러 지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이후 그는 ’자유를 찾고 싶다“며 은퇴했다. [중국 제남시보망 캡처]

 
2006년 영국 쉐필드팀에서 뛰다 은퇴했지만, 선수 때부터 사업 수완이 뛰어나 농장도 경영하는 등 재산도 많은 것으로 알려진다. 2004년 포브스 잡지가 중국의 부호리스트를 만들었을 때 43위에 오르기도 했다.
 
비록 최근엔 스페인에 머물고 있지만, 중국 국내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어서 중국 사회가 받는 충격은 더 크다. 중국의 최근 분위기는 애국주의에 불탄다. 모두 중국의 부상과 중국의 미래를 이야기한다. 여기에 하오가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하오하이둥이 현재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스페인의 호화 저택. 하오는 지난 4일 중국 공산당을 격렬하게 비판하며 신중국연방을 건국해야 한다고 주장해 중국 사회에 충격을 안기고 있다. [중국 웨이보 캡처]

하오하이둥이 현재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스페인의 호화 저택. 하오는 지난 4일 중국 공산당을 격렬하게 비판하며 신중국연방을 건국해야 한다고 주장해 중국 사회에 충격을 안기고 있다. [중국 웨이보 캡처]

 
그의 지난 행적을 살피면 갑작스러운 변신은 아닌 듯 보인다. 2016년 그는 산둥(山東)성에서 중국 축구 꿈나무와 그들의 부모와 함께 한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축구를 배울 때 정직과 선량, 존중, 팀워크부터 먼저 배웠다. 한데 중국에선 어린 선수 나이를 세 살, 심지어 다섯 살까지 깎는다. 이렇게 나이를 속여놓고 무슨 선수에게 정직한 플레이를 기대할 수 있나. 스페인 테니스 선수 나달이 스페인 수영협회 회장을 할 수 있나. 중국은 탁구선수 출신이 축구를 지휘한다. 말이 되나”
 
중국 축구의 전설 하오하이둥은 직설적인 발언을 자주 해 ‘하오 대포’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신문에 나지 않는 내용이 있어도 하오가 말하지 않는 건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중국 제남시보망 캡처]

중국 축구의 전설 하오하이둥은 직설적인 발언을 자주 해 ‘하오 대포’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신문에 나지 않는 내용이 있어도 하오가 말하지 않는 건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중국 제남시보망 캡처]

 
아무도 말하지 못하던 중국 축구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까발린 것이다. 하오는 또 다른 인터뷰에서 “중국에서 국가대표가 된다는 건 끝없이 회의에 참여하고 선서와 구호를 외치는 것”이라며 “축구가 주는 기쁨과 도전은 철저하게 무시됐다”고 말했다.
 
“축구엔 역사와 문화, 전승, 축적이 필요하지, 구호로 되는 게 아니다. 남의 체면이나 업적을 위한 게 아니다”라고도 꼬집었다. 시 주석의 ‘축구몽’ 달성을 위해 중국축구협회가 선수들을 다그치는 걸 비판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2년 아일랜드의 축구장을 방문해 시축하는 시진핑 당시 중국 국가부주석. 시진핑의 축구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대단해 시 주석 집권 이후 중국에서는 ‘축구 굴기’가 이뤄지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연합뉴스]

지난 2012년 아일랜드의 축구장을 방문해 시축하는 시진핑 당시 중국 국가부주석. 시진핑의 축구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대단해 시 주석 집권 이후 중국에서는 ‘축구 굴기’가 이뤄지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연합뉴스]

 
이 같은 그의 언행을 볼 때 중국 체제에 대한 불만이 계속 쌓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와 재혼한 예자오잉도 동영상에서 “남편의 행동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예는 세계 랭킹 1위였지만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동메달에 그쳤다.
 
당시 준결승에서 동료 중국 선수에게 져주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이후 예는 은퇴했다. “자유를 찾고 싶다”는 말과 함께다. 축구와 배드민턴의 전설 두 사람이 갑작스레 반기를 든 사건에 중국 사회는 매우 당황한 모습이다.
 
예자오잉은 1990년대 오랫동안 세계 여자배드민턴 1위로 군림했다. 지난해 축구 스타 출신인 하오하이둥과 재혼했다. [중국 바이두 캡처]

예자오잉은 1990년대 오랫동안 세계 여자배드민턴 1위로 군림했다. 지난해 축구 스타 출신인 하오하이둥과 재혼했다. [중국 바이두 캡처]

 
일각에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생각이 다른 사람이 존재하기 마련이라며 애써 자위하는 모습이지만 충격은 쉽게 가시지 않을 전망이다. 하오의 팀 동료 중 중국 거주자는 “그가 미쳤다”고 말하지만, 해외 거주자는 “그의 용기가 가상하다”고 말하고 있다고 한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