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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이 구글식 성과평가? 무조건 따라하지 말아라"

중앙일보 2020.06.07 08:00

구글·카카오 거친 HR 전문가 황성현 대표 인터뷰 

 
"올해 목표를 전년 대비 103%로 잡으면 3%만 더 열심히 합니다. 그런데 만약 목표를 전년 대비 10배로 잡는다면? 10배 더 일할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죠. 생각하고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게 OKR(Objectives & Key Results)의 시작입니다. "
 
인사관리(HR) 컨설팅 기업인 퀀텀 인사이트의 황성현 대표는 1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국내 기업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성과관리지표 OKR을 이렇게 요약했다.
 
세계 최대 정보기술(IT) 기업 구글이 직원 40명의 소기업일 때부터 사용한 OKR은 회사가 목표(Objective)를 설정하면 부서와 직원들이 자신들의 목표를 직접 설정한다. 국내 기업들이 많이 쓰는 핵심성과지표(KPI)처럼 하달식으로 정하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황 대표는 "KPI로 전년 대비 3%, 5% 더 달성 하네 마네 해서는 구글·애플·아마존과 같은 혁신 성장을 시도조차 할 수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구글이 한다'는 이유로 도입할 필요 없어"

황 대표는 1993년 SK네트웍스를 시작으로 야후·구글·카카오 등 국내외 IT 기업에서 인사관리를 전문으로 했다. 2010년부터 6년 여 동안 구글 본사(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서 HR 비지니스 파트너로 일했다. 2016년 귀국해 지난 3월까지는 카카오의 HR 총괄 부사장으로 일했다.  
구글·카카오 등에서 HR을 전문으로 해온 황성현 퀀텀 인사이트 대표는 "구글이 한다고 해서, 혹은 다른 잘나가는 기업들이 한다고 해서 이런저런 제도를 베껴 도입할 필요가 없다"고 조언했다. [퀀텀 인사이트]

구글·카카오 등에서 HR을 전문으로 해온 황성현 퀀텀 인사이트 대표는 "구글이 한다고 해서, 혹은 다른 잘나가는 기업들이 한다고 해서 이런저런 제도를 베껴 도입할 필요가 없다"고 조언했다. [퀀텀 인사이트]

 
그는 자신이 거친 회사 중 구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꼽았다. 황 대표는 구글에 대해 "단순히 돈을 버는 게 아니고 내가 사회의 변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느낌을 상시적으로 주는 회사"라며 "각 구성원들이 모두 최고의 실력자인 데다 리더십과 조직 문화도 구글 입사 전 밖에서 볼 때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고 했다.
 
황 대표는 "그러나 그런 구글이 한다고 해서, 혹은 다른 잘나가는 기업들이 한다고 해서 OKR과 같은 제도를 베껴 도입하면 잘될 수 없다"며 "템플릿에 집착하지 말고 조직의 일하는 방식부터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OKR을 도입하고 싶다는 국내 기업들에 되레 "도입하지 말라"는 조언을 더 많이 한다고 한다. 그는 OKR을 성공적으로 도입해 안착하려면 다음 3가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말하는 실패 용인 문화 ▶목표 달성시 급여가 얼마 오른다더라 하는 식의 불필요한 디테일에 집착하지 않는 문화 ▶주기적인 1대1 미팅 등으로 직원에게 올바른 동기 부여를 하는 문화다. 이런 문화를 갖추지 못하는 이상 굳이 OKR과 같은 새로운 업무 성과 지표는 필요없다는 것이다.
 
황 대표가 몸담았던 구글·카카오는 모두 폭발적인 성장을 수년째 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야구에서 4번 타자가 에이스라고 하지만, 9번 타자도 있고 후보 선수도 있다. 제각각 자기 몫을 할 때 좋은 팀이 되는 것인데, 그런 '좋은 팀'이라는 느낌을 주지 못하는 회사도 많다. 테크 기업이라면 개발자들에게 눈에 띄는 보상을 해주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이걸 두고 소외·차등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리더십과 조직의 미션이 명확하니 내가 개발자가 아닌데도 보람을 느끼고 회사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
 

스타트업 창업자, 조직 경험 없어 어려움 겪어 

그는 카카오에 대해서는 "국내 기업 중 가장 좋은 기업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내가 한국 사람이라서 한국 회사에서 일하는 건 (구글보다는) 쉬울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도 않더라"며 "한국 회사는 한국 회사만의 체계와 문화가 있어서 어려웠다"고 말했다. "전에 경험했던 미국 회사들과는 의사 결정 과정부터 달랐던데다 각종 서비스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쉬운 조직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카카오에서 나온 이후 최근에는 국내 스타트업들에 HR을 비롯해 경영·전략 관련 조언을 하고 있다. 황 대표는 "스타트업은 단번에 3배, 10배씩 직원 수가 늘어나는 경우가 많아서 큰 조직에서 일해본 경험이 없는 창업자나 최고경영자(CEO)들은 굉장히 힘들 것"이라고 했다. 그는 창업자들이 아예 전문 경영인을 찾아서 회사를 맡기는 것도 괜찮은 방법일 수 있다고 말한다.
 
"회사가 가진 기술과 비전이 훌륭해 외부에서 보면 후광이 나는데 실제로는 리더십이 부족한 창업자들도 많다. 기술을 잘하는 것과 경영을 잘하는 것은 다른 영역이다. 끙끙대고 앓고 있으면 아래 사람들만 힘들고 조직은 고꾸라진다. 실제로 미국 스타트업이 내는 상당수의 구인 공고가 'CEO 구함'이다. 아이디어 하나로 창업해서 여기까지 오긴 했지만, 이제 이 회사를 10배, 100배 키우려면 아예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는 게 낫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아직 한국에선 '내가 대표직에서 내려오는 것'을 스스로 용납하지 못하는 창업자들이 많다."
 
황성현 퀀텀 인사이트 대표가 미국 구글 본사에서 근무하던 시절 동료들과 함께한 모습. [퀀텀 인사이트]

황성현 퀀텀 인사이트 대표가 미국 구글 본사에서 근무하던 시절 동료들과 함께한 모습. [퀀텀 인사이트]

약점 보여줄 용기 없어…한국인 포함 아시아인 과제

황 대표는 구글 본사에서 일하던 시절 '대나무 천장(bamboo ceiling)'에 대해 석 달 넘게 고민한 적이 있다. '유리 천장'이 전세계 여성 직장인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한계라면, 대나무 천장은 아시아인들이 미국 사회에서 느끼는 한계를 빗댄 말이다. 아사아계라는 이유로 미국 기업이나 정부 조직 등에서 일정 수준 이상으로는 더 올라가기 힘들다고 느끼는 절망감이 담겨 있다. 
 
그래서 황 대표는 당시 비슷한 고민을 하던 아시아계 임직원 30여 명과 머리를 맞댔다.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인들이 대나무 천장을 뚫기 위해선 극복해야할 문화적 특징이 있었다.
▶나이·직급·돈 등 권위에 쉽게 복종한다. 
▶'나의 삶'이 별로 없다. 좋은 학교를 졸업해 꿈의 직장이라는 구글까지 온 데는 "우리 가족에게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 같은 이유가 많다.
▶관계 형성에 서툴다. 한국이 '정(情)의 나라'라고 하지만, 서양 사람들이 보기엔 '똑똑하긴 한데 웃지도 않고, 애정 표현에 서툰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굳이 친구로 만들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약점을 보여줄 용기가 없다. 몰라도 아는척한다. 체면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패자가 되는 걸 두려워하니 새로운 걸 하기를 꺼린다.
 
퇴사와 이직이 하나의 트렌드가 된 요즘 그는 젊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추구하는 바와 잘 맞아떨어지는 회사로 옮기라"고 조언한다. '내가 회사에 계속 기여하고 있는가?', '나 자신도 계속 성장하고 있는가?'라는 두 개의 질문 중 최소한 한 개에 강한 '예스(yes)'가 나오지 않는다면 다른 직장으로 이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요즘 젊은 세대는 아버지가 퇴직하고 치킨집 하는걸 봤다. 옛날엔 CEO가 되려면 영업·재무·마케팅 등 온갖 보직을 두루 다 경험해야 한다고 했지만, 이제는 다르다. 직장이 아니라 직업으로 패러다임이 옮겨왔다.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돼서 자신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 구글의 공동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개발자로 일한 게 전부다."
 
황 대표는 구체적으로 "3년 후에 옮길 곳, 옮기고 싶은 회사를 미리 정하고, 이력서도 미리 써보라"고 조언했다. 세상이 바뀌는 걸 나름대로 예측도 해보고 그 과정에서 내가 갈만한 회사도 미리 찍어두라는 것이다. 그는 "목표 의식을 가지고 있으면 가고 싶은 회사에 진짜 갈 수 있다"며 "내가 가려는 회사에 필요한 역량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미리 준비하는 시간을 벌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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