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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 있으면 굶어 죽을 판"···23년전 '엑소더스' 재현된다

중앙일보 2020.06.07 05:00

이민 공략(移民攻略)

지난달 29일 홍콩의 한 쇼핑몰에서 한 홍콩 시민이 과거 영국 식민지 시절 사용되던 홍콩 여권과 홍콩 국기모양의 스마트폰 케이스를 들고 있다.[AP=연합뉴스]

지난달 29일 홍콩의 한 쇼핑몰에서 한 홍콩 시민이 과거 영국 식민지 시절 사용되던 홍콩 여권과 홍콩 국기모양의 스마트폰 케이스를 들고 있다.[AP=연합뉴스]

홍콩 온라인 매체 '홍콩01'이 최근 올린 기획 코너 제목이다. 이 코너에선 이민에 필요한 국가별 자격조건, 구할 수 있는 일자리, 현지 생활 팁 등을 다양한 기사로 알려주고 있다. 홍콩을 근거지로 삼는 언론이 홍콩을 떠나는 방법을 상세히 가르쳐주는 역설적 상황이다.
 
씁쓸하지만 어쩔 수 없다. 독자가 가장 관심 있어 하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이민은 홍콩 사회의 화두가 됐다. 지난달 28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가 홍콩보안법을 통과시키면서다. 반발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홍콩의 특별지위 박탈을 공언했다.
[홍콩01 캡처]

[홍콩01 캡처]

홍콩 시민들은 이제 정치적 자유도, 경제적 풍요로움도 모두 잃을 거란 두려움이 크다. 이민 상담과 해외 부동산 구입 문의가 홍콩에서 급증하는 이유다.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될 당시 벌어진 엑소더스(대탈출)가 재현될 모양새다. 홍콩인이 떠나려는 나라. 대표적인 곳을 정리했다.

대만

진나 4일 천안문 사태 31주년을 맞아 대만 타이페이에서 열린 추모행사에서 시위대가 홍콩 깃발을 들고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AFP=연합뉴스]

진나 4일 천안문 사태 31주년을 맞아 대만 타이페이에서 열린 추모행사에서 시위대가 홍콩 깃발을 들고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AFP=연합뉴스]

홍콩인이 1순위로 생각할 수 있는 이민지다. 언어, 문화적으로 가장 익숙한 곳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1~4월 약 2400명의 홍콩 시민이 대만 이주 신청서를 작성했다. 지난해 같은 시기(948명)보다 2배 이상 늘었다. 지난해 대만으로 실제 이주한 홍콩인은 5858명이다. 이 역시 전년보다 41.1% 증가했다. 지난해 벌어진 송환법 반대 시위 여파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사진 셔터스톡]

차이잉원 대만 총통.[사진 셔터스톡]

일반적으로 대만에선 600만 달러(약 2억 4582만 원)를 투자해 현지인을 고용해야 영주권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대만 정치권에선 홍콩 시민을 대상으로 특별대우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지난달 27일 대만에 이민 오는 홍콩 시민을 위한 ‘홍콩 인도주의 원조 행동’ 계획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대만 정당 시대역량이 지난달 25일부터 이틀간 811명의 대만인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0.3%가 홍콩인을 지원하기 위한 난민법 개정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영국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홍콩인은 영어가 능숙하다. 인기 이주지로 영어권 국가가 꼽히는 이유다. 이 중에서 식민 지배를 경험한 영국이 그들에게 가장 익숙하다. 최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약 285만 명에 달하는 홍콩 시민들에게 영국 시민권을 부여할 수 있다고 언급하며 관심이 커지고 있다. 영국은 홍콩을 중국에 반환할 당시인 1997년 6월 30일 이전 홍콩 태생인들에게 자유롭게 왕래는 하되 일과 거주 권리는 없는 'BN(O)여권'(British National(Overseas) Passport)을 지급했다. 존슨 총리는 BN(O) 지위를 가진 홍콩 시민에게 시민권을 부여할 길을 알아보겠다고 한 것이다.

호주·캐나다

지난 3월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관광객이 마스크를 쓴 채 관광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3월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관광객이 마스크를 쓴 채 관광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영국에 이어 거론되는 곳은 영연방 국가인 호주와 캐나다다. 호주는 영어권에 시차도 거의 없다. 영국 가디언은 4일 “호주 정치권에서도 영국처럼 홍콩인들에 피난처를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이 호주 여권과 녹색당 등을 중심으로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다만 중국에 경제적으로 크게 의존하고 있는 점 때문에 곧바로 행동에 나설지는 의문이다.
 
97년 홍콩 반환 전후로 많은 홍콩인이 이주했던 캐나다 밴쿠버와 토론토 역시 이주지로 각광받고 있다. SCMP에 의하면 이미 캐나다 부동산업체를 중심으로 홍콩인의 구입 문의가 늘어나는 추세다.

싱가포르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홍콩과 비교적 가까운 데다 화교 비율이 높은 싱가포르를 알아보는 홍콩 시민도 있다. 하지만 조건이 까다롭다. 현재 싱가포르에서 외국인 영주권을 받으려면 새로운 기업이나 펀드에 250만 싱가포르 달러(22억 원)를 투자해야 한다. 돈만 있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사업 능력도 따진다.
 
홍콩 매체들은 홍콩의 부유층과 외국인 투자자들이 홍콩 내 자금을 빼내 싱가포르로 이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싱가포르의 국제학교에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자녀 입학과 관련한 홍콩 시민들의 문의가 늘었다.

중국 본토

[AP=연합뉴스]

[AP=연합뉴스]

의외라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이다. 호주 ABC뉴스는 “많은 홍콩인이 대만, 싱가포르, 호주, 영국을  이민 지역으로 고려하지만, 일부 홍콩인들은 중국 본토로 이주할 생각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해외이민이 그렇게 쉽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대만이나 영국이 홍콩인을 특별대우 해주려는 움직임을 보이지만 아직 확실치 않다. 더구나 영국 정부가 추진 중인 홍콩인에 대한 시민권 부여도 중국에 홍콩이 반환된 1997년 이후 출생자들에겐 해당 사항이 없다.
 
결국 이민을 안정적으로 하려면 영주권이 필요한데, 홍콩 시민들이 관심을 가지는 나라들 대부분은 상당한 금액의 돈을 내야 영주권을 받을 수 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홍콩에 남아 있으면, 일자리가 없어 굶어 죽을 판이다. 홍콩 여성 클로이 웡은 ABC뉴스에 “이제 홍콩에선 기회가 없다. 대규모 해고 사태가 올 것”이라며 “광둥성 광저우에 정착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치성향·형편 따라 이민 선호지역도 천차만별

지난해 9월 호주 멜버른 주립도서관 앞에서 열린 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 모습. [EPA=연합뉴스]

지난해 9월 호주 멜버른 주립도서관 앞에서 열린 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 모습. [EPA=연합뉴스]

한 해외 이민 컨설팅업체 대표는 홍콩 명보에 "성향에 따라 이민 희망 국가도 달라져 소득이 적은 젊은 층은 대만, 민주파는 미국, 친중파는 호주, 중도파는 캐나다를 희망하는 경향이 있다"며 "최근에는 터키, 키프로스 등 잘 알려지지 않은 국가로의 이민 문의도 늘고 있다"고 전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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