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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냉해 맞은 '나주배'···1만2000평 과수원에 일꾼 0명

중앙일보 2020.06.07 05:00
지난 3일 전남 나주시 다시면의 한 과수원. 이곳 과수원 주인 이보헌(48)씨는 추석 대목까지 한참을 더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야 할 푸른 배 열매가 달린 가지를 꺾고 “10개 중 9개는 얼어버려 팔지도 못하는 배”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나주배를 키운 10년 동안 이런 ‘냉해’(冷害)는 처음 겪는다”고 했다.
지난 3일 전남 나주시 다시면 배 과수원에서 농민이 냉해를 입은 열매를 자르고 있다. 나주-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3일 전남 나주시 다시면 배 과수원에서 농민이 냉해를 입은 열매를 자르고 있다. 나주-프리랜서 장정필

 

이상기온에 시름 앓는 전국 최대 배 주산지 나주
3월 따뜻한 날씨에 일찍 핀 꽃들 4월에 한파 맞아
농번기에 일손마저 놓은 농민들 "이런 냉해는 처음"

농번기에 일손 놓은 나주배 농민들

 
 나주배는 매년 4월 개화기를 지나 6월쯤이면 푸른 열매가 가지에 맺힌다. 평소대로라면 배꽃 하나당 5~6개의 열매가 맺힌다. 과수원은 6월 초여름을 앞두고 상품성이 있는 열매를 솎는 적과(摘果) 작업을 하는 일꾼으로 북적여야 한다.
지난 3일 전남 나주 다시면 과수원에서 농민이 냉해 피해를 입은 열매를 바라보고 있다. 나주-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3일 전남 나주 다시면 과수원에서 농민이 냉해 피해를 입은 열매를 바라보고 있다. 나주-프리랜서 장정필

 
 이날 4만㎡(1만2000평·1000여 그루) 규모의 이씨 과수원에는 일꾼이 단 한명도 없었다. 이씨는 "지난해 이맘때쯤 일꾼 30명이 매일같이 와서 열매를 솎고 봉지를 씌운다"며 "그런데 열매가 전부 동상에 걸려 팔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으니 손을 놓은 것"이라고 했다.
 

배꽃 필 무렵 찾아온 한파

 
 나주배원예농협에 따르면 나주지역은 지난 4월 초 8일 동안 서리피해가 있었다. 지난 4월 6일에는 영하 4도까지 기온이 떨어지는 이상기온 현상이 있었다.
 
지난 3일 냉해를 입어 모양이 변해버린 전남 나주시 다시면 과수원의 배 열매. 나주-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3일 냉해를 입어 모양이 변해버린 전남 나주시 다시면 과수원의 배 열매. 나주-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3월 8일 최고기온 18도를 기록하는 등 3월 초·중순 10도를 웃도는 따뜻한 날씨 때문에 일찍 개화기에 접어든 나주배가 4월 한파에 동상을 입어 열매를 맺지 못하거나 까맣게 변하는 냉해를 입었다. 나주배농협은 2000㏊ 규모의 나주배 과수원의 올해 착과율이 22%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했다.
 

기적같이 살아남은 열매도 상품성 없어

 
 나주시 다시면에서 배나무 450그루를 키우고 있는 이권재(76)씨는 "열매가 350개 맺히던 배나무가 올해는 고작 1~2개 열매만 맺혔다"며 "지난해 포장지를 13만장을 썼는데 올해는 단 한장도 못 썼다"고 하소연했다.
  
냉해를 입어 표면에 얼룩이 생긴 전남 나주시 다시면 과수원의 배 열매. 나주-프리랜서 장정필

냉해를 입어 표면에 얼룩이 생긴 전남 나주시 다시면 과수원의 배 열매. 나주-프리랜서 장정필

 한파를 견디고 간신히 맺은 열매도 상품성이 없다. 이씨는 "열매가 맺히긴 했어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표면에 까만 얼룩이 생겼고 모양도 이상하다"며 "이런 열매는 다 크면 먹을 수는 있겠지만, 색깔과 모양이 안 좋아 팔 수가 없다"고 했다.
 
 냉해를 상대적으로 적게 입은 농민도 생산량이 지난해 대비 20% 수준까지 줄 것으로 보고 있다. 나주 청동지역에서 과수원을 운영하는 한 농민은 "우리 과수원이 나주에서 제일 많이 배가 달린 편"이라면서도 "매년 7만개 열매에 배 포장지를 씌웠는데 올해는 2만개도 못 될 것 같다"고 했다.
 

동상 걸린 열매라도 키워야 하는 농민들  

 
 농민들은 팔 수 없는 열매라도 울며 겨자 먹기로 키워야 한다. 
지난 3일 전남 나주시 청동의 배 과수원에서 농민이 냉해로 열매가 줄어든 배 나무를 가리키고 있다. 나주-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3일 전남 나주시 청동의 배 과수원에서 농민이 냉해로 열매가 줄어든 배 나무를 가리키고 있다. 나주-프리랜서 장정필

 
 냉해를 입은 해에 새순을 틔워내는 데 힘을 쓴 나무는 다음 해 꽃을 피우지 않기 때문에 열매도 달리지 않는다. 이씨는 "냉해를 보면 오히려 농가는 할 일이 는다"며 "돈 되는 열매 하나 없어도 지금 신경 쓰지 않으면 내년에는 과수원을 갈아엎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냉해도 속상한데 보상비도 줄어

 
 나주 농민들은 "냉해를 입은 것도 서러운데 풍수해 보험 보상률마저 줄어 막막하다"고 했다. 정부와 지자체 등이 지원하는 농작물 재해보험의 냉해 보상률은 지난해 80%에서 올해 50%로 줄었다. 배 1개당 약 790원의 보험가가 책정되는데 이 중 395원만 보상받을 수 있다.
 
 나주배농협이 최악의 냉해에 보상률까지 줄어 시름 앓는 농민들을 대신해 나주배 농가 지원대책과 농작물 재해보험 보상 개선을 촉구하는 건의문을 농림축산식품부에 전달했지만,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나주배농협 관계자는 "농협 자체 재원으로 냉해 관련 병충해 농약을 긴급지원하고 여러 가지 대책을 모색하고 있다"면서도 "나주배 농가들이 과수원을 포기하는 상황만은 막으려면 정부 차원의 대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나주=진창일 기자 jin.cha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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