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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안심 안 되는 ‘안심구매 항공권’

중앙일보 2020.06.07 00:03
‘현금 벼랑 끝’ 항공사의 고육지책 파산시 소비자는 속수무책

취소·변경 수수료 없다?, 보호 장치도 없다!

 
‘안심구매 캠페인’을 펼치고 있는 항공사 홈페이지. / 사진:각 항공사 홈페이지 캡처

‘안심구매 캠페인’을 펼치고 있는 항공사 홈페이지. / 사진:각 항공사 홈페이지 캡처

코로나19 확산으로 하늘길이 막히면서, 항공사의 현금 유입길도 막혔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신용카드 매출 데이터를 바탕으로 5월 21일에 발표한 ‘코로나19가 가져온 소비 행태의 변화’ 자료에 따르면 지난 3월 항공사에 사용된 신용카드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84% 감소했다. 전체 항공사 올해 1분기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50%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항공사의 현금자산이 줄어들어, 기존에 보유하고 있는 현금 곳간이 전부인 셈이다.
 
항공업계에는 코로나19로 구멍난 ‘현금자산’을 메우기 위해 다양한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안심구매 캠페인’이다. 미리 비행기 탑승권을 구매한 소비자에 한해, 일정 기간 동안 티켓 사용기간을 변경하고 취소하는 데 있어서 수수료를 물지 않는 마케팅 전략이다. 현재 항공업계가 현금 자산을 끌어올릴 수 있는 유일한 방안으로 평가되지만, 일각에서는 소비자에겐 안심구매가 아닌 ‘도박구매’가 될 수 있음을 우려한다.
 
항공업계는 거대한 현금자산이 필요한 업종이다. 항공서비스를 펼치는데 필요한 인건비와 공황시설 이용료는 기본이고, 비행기 부품을 관리하는 정비 비용도 크다. 한국항공협회 관계자는 “비행기가 아예 운행하지 않기 때문에 인건비 등 운영비용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공항시설 이용비와 정비 비용은 운영 여부와 상관없이 꾸준히 들어가는 돈”이라면서도 “그러나 비행기 부품은 현행법상 항공사들이 여분을 준비해놔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항공사들이 1~2년 전부터 선(先)구매하고, 매달 부품값을 납부라고 있다. 현재 현금자산이 없으니, 부품값도 제대로 못 내고 정비도 못할 실정”이라고 말했다.
 
항공운임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하는 ABS(Asset backed securities, 항공운임채권)도 문제다. 항공사는 ABS를 활용해 미리 자금을 조달하고 이를 노선 운행 이익으로 갚아가는 시스템을 따르는데, 이 채권을 갚을 여력도 점점 없어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향후 비행 일정도 확실치 않아, 추가적인 채권 자금 조달도 어려운 상황이다.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지난 4월 한국신용평가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발행한 ABS 신용등급을 각각 A와 BBB+에서 A-와 BBB로 강등했다.
 
 

기한 내 무료변경 1회, 연장기간도 1년 내

이 때문에 현금자산 벼랑 끝에 서있는 항공계가 내놓은 전략이 ‘안심구매 캠페인’이다. 대한항공, 아시아나, 제주항공, 티웨이 등이 진행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한국을 제외한 해외에서 출발하는 국제선 항공권을 5월 31일까지 미리 사두면, 항공권 유효기간 안에 출발일자를 수수료 없이 1회 변경해준다. 아시아나항공은 4월 30일까지 발권한 국제선 항공권에 대해 환불 위약금 면제 또는 여정 변경으로 인한 재발행 수수료를 1회 면제해준다. 제주항공과 티웨이도 특정 운행 구간에 대해 1회 항공권 변경과 취소를 가능토록 했다.
 
‘지금 예약하면 취소하거나 환불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소비자의 불안감을 줄인 마케팅 전략이다. 하지만 각 항공사가 내건 이벤트를 자세히 살펴보면 불안요소가 곳곳에 존재한다. 가장 큰 불안요소는 ‘1회’로 제한한다는 것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지인들이 항공권을 미리 사두는 것이 이득이냐고 물어오지만 그때마다 웬만하면 사지 말라고 조언한다”고 말했다. 그는 “소비자 사정에 의한 변경과 환불이 수수료 없이 이뤄지는 건 큰 혜택이지만 출발일을 1회 변경하면 그 혜택은 끝난다. 코로나19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1회 변경 혜택만 보고 항공권을 구입하기엔 도박과 같다”고 말했다.
 
변경일자도 항공사가 정한 기간 안에서 선택해야한다는 점도 불안요소다. 언제든 자유롭게 출발일정을 한번 바꿀 수 있는 것처럼 소개하고 있지만, 항공사 약관까지 찾아보면 출발 일정을 바꿀 수 있는 기간은 대부분 1년 내로 짧다. 제주항공 항공권을 구매한 소비자는 항공권을 변경하더라도 10월 25일 이내로 출발하는 일정으로 변경해야한다. 연장 기간이 길게 잡아도 8개월에 불과하다. 대한항공 항공권을 구매한 소비자는 구매한 당일으로부터 1년 안에 출발하는 항공권으로 변경해야 한다. 대한항공의 이벤트 홈페이지에는 변경가능 일자와 변경 출발 가능 기간에 단순히 ‘항공권 유효기간 이내’라고 적어뒀다. 그러나 대한항공사 약관을 꼼꼼히 따지면 해당 이벤트 유효기간은 운송개시일로부터 1년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외국항공사들의 ‘안심구매 캠페인’은 횟수 제한과 기한 제한을 없앴다. 캐세이퍼시픽은 6월 30일까지 항공권을 예약한 소비자에게 1년 동안 횟수와 상관없이 항공권 변경에 대한 수수료 무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단, 기간은 1년 내다. 반면 루프트한자그룹은 변경할 항공권에 대해 사용 기간을 정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외항사 항공권은 100% 믿을 수 있다’고도 볼 순 없다. 지난 3월 외항사들이 국내 소비자의 환불접수처리 시스템을 아예 차단하는 문제가 있었다. 베트남항공, 에어 아스타나, 엔 에어프랑스, KLM 네덜란드항공 등이 잇따라 한국 소비자들이 신청하는 환불 시스템 전체를 내렸다. 외항사는 국내 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일방적인 조치에도 법적 소송 또는 공정거래위원회 신고가 어렵다. 환불처리 시스템이 열리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항공사가 현금자산 확보에 허덕이다 ‘파산’에 이르면 더욱 큰일이다. 항공사 파산은 상상이 아닌 실제로 이뤄지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지난 4월 호주의 2위 규모 항공사 버진 오스트레일리아가 자발적 법정관리에 돌입했고, 태국 국영항공사 타이항공은 5월 19일 파산법에 따라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회생절차를 밟고 있다. 중남미 최대 항공사인 라탐항공그룹 역시 파산보호를 신청했고, 보름 앞서 2위 항공사 아비앙카 항공도 파산보호신청을 했다.
 
 

항공사 파산시 환불은 사실상 어려워

이처럼 항공사 파업을 신청하면, 미리 항공권을 구입한 소비자는 환불받지 못한다. 보증보험에 가입해 있어 파산하더라도 일부 금액을 돌려받을 수 있는 여행사와는 다르다. 임다훈 변호사 법률사무소 대표는 “항공권 환불에 관해 공정거래위원회의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이 일정정도 환불기준을 마련하고 있지만, 항공사가 파산하는 경우를 설정하고 있지 않다”며 “또 항공사업법은 항공운송사업자가 항공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하도록 하고 있지만, 보험한도를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환불을 보장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따라서 항공사 파산절차에서 항공사의 부동산과 비행기 등을 매각해 변제받는 수밖에 없는데, 결국 항공사 파산시 예매한 항공권을 환불받는 것은 쉽지 않은 길”이라고 말했다
 
 
라예진 기자 raye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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