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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개발하듯 식물성 고기 개발…30조 시장 노리는 비거니즘 스타트업

중앙일보 2020.06.06 08:00
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위치한 푸드 테크 스타트업 '지구인 컴퍼니'. 이 회사 민금채 대표는 글로벌 프랜차이즈 관계자와 신규 메뉴 출시를 위한 화상회의 중이었다. 식물성 대체 고기 '언리미트'로 만든 샌드위치, 햄버거를 해당 프랜차이즈 대표 메뉴에 올리기 위해서다. 잘만 진행되면 오는 9월 한국 매장을 시작으로, 전 세계 4만개 이상 매장에 언리미트를 공급할 길이 열린다.
 
지구인컴퍼니가 만든 식물성 대체육 언리미트를 활용한 시중 프랜차이즈 식당의 메뉴.

지구인컴퍼니가 만든 식물성 대체육 언리미트를 활용한 시중 프랜차이즈 식당의 메뉴.

 
2017년 창업한 지구인컴퍼니는 언리미트로 지난해 40억원을 투자받은 스타트업이다. 언리미트는 시장 출시 후 지금까지 매드포갈릭 등 8개 외식 브랜드에서 13개 비건 메뉴를 출시했다. 민 대표는 "최근 국내외에서 비건(Vegan, 동물성 재료를 먹지 않는 채식주의)에 대한 관심이 증가해 제품 문의가 많아졌다"며 "올 하반기 유력 글로벌 프랜차이즈 2곳에 추가로 비건 메뉴를 출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밀레니얼 화두 '비건', 30조원 미래 시장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비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지난 5년간 구글 트렌드의 국내 '비건' 검색 결과를 보면 2018년까지 미미하던 검색량은 지난해부터 증가하고 있다. 유튜브에선 '채식 브이로그'나 '비건 식당 도장 깨기' 같은 콘텐트가 늘었다. 10대가 많이 쓰는 틱톡 등 동영상 플랫폼에선 비건 라이프를 공유하는 영상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비건 베이커리 스타트업 더브래드블루의 문동진 대표는 "젊은 소비자들이 비건을 힙한 트렌드로 여기면서 비건 상품을 찾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구글트렌드에서 비건 키워드를 검색하면 2018년 이후 검색량이 계속 늘어나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구글트렌드에서 비건 키워드를 검색하면 2018년 이후 검색량이 계속 늘어나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비건 시장도 성장 중이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그랜드뷰 리서치는 2018년 이후 세계 비건 시장이 연평균 10% 가까이 성장해 2025년에는 3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전 세계 비건 인구는 1억 8000만명. 한국 채식연합은 국내 비건 인구를 약 50만명 안팎으로 보고 있다. 채식을 지향하는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까지 합치면 전국민의 3% 수준인 150만명으로 추정된다.
 

실리콘밸리, 대기업도 뛰어드는 시장

그간 '비건'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았다. '먹을 거로 왜 까다롭게 구냐'는 눈총을 받았다. 하지만 최근 인식이 변하고 있다. 신한카드 빅데이터 분석에 따르면(2019년 8월~2020년 1월) 인스타그램에 ‘비건’에 대한 부정 감성어는 41%에서 28%로 감소했고, 긍정 감성어는 59%에서 72%로 늘었다.

 
푸드테크 스타트업을 창업한 지구인컴퍼니 민금채(왼쪽), 더브래드블루 문동진, 더플랜잇 양재식 대표(오른쪽).

푸드테크 스타트업을 창업한 지구인컴퍼니 민금채(왼쪽), 더브래드블루 문동진, 더플랜잇 양재식 대표(오른쪽).

 
식물성 마요네즈 상품을 내놓은 더플랜잇의 양재식 대표는 "대기업들도 국내 비건 시장의 가능성을 보고 뛰어들고 있다"며 "라면·짜파게티 스프에 들어가는 고기는 이미 콩고기로 대체됐고 계란·고기·우유 시장도 비건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SPC그룹, 동원F&B, 롯데푸드, CJ, 풀무원 등은 잇달아 비건 제품으로 성장동력을 확보하겠다고 선언했다. 업계에선 국내 비건 시장 규모를 약 6조원가량으로 보고 있다.
 
비건 열풍은 해외에서 먼저 불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선 식물성 대체육으로 이름을 알린 비욘드미트와 임파서블 푸드, 식물성 달걀 '저스트 에그'를 개발한 저스트 등이 주목받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 야후 창업자 제리양도 비건 시장의 가능성을 보고 대규모 투자를 했다. 네슬레, 타이슨푸드, 맥도날드 등도 비건 시장에 속속 진입 중이다.
 
최근엔 먹거리뿐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전체로 '비거니즘'이 확산된다. 대표적인 곳이 뷰티와 패션 분야다. 코르크로 가죽을 만들어 가방 등 패션 제품을 생산하는 스타트업 엘앤제이 이성민 대표는 "가치 소비개념이 밀레니얼을 중심으로 자리 잡으며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화장품, 식물성 섬유, 재활용 패션 등 비거니즘 브랜드가 인기를 끌고 있다."고 했다. 
 

식물성 고기개발 테크 스타트업

 
비건 스타트업도 여타 스타트업과 마찬가지로 기술이 중요하다. 더플랜잇의 양재식 대표는 "식품 산업은 카피캣이 나오기 쉬운 시장이라 남들이 시도하기 힘든 기술적 탁월함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더플랜잇의 식물성 마요네즈와 기존 마요네즈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 비교.

더플랜잇의 식물성 마요네즈와 기존 마요네즈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 비교.

 
고체와 액체의 중간 상태인 반고체(半固體) 특성을 가진 마요네즈를 첫 상품으로 택한 것도 그런 이유다. 더플랜잇은 다음 달에 기존 우유를 대체하는 식물성 우유를 선보일 예정이다. 양 대표는 "식물성 원료를 조합해 우유와 가장 유사하면서도 유당 분해, 항생제 문제가 없는 상품을 개발했다"며 "콩으로 만드는 두유나 아몬드유와 달리 라떼에도 쓰일 수 있고 치즈로도 개발할 수 있는 우유"라고 설명했다.
 
지구인컴퍼니 민금채 대표도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민 대표는 "대체육으로 유명한 미국 임파서블푸드가 IT기업 중심인 세계가전박람회(CES)에 참석하는 건 자신을 기술기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식물성 고기 산업은 음식보다는 반도체 기술에 가깝다"고 했다. 그는 "고기는 맛있냐 아니냐로 구분되지만, 식물성 고기는 향미, 식감, 육즙, 산도(PH), 영양 등 기술 연구에 따라 계속 진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행동하는 비건 소비자

 
비건 소비자는 적극적이다. 비거니즘 관련 위키피디아를 표방하는 '비건편의점위키' 등에선 비건 식당이나 제품 정보 등이 수시로 업데이트된다. 채식도시락'이란 이름이 붙으면 회사에 원재료 문의를 하고 결과를 공유하는 식. 거짓으로 확인된 비건 제품에 대해선 불매운동을 펼치기도 한다. 구글오픈맵 '비거니즘 지형도'에는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등록한 640여개의 비건 관련 장소가 등록되어 있다. 
 
비거니즘 잡합 위키피디아를 표방하는 비건편의점위키.

비거니즘 잡합 위키피디아를 표방하는 비건편의점위키.

  
더브래드블루 문 대표는 "소비자 요청에 따라 동물성 지방 우유를 사용하지 않는 노(No) 밀크를 도입했고, 빨대를 스테인리스로 바꾸고 노(No)플라스틱 주문을 실천하는 중"이라고 했다.
 

"맛이 있어야, 가치도 논할 수 있다"

 
비건스타트업 대표들은 '비거니즘'의 가치를 존중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성공이 어렵다고 했다. 지구인컴퍼니 민 대표는 "음식의 본질은 '맛'이고, 소비자의 첫 번째 고려사항은 '가격'일 수밖에 없다"며 "환경이나 동물권 등 착한 가치 소비보다 비건, 플렉시테리안에게 더 다양한 선택권을 준다는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더플랜잇 양 대표도 "비거니즘의 가치에 공감하지만, 채식메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국내의 경우 비건을 강요하거나 추천하는 것 또한 폭력적일 수 있다"며 "모든 소비자가 환경을 생각하고 지구의 지속가능성과 공존에 가치를 둘 수 있게 일상적 삶의 부분으로 녹아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원엽 기자 jung.wonyeo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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