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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3300m 마을 사망 0명…높은 곳 살면 코로나 덜 걸린다?

중앙일보 2020.06.06 05:00
볼리비아 라파스(해발 3600m), 페루 쿠스코(해발 3399m), 에콰도르 키토 (해발 2850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남미 고산지대 도시들이 주목받고 있다. 감염이나 인명피해가 저지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나타나면서다. 
 
페루 고산지대인 쿠스코 인근 유적지 마추피추. 쿠스코에서 코로나19 확진 사례는 916건으로 감염률이 전국 평균 20% 이하다. [AFP]

페루 고산지대인 쿠스코 인근 유적지 마추피추. 쿠스코에서 코로나19 확진 사례는 916건으로 감염률이 전국 평균 20% 이하다. [AFP]

워싱턴포스트(WP)와 파이낸셜 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의학전문 학술지 ‘호흡기 생리학·신경생물학’ 최신호에는 흥미로운 역학조사 결과가 게재됐다. "볼리비아·에콰도르·페루 등 고산지대 도시의 코로나19 확산 정도가 저지대 도시보다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는 내용이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5월 말 기준 볼리비아의 코로나19 확진자 약 9000여명 중 6711명이 저지대인 산타크루스(해발 400m)에서 발생했다. 반면 해발 3600m의 라파스 등 고산지대 확진자는 507명에 그쳤다. 고지대와 저지대 간 코로나19 확진자 수 격차는 에콰도르의 저지대 항구도시 과야킬과 고지대 키토(해발 2850m) 사이에서도 나타났다. 특히 에콰도르와 볼리비아 마을 가운데 안데스 산맥에 위치한 곳의 확진 건수는 전체 감염자 수의 1/4, 1/3 수준으로 저지대보다 눈에 띄게 낮았다. 
 
해발 154m에 위치한 페루 수도 리마. 고산지대 쿠스코와 달리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해 수백명이 목숨을 잃었다. [AP=연합뉴스]

해발 154m에 위치한 페루 수도 리마. 고산지대 쿠스코와 달리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해 수백명이 목숨을 잃었다. [AP=연합뉴스]

페루에서는 그 격차가 더 컸다. 해발 3300m인 쿠스코에서 감염 사례는 916건으로 감염률이 전국 평균의 20% 이하였다. 사망자도 3월 말 발생한 해외 관광객 3명을 제외하고는 한 건도 없었다. 반면 수도 리마(해발 154m)에선 코로나19 감염자가 집중돼 수백명이 목숨을 잃었다. 페루 전역에서는 40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역학조사만 보면 높은 곳에 사는 사람들이 낮은 지대 거주자들보다 코로나19에 걸릴 위험이 더 적은 것처럼 보인다. 사실일까?
 

저산소증 적응력이 코로나19 확산 막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직은 가정일 뿐이다. 조사를 이끈 볼리비아·호주·캐나다·스위스 연구진은 이번 역학조사를 토대로 ‘고도와 코로나19 확산 사이에 관계가 있다’는 가설을 세운 뒤 두 가지 근거를 제시했다.
 
볼리비아에서 경찰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형상화한 인형을 쓰고 사회적 거리 두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볼리비아에서 경찰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형상화한 인형을 쓰고 사회적 거리 두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첫 번째 근거는 고지대 주민들의 뛰어난 폐 기능과 저산소증 적응력이다. 연구진은 코로나19 경증 환자들이 보이는 ‘저산소증’이 고산지대 환자에게서는 잘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저산소증은 혈액 내 산소가 부족할 때 나타나는 현상으로 고도가 높아질수록 심해진다. 코로나19 환자 가운데는 폐 손상으로 저산소증을 겪은 사례가 있었다. 연구진은 고산지대 주민들이 높은 지대에 살면서 이미 저산소증에 익숙해져 있고, 폐 기능도 일반인보다 발달해 ‘혈액 내 산소 부족현상’을 쉽게 극복할 것이라고 가정했다.  
 
두 번째 근거는 높은 자외선 지수와 건조한 대기, 낮은 기압 등 자연환경이다. 자외선이 코로나 19 확산을 둔화시킨다고 가정했을 때 자외선 지수가 높은 고산지대에서 바이러스 파괴력이 더 커진다는 것이다. 또 건조한 날씨와 낮은 기압이 바이러스 확산 속도를 늦추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추측했다. 
 
에콰도르 키토에서 한 남성이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마스크를 쓰고있다. [AFP=연합뉴스]

에콰도르 키토에서 한 남성이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마스크를 쓰고있다. [AFP=연합뉴스]

후속 연구, 가치는 있지만… 

물론 반론도 있다. 2009년 멕시코 독감 때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당시 고지대 주민들이 저지대 주민들보다 독감에 더 취약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안드류 룩스 워싱턴대 의대 교수도 “고지대로 올라갈수록 혈전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져 더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자외선이 바이러스를 죽인다는 과학적 증거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완 이디 스코틀랜드 나인웰스 병원 방사선학 전문가는 “자외선이 공기 중에 떠다니는 바이러스를 박멸한다는 과학적 증거는 없다”면서 “바이러스는 주로 실내에서 전파되고 있고, 자외선은 유리를 통과할 때 힘을 잃기 때문에 코로나19와 자외선을 연결짓기엔 무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과학자들은 연구를 이어갈 가치는 있다며 각 도시의 사회학·인구통계학적 요인과 주민들의 건강 수준·생활습관 등 다양한 요인을 추가로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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