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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전·새 떼와 싸움 이기고 모래땅서 ‘금쪽 같은 쌀’…UAE “어메이징”

중앙선데이 2020.06.06 00:36 689호 6면 지면보기

지구촌 K농업 열풍

인구 989만 명의 중동 부국 아랍에미리트(UAE)는 전체 영토의 97%가 사막이다. 토지로 이용할 수 있는 면적은 국토의 3% 정도밖에 안 된다. UAE는 자원 부국이지만 땅이 척박해 농식품의 85%를 수입에 의존한다.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약 95㎏이다. 우리 국민 1인당 쌀 소비량(61㎏)을 훌쩍 뛰어넘는다. 쌀이 주식이지만 UAE에는 쌀 한 톨 나지 않는다. 전량 수입해 먹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쌀의 안정적 확보는 UAE의 오랜 국가적 과제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첫 단계 도전이 지난해 11월 시작됐다. ‘사막 쌀 재배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영토 97%가 사막 ‘미션 임파서블’
농진청, 인공 환경 맞춰 4개월 준비

pH 높은 물, 토양 환경 하나씩 극복
반년 만에 10에이커당 763㎏ 거둬

토양 40㎝ 깊이에 부직포 매립하고
호스 묻어 수분을 뿌리에 직접 공급

이 프로젝트는 한국의 농촌진흥청이 맡았다. 샤르자 지역 1890㎡ 부지에 ‘아세미’라는 품종의 씨앗을 뿌린 지 6개월 후인 지난달 6일, 10에이커(약 300평)당 763㎏의 쌀을 수확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국내에서 동일한 품종을 재배했을 때보다 40%가량 증가한 것이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UAE 측 관계자들도 놀라워하는 분위기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중앙SUNDAY가 농진청 관계자들의 증언을 통해 불가능해 보였던 이 프로젝트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꼼꼼히 들여다봤다.
  
농진청, 아세미 벼품종으로 도전
 
지난해 11월 중순 UAE 샤르자 사막에서 농지 평탄화 작업이 시작됐다. [사진 농촌진흥청]

지난해 11월 중순 UAE 샤르자 사막에서 농지 평탄화 작업이 시작됐다. [사진 농촌진흥청]

UAE 사막에서 벼 재배가 가능한지를 검토하기 위해 우선 국내에서 시험 재배를 했다. 사막 지형과 최대한 비슷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전북 김제의 광활 시험지(간척지) 400㎡에 25t 트럭 13대 분량의 모래를 쏟아부었다. 4개월여(2019년 6~10월) 동안의 시험 재배 결과 농진청이 개발한  ‘아세미’ 등 2개 품종이 고온과 염분에 강한 것으로 나타나 UAE 현지에 적합할 것으로 결정됐다. 하지만 실제 사막 환경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이충근 박사(농진청 국립식량과학원 농업연구관)의 얘기다.
 
“UAE는 5~8월까지 최고 40도를 웃도는 기온이고, 평균 기온도 33~35도의 고온이라 이 기간에는 벼 재배가 힘들다고 봤다. 또 지하수와 담수, 토양이 pH가 높은 알칼리성이라는 점이 큰 걸림돌이었다.”
 
재배지역으로 UAE의 기후변화환경부 농업혁신센터가 있는 샤르자 사막 지역으로 결정됐다. 벼농사가 처음인 곳이라 농사 관련 기자재 하나를 구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물이 한쪽으로 쏠리는 현상을 막기 위해 농지 포장 평탄(균형)작업을 하는 과정에서도 연구원들이 직접 삽을 들고 뛰어야 할 정도로 열악했다.
 
3월 중순, 새 떼 피해를 막기 위해 중점구역에 독수리연과새 망을 설치했다. [사진 농촌진흥청]

3월 중순, 새 떼 피해를 막기 위해 중점구역에 독수리연과새 망을 설치했다. [사진 농촌진흥청]

사막 토양의 물 빠짐을 최소화하기 위해 토양 40㎝ 깊이에 부직포를 매립하고 지중점적관(땅속에 호스를 묻어 물방울을 작물의 뿌리에 직접 공급하는 시설)도 설치했다. 9일에 걸쳐 농지조성이 끝난 후 11월 25일 사람이 밀고 끄는 형태의 수동 동력 파종기를 이용해 첫 파종을 했다. 프로젝트 초기부터 샤르자 현지에서 수개월을 머무르며 전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현석 농진청 국립식량과학원 연구사는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싹이 틀 기미가 보이지 않아 마음을 많이 졸였다”면서 “파종 14일쯤 지나 싹이 올라온 것이 관찰돼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겨우 싹은 텄지만, 하루하루가 바늘방석 같은 날이었다. 이 연구사의 말이다.
 
“주말 휴일에도 쉰 적이 없었다. 눈을 뜨면 일찍부터 현장에 나가 벼 생육 상태를 꼼꼼하게 살펴야 했다. 전력 시설이 좋지 않아 전기가 끊어지면 골치가 아팠다. 물 공급이 끊겼기 때문에 벼 생육에 문제가 발생할까 걱정이 많았다.”
 
UAE 사막에서 벼 재배 성공 과정은?

UAE 사막에서 벼 재배 성공 과정은?

생각지 못한 현장 변수 중 하나가 단전 사태였다. 비가 오면 전기가 끊어지는 상황이 종종 벌어졌다. 전기 시설 수리하기 위해 기사를 불러도 한국처럼 바로 오지 않고 며칠씩 걸리기 일쑤였다. 현지에서 내리는 비는 pH가높은 데다, 물 공급까지 제대로 안 되면 pH 수치가 더 올라갔다. 벼 생육에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파종 후 3주차(12월 중순 이후) 때부터 벼 잎이 노랗게 변하는 황화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토양 중화제 처리, 역삼투 정수장치 설치 후 관개용수의 염도와 pH를 낮추어 공급하자 증상이 완화됐다. 황화현상이 잡히자 2월 초부터(파종 10주차) 벼 잎끝이 마르는 현상이 발생했다. 위기의 연속이었다.
 
“농진청이 토양전문가 등 신속대응팀을 현지에 파견해 원인 분석에 나섰다. 현지 정보로는 pH 7.5 정도였는데 실제로는 pH 8~9까지 상당히 높게 나와 벼가 정상적으로 자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관개용수에 황산을 투입해 물의 pH를 5.0으로 낮추고 저농도의 비료를 관개용수에 녹여 공급하면서 3~4일 만에 생리장해가 잡혔다.”(이충근 박사)
  
하반기 실증연구 땐 물 줄이는 게 관건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중국에서 발생한 메뚜기 떼가 중동 일부에서 발견됐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발 빠르게 국내에서 준비해간 병해충 약 처리도 했다. 3월 중순에서 4월 초가 지나면서 벼 이삭패기가 끝날 무렵 이번에는 새떼가 문제가 됐다.
 
“우리나라 참새와 비슷한 새 떼가 많았다.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는데 대비를 하지 않으면 다 된 농사에 피해가 작지 않을 것 같았다. 서둘러 새 망을 치고, 독수리 연까지 설치했다. 일부 새 떼로 인해 피해가 난 곳도 있었다.”(이충근 박사)
 
5월 10일 벼 수확 때 UAE 현지 담당자는 “이 정도로 성공할 줄 몰랐다”며 “어메이징(amazing)”을 연발했다고 한다. 남은 과제는 쌀 생산액(ha당 565만원)에 비해 큰 비용이 들어가는 물 비용(담수, ha당 2000만원)을 해결해 경제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물 사용량을 70%까지 줄이는 고랑 재배, 포기별 점적관수를 포함해 지하수를 활용하는 방안 등 다양한 대안이 검토 중이다. 이충근 박사는 “코로나 사태로 시기는 조율 중인데 하반기 중 면적을 더 확대해 벼 재배(2차 실증연구)에 들어갈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고성표 기자 muze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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