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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스타벅스 빌런과 쿠팡 근로자에 대한 단상

중앙선데이 2020.06.06 00:30 689호 31면 지면보기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이건 특정한 소비 행태를 비난하거나 한탄하려는 게 아니다. 특정 기업의 마케팅에 대한 반감을 표현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 시점에 한번쯤 생각해보고 넘어갔으면 하는 대목이 있을 뿐이다. 지난주부터 ‘핫’ 키워드로 떠오른 스타벅스와 쿠팡의 이야기다.
 

굿즈에 열광하는 요즘 소비 문화
팬덤 활용한 ‘승자독식’의 정당화
팬덤·스토리 없는 보통 소비자들
공공선 생각하는 소비 생각할 때

‘커피 300잔 빌런(villain·악당)’. 이 무명의 인물은 단연 지난주 유통가 최고의 화제였다. 서울에 있는 스타벅스의 한 지점에서 커피 300잔을 시킨 후 한 잔만 받고, 대신 17개의 사은품을 챙겨갔다는 인물이다. 음료를 사고 받은 쿠폰 17장을 모으면 사은품을 주는 스타벅스의 기획행사에서 벌어진 일이란다.
 
이 일을 기점으로 스타벅스의 사은품 ‘섬머레디 백’은, 이 여름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아이템처럼 급부상했다. 이 백을 받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는 진풍경도 벌어졌단다. 경제 뉴스 면은 마치 스타벅스 홍보 전사들인 양 일주일 넘게 이 사은품 얘기를 쏟아놓는다. 한편에선 굿즈(기념품) 열풍에 대한 경제·사회학적 분석이 쏟아진다.
 
“샤넬은 못 사도 ○○은 살 수 있다.” 그동안 특정 물건에 대한 과열 현상이 벌어질 때마다 관용구처럼 쓰인 말이다. 이번에는 ○○ 자리를 스타벅스가 차지한 것이다. 이런 굿즈 열풍은 일상에서 작은 사치를 즐기려는 사람들의 놀이문화라는 것이다. 뉴요커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동경이 스타벅스 구매로 이어진다나…
 
이렇게 생필품도 사치품도 아닌 기념품에 열광하는 기현상을 ‘팬덤 경제학’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최근 10년도 안 되는 사이에 뚜렷하게 떠오른 소비현상이다. 특정 연예인·스타·캐릭터 등에 열정적으로 몰입하는 사람들을 ‘굿즈’로 불리는 기념품 소비로 끌어낸 유통과 마케팅 기법. 연예 기획사들은 열정적으로 연예인 굿즈를 만들어 판다.
 
선데이칼럼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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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좀 알려진 스타, 스포츠 선수, 정치인뿐 아니라 기업들도 조금만 이름이 알려진 브랜드가 있으면 굿즈를 만든다. BTS와 펭수 같은 요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굿즈 히어로, 네이버와 카카오 같은 플랫폼 회사, 커피전문점이나 생활용품 회사들도 굿즈를 내놓고,  ‘이니 굿즈’라는 문재인 대통령 굿즈까지 나오기도 있다. 일본상품 불매 운동처럼 특정 사회운동에 동참한다는 뜻을 보여주기 위한 ‘사회운동 굿즈’도 있다. 요즘 굿즈의 세상은 무궁무진하다.
 
마케팅의 기본은 ‘유혹의 기술’이다. 최근 굿즈 마케팅은, 이 물건을 사야 진정한 이 시대 트렌드 세터라는 유혹과 함께 동류(同流) 의식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소비되는 측면이 있다. 물론 작은 물건 하나로 재미와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쁜 일은 아니라고 본다. 누구나 시대적 삶의 고충이라는 게 있으므로.
 
그러다 이번에 스타벅스와 동시에 일어났던 쿠팡 부천 물류센터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가 오버랩 되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왔다. 물류센터 냉동고에서 패딩을 돌려가며 입고, 코를 흘리며 분류작업을 하느라 추워서인지 코로나19에 걸린 때문인지 분별도 못 한 채 날이 밝으면 또 다른 생업의 현장으로 뛰어갔다는 근로자들. 스타벅스 가방이 벌써 인터넷 중고거래 장터에서 7만5000~9만원 대에 거래되면서 스타벅스 빌런도 굿즈를 되팔기 위한 일종은 작은 ‘투기’목적으로 샀다는 게 일반적인 추측이다. 그 역시 생계형 ‘빌런’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팬덤도 없고, 스토리도 없는 보통의 사람들이 살기엔 너무나 팍팍한 시대’ ‘스타와 스타벅스에 돈과 노력을 바치는 팬덤은 누구인가’ ‘우리는 너무 쉽게 승자독식을 용인하거나 조장하고 있는 건 아닐까’…
 
팬덤으로 부유해진 스타와 브랜드들은 지적재산권 보호로 누구도 그 이익을 넘볼 수 없는 승자독식의 세상을 누린다. 우리 시장자본주의 경제는 자기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총력을 다하라고 권장해 왔으니 뭐라 할 말도 없다.
 
다만 우리도 이제는 이 시대의 또 한 편에서 일어나고 있는 ‘시민성의 각성’. 그 움직임에 대해 좀더 민감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업도 사회의 공공재로 자기 물건을 팔고 영리만 추구하는 게 아니라 근로자의 노동 가치를 인정하고, 공공선에 기여하며, 공공성을 높이는 건전한 사회 기풍 조성에 헌신해야 한다는 ‘기업의 시민성’ 가치.
 
여기서 더 주목하고 싶은 건 ‘소비자 시민성’이다. 소비자들이 일상적 소비에서도 공공선을 추구하고, 윤리적·환경적·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한 지식과 태도를 습득해 행동하는 것. 노동력과 하청업체 착취로 대기업이 이익을 독식하는지를 감시해 사회의 균형을 유지하도록 하는 일. 이로써 ‘호갱’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보호하고, 제품과 서비스에서 안전해질 권리를 찾으려는 의식이다.
 
자체 디자인팀을 둔 스타벅스 코리아의 디자인 경쟁력을 칭찬하는 한편으론 그로 인하여 그늘진 구석은 없는지 살펴보는 일. 쿠팡의 근로자처럼 고단한 소비자들의 동경과 꿈으로 만들어준 부가 다시 사회로 흐르는 게 아니라 승자의 전리품처럼 쌓여있기만 한 것은 아닌지 따져보는 일…. 소비자의 의식이 바뀌면 많은 게 바뀔 수 있다. 이젠 스타와 스타벅스의 부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팬덤 소비자들의 고단한 일상에도 눈을 돌려보면 어떨까.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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