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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과 교류…화가 진환의 흔적

중앙선데이 2020.06.06 00:21 689호 21면 지면보기
진환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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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환 평전
진환기념사업회 엮음
살림
 
소 그림 하면 흔히 이중섭을 떠올리지만 진환(본명 진기용, 1913~1951)이라는 화가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1930~1940년대 화가 이중섭(1916~1956)·이쾌대(1913~1965)와 동인으로 활동했지만 진환은 근대미술사에서 “그 존재조차 심연 속에 매몰된” 비운의 화가였기 때문이다. 1951년, 38세에 세상을 떠나기 전 화가로 활동한 기간도 15년도 채 안 될 정도로 짧았다.
 
1913년 전북 고창군 무장 출신의 진환은 1934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일본미술학교에서 수학했으며 1941년 도쿄에서 이중섭·이쾌대와 ‘조선신미술가협회’를 창립했다. 해방 후 부친이 고향에 설립한 무장농업중학교(현 영선중·고등학교) 초대 교장을 지내고 1948년 홍익대 미대 초대 교수를 지냈다.
 
주목할 것은 진환이 1940년대에 이미 ‘소(牛)를 그리는 화가’로 자리매김했다는 점이다. 현재 남은 드로잉의 대부분도 소를 소재로 한 것이고, 연작 형태로도 소를 그렸다.  
 
진환에게 “소는 민족현실을 상징하는 동시에 강인한 민족성을 구현하는 핵심적인 이미지”였다. 진환이 1940년경 그린 ‘천도의 아이들’도 눈길을 끈다. 이중섭의 그림과 여러 면에서 닮았다. 근대미술사 연구자들이 이중섭과 진환의 영향관계에 대해 더욱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시대는 그에게 잔인했다. 진환은 1951년 1·4 후퇴 때 고향 마을 야산에서 자신의 제자였던 학도병의 오인사격으로 숨을 거뒀다.  
 
그가 준비하던 전시는 전쟁으로 무산됐고, 출간 준비 중이던 동시집 『쌍방울』 원고도 사라졌다. 현재 남아 있는 작품은 유화 8점과 수채화·드로잉 등 30여 점. 진환을 통해 한국 근대미술사의 ‘잃었던 고리’를 되찾을 수 있을까. 사후 70년이 지나 진환에 대한 본격 재조명은 이제 시작됐다.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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