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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 기분 배려하는 격식있는 완곡어법, 영어도 우리말 닮아

중앙선데이 2020.06.06 00:20 689호 13면 지면보기

영어 이야기

유피미즘 사전

유피미즘 사전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고 형을 형이라고 부름(呼父呼兄)’이 정상이다. 비정상 상황도 있다. 독재(dictatorship)를 독재라 부르지 못하고 권위주의(authoritarianism)로 칭하는 때도 있다. 언어생활에서는 a를 a라 부르지 못하고 b, c, d로 교체하는 일이 왕왕 발생한다. a가 죽음·성관계·생리현상 등 껄끄러운 내용인 경우다.
 

음란물 아닌 성인물 adult content
정치인, politician보다 statesman

우리말로 (1) 완곡어법(婉曲語法)이자 (2) 완곡어인 euphemism(유피미즘)이 그런 경우를 포괄한다. 완곡어법은 “듣는 사람의 감정이 상하지 않도록 모나지 않고 부드러운 말을 쓰는 표현법”이다. 영어·우리말의 유피미즘은 구조와 기능이 놀랍도록 닮았다.
 
유피미즘은 예절이요 격식·품격이다. ‘죽었다’라고 하지 않고 ‘돌아갔다·별세했다·운명했다·서거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die의 완곡어에는 pass away, be no longer with us가 있다. 화장실(化粧室)·단장실(丹粧室)·해우소(解憂所)가 변소(便所)를 대신하듯, toilet의 대안은 restroom· bathroom·washroom·lavatory·latrine이다.
 
유피미즘은 높임말이다. 기업인·기업가가 장사꾼·장사치를 높인다. entrepreneur는 businessman을 높여 부르는 완곡어다. 정치꾼보다는 정치인·정치가·경세가가 듣는 입장에서 기분이 좋을 것이다. politician보다 완곡어 statesman이 더 ‘있어’ 보인다.
 
유피미즘은 동의어·유의어다. 영어는 동어 반복을 무척 꺼린다. 완곡어는 반복을 피하게 해주는 동의어·유의어 구실을 한다. rich(부유한)의 완곡어 well-to-do, well-off, wealthy, affluent나, poor country(빈국)의 완곡어 developing country(개발도상국), boss(상관)의 완곡어 supervisor 같은 경우는 원래 단어에 대한 교체가능한(interchangeable) 동의어·유의어다.
 
유피미즘은 맥락이다. 완곡어가 존재해도 원래 단어를 아예 못 쓰는 것은 아니다. 가용 여부는 맥락이 결정한다. 하지만 fat(뚱뚱한)나 short(키가 작은)는 거의 모든 맥락에서 기피어다. 또 평가서나 추천서에서 대상에 대해 lazy(게으른)나 selfish(이기적인)라고 할 수 있을까. unmotivated(동기 부여가 되지 않은), self-centered(자기중심적인)를 동원해야 할 것이다. 영미권이 개발한 유피미즘을 수입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adult(성인)를 요긴하게 쓴다. 외설물·음란물이 아니라 성인물(成人物, adult entertainment, adult content, adult material), 도색영화가 아니라 성인영화(adult movie)라고 하게 됐다.
 
영어 초급·중급에서 고급으로 나아가는 데 여러 관문 중 하나인 유피미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서적으로는 옥스퍼드대 출판부에서 나온 『유피미즘 사전(A Dictionary of Euphemisms)』(사진)이 있다.
 
김환영 대기자 / 중앙콘텐트랩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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