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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희극의 정의

중앙일보 2020.06.06 00:02 종합 29면 지면보기
이동현 산업1팀 차장

이동현 산업1팀 차장

독일 철학자 게오르크 헤겔의 미학 강의 노트는 제자 하인리히 호토에 의해 3권의 책으로 출간됐다. 흔히 『미학 강의』라고 번역되는 책이다.
 
헤겔은 “인간이 가진 악덕은 전혀 희극적이지 않다. 그러한 악덕이 현실 세계에서 인간이 보여줘야 할 것과 현란한 대조를 이룰수록, 그러한 것들을 서슴없이 보여주는 것이 희극적이다”(『헤겔의 미학 강의3, p909, 은행나무』)고 했다.
 
그의 희극에 대한 정의는 풍자다. 인간 세상을 해학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부조리한 상황을 만들고 허탈한 웃음을 안겨주는 서사 구조다.  
 
정치인의 유머나,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풍자는 헤겔이 내린 희극의 정의에 가까울 때가 많다.
 
미국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1858년 상원의원 선거에서 맞붙은 민주당 후보 스티븐 더글러스가 “두 얼굴을 가진 이중인격자”라고 공격하자, “만약 내가 두 얼굴을 가졌다면 이 얼굴로 여기 나왔겠습니까?”라고 맞받아쳤다.
 
한국 정치사에서 위트 넘치는 언변으로 유명했던 이는 고(故) 노회찬 의원이었다. 그는 2014년 TV토론에서 거대 양당 체제를 깨야 한다면서 “50년 동안 똑같은 판에 삼겹살을 구워 먹으면 고기가 시커메집니다. 판을 갈 때가 이제 왔습니다”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위트 있었던 정치 논평은 2001년 장광근 한나라당 대변인의 말이었다고 기억한다.  
 
당시 여당이던 새천년민주당이 자민련의 교섭단체 구성을 위해 ‘의원 꿔주기’를 할 때, 송석찬 의원은 “한 마리 연어가 돼 여당에 돌아오겠다”고 했다. 장 대변인은 “대한민국 국회는 272명의 국회의원과 연어 한 마리로 구성돼 있다”고 논평했다.
 
희극이 카타르시스를 주려면 천박하지 않아야 하고, 풍자와 해학이 넘쳐야 한다. 한국 공개 코미디의 역사였던 ‘개그 콘서트’가 21년 만에 막을 내렸다. 때론 저질 논란도 있었지만, 온 국민에게 통쾌한 웃음과 카타르시스를 안겼던 장수 프로그램이었다.
 
‘개그 콘서트’가 막을 내린 건 부진한 시청률 때문이었다. 하기야 세상 돌아가는 꼴이 코미디보다 우스운 판이니 놀랄 일도 아니다. 오죽하면 코미디언 고(故) 이주일씨가 정치판을 떠나며 “코미디 한 수 잘 배우고 갑니다”라고 했을까.
 
이동현 산업1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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