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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말만 나누는 사이, 마음을 나누는 사이

중앙일보 2020.06.05 13:00

[더,오래] 박혜은의 님과 남 (76)

겨울옷을 정리하지 못하고 한참을 그냥 걸어만 두고 있다가 날이 더워지니 눈에 밟혀 뒤늦게 세탁소에 맡길 것들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분주하게 움직이는데 남편이 들어와 고생이 많다 말합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일이 많았던지라 좀 피곤했던 날이었는데 그래서였는지 제 입에서 말이 곱게 나가질 않았습니다.
 
“내가 정리하지 않았으면 올겨울까지 그냥 걸려있지 않았겠어?”
누가 들어도 한껏 가시가 돋친 말입니다. 어쩌면 남편 입장에서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격이었겠지요. 돌아서면 왜 그랬을까 후회되는 나의 말과 행동들이 있죠.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표현이 거칠게 나오는 때가 있습니다. 순간 어색한 상황이 만들어지죠.
 
밖에서 생긴 일들에 마음이 답답했던 차에 집에 돌아오니 쌓인 세탁물들이 더 눈에 밟혔던 날인데, 괜히 남편에게 화풀이한 셈입니다. 그저 편하게 옷 정리가 밀렸으니 같이 하자고 말할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그럴 땐 그런 나의 상황을 알아차리고 시간이 지나고서라도 대화를 통해 어색하게 흘려보낸 순간을 잘 마무리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겨울옷을 정리하고 있는데 고생이 많다는 남편의 말에 괜히 화풀이를 했습니다. 순간 어색한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사진 pixabay]

겨울옷을 정리하고 있는데 고생이 많다는 남편의 말에 괜히 화풀이를 했습니다. 순간 어색한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사진 pixabay]

 
가족이지만 생각이 달라 말다툼이 잦아지면 어느 순간 침묵의 단계에 들어섭니다. 침묵이 길어지면 같은 공간에 있지만 되려 남보다 더 어색한 사이가 되죠. 우리 가족은 그저 각자의 입장에서 내 생각을 나누고 있는지, 아니면 나와 상대방을 함께 생각하며 마음을 나누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서로가 자신의 입장에서 내 생각만을 꺼내놓고 있다면 시간이 지나 침묵의 가족이 될 우려가 높습니다.
 
최근 ‘가장 보통의 가족’이란 프로그램을 즐겨보고 있습니다. 연예인 가족을 들여다보지만 그들의 일상을 통해 우리 가족의 모습을 보게 되는 프로그램이죠. 어느 가족이나 다 비슷한가 보다 생각하며 공감하게 되는 장면들이 많습니다.
 
특히 프로그램의 주요출연자인 육아전문가 오은영 박사의 조언은 육아뿐 아니라 가족 내 모든 관계에서 빛을 발합니다. 오은영 박사는 모든 가정의 문제는 소통의 부재에 있다고 말하며 가족은 마음과 마음을 나누는 사이인데, 살다 보면 마음을 받아주기보다 교정해서 고치려는 경우가 더 많다고 말합니다.
 
사실 다 알고 있는 사실들일 텐데도 왜 우리는 많은 순간 상대를 고치려 들까요? 그 이유는 먼저 나의 마음이 편하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상대가 아이인 경우 부모의 마음이 편하기 위해 나도 모르게 하는 행동들이 아이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고 말하죠.
 
며칠 전 저의 행동도 ‘이만큼 살았으면 너도 좀 알아서 옷 정리는 해야 하는 것이 아니겠어’라는 저의 생각이 공격적인 말투로 나간 셈이겠죠.
 
22년 만에 함께 살게 된 아유미와 그의 어머니. [사진 JTBC '가장 보통의 가족' 캡처]

22년 만에 함께 살게 된 아유미와 그의 어머니. [사진 JTBC '가장 보통의 가족' 캡처]

 
얼마 전에는 22년 만에 함께 살게 된 모녀 아유미와 그녀의 어머니가 프로그램의 주인공으로 등장했습니다. 가족이지만 너무 오래 떨어져 살다 보니 엄마와 딸 사이여도 생활방식이 하나하나 다르기만 합니다. 엄마와 딸이 나누는 말의 양은 많지만, 말이 많다고 해서 대화라고 할 수는 없죠. 대화는 듣고 말하는 것입니다만 대게 많은 경우 서로 자기의 말만 하고 끝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유미의 어머니는 연예인으로 지내는 딸이 혹시 실수라도 할까 늘 딸의 SNS를 체크합니다. 엄마의 입장에서는 딸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의 행동인데 딸은 그저 엄마의 감시로만 느껴집니다. 특히 적은 양이라도 술을 마시는 것은 실수로 이어질 수 있으니 엄마는 술은 절대 마시면 안 된다고 못 박습니다.
 
하지만 딸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것이며 스스로 조절할 만큼만 마시고 있음에도 절대 안 된다는 엄마가 답답하기만 합니다. 이는 그저 드러난 하나의 현상일 뿐이죠. 문제는 서로의 다른 성향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서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데 아유미와 그녀의 어머니는 서로가 자신에게 맞추었으면 하는 바람이 컸던 겁니다.
 
프로그램에서 한 전문가는 대표적인 커뮤니케이션 진단툴인 ‘조하리의 창’을 이야기합니다. 이는 나와 타인의 관계 속에서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져 있는지를 확인하고 어떤 면을 개선하면 좋을지를 보여주는 데 유용한 분석틀입니다. ’조하리의 창’에는 4가지 영역이 있습니다. 
 
 
열린 창 : 먼저 나도 알고 타인도 아는 공공영역의 자아
숨겨진 창 : 나는 알지만 타인은 모르는 사적영역의 자아
보이지 않는 창 : 나는 모르지만 타인은 알고 있는 자아
미지의 창 : 나와 타인 둘 다 모르는 미지의 자아
 
이 네 가지 영역의 넓이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살면서 늘 변화합니다. ‘숨겨진 창’을 줄이기 위해서는 ‘자기표현’이 필요합니다. 내가 상대방에게 마음을 열고 나의 이야기를 통해 자기표현을 하게 되면 내 마음의 숨겨진 영역은 줄어들고 동시에 열린 공간은 늘어나게 되죠.
 
그리고 ‘보이지 않는 창’은 상대방은 아는데 나는 모르는 부분, 그러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다른 사람은 나를 이렇게 이해하고 있었구나’하는 부분을 말합니다. 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경청이 필요합니다.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나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거죠. 그래야 앞으로 좋은 관계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 수 있습니다.
 
세상과 사람을 보는 눈은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 데 우리는 상대도 나와 같을 것이라고 착각할 때가 많죠. 그리고 나와 차이가 있는 상대에게는 넌 왜 나와 같지 않은지를 다그치게 됩니다. 서로가 알고 있는 정보의 양이 다르니 당연히 오해가 생깁니다.
 
엄마가 나에 대해 잘 모르는 영역은 말해주어야 엄마가 알 수 있죠. 엄마도 마찬가지입니다. 엄마와 딸이지만 긴 세월 떨어져 살았던 모녀가 서로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저 나의 말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와 함께 듣고 말하는 진짜 대화가 필요했던 겁니다. 부부도 마찬가지입니다.
 
굿커뮤니케이션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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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은 박혜은 굿 커뮤니케이션 대표 필진

[박혜은의 님과 남] 은퇴 후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낼 집에서 자주 함께할 상대는 누구인가요? 그 상대와의 관계는 지금 안녕하신가요? 가장 가까운 듯하지만, 어느 순간 가장 멀어졌을지 모를 나의 남편, 나의 아내와 관계 향상을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강의와 코칭 현장에서 만난 수많은 고민을 바탕으로, 닿을 듯 닿지 않는 서로의 심리적 거리의 간격을 좁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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