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용호의 시선] ‘농사꾼’ 박원순 ‘사냥꾼’ 이재명

중앙일보 2020.06.05 00:27 종합 28면 지면보기
신용호 논설위원

신용호 논설위원

얼마 전 여권 핵심 인사와 대화를 나누다 들은 얘기다. ‘안 뜨는’ 박원순(서울시장)과 ‘뜨는’ 이재명(경기지사)에 관해서다. “항간에 ‘농사꾼’ 박원순과 ‘사냥꾼’ 이재명이란 말이 돌아다녀요.” 순간 손바닥으로 무릎을 탁 쳤다. 그가 얘기를 이어갔다. “차근차근 논과 밭에 씨를 뿌리고 나서 여름이 된 거죠. 풍년을 기원하는 농사꾼은 사람들을 모아 기우제를 지내기로 했어요. 기우제 준비가 한창일 무렵, 갑자기 사냥꾼이 나타난 거예요. 그러곤 ‘저기~ 멧~뙈지가 나타났다’고 목이 터져라 외친거죠. 기우제가 어떻게 됐겠어요. 그냥 난리가 난 거죠. 사람들이 모두 사냥꾼 따라가는 거죠. 잘 보세요. 한 박자 빨리 표적을 만들어 공격했던, 이재명의 ‘신천지가 나타났다, 이만희를 잡아라’가 생각나지 않으세요.”
 

코로나 정국서 대선 경쟁 치열
전형과 파격, 스타일은 천양지차
상황 비유한 ‘꾼’ 이야기 나돌아

신천지 관련 코로나가 한창일 때 박원순은 이만희(총회장)를 살인죄로 고발했다. 사단법인 허가도 취소했다.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이재명은 스타일이 달랐다. 이만희가 머무는 가평 ‘평화의 궁전’으로 직접 갔다. 마주치지는 못했어도 주목도가 엄청났다. 과천 본부로 쳐들어가선 대치 끝에 신도 명단도 받아냈다. 둘의 당시 게임은 거기서 끝이었다.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를 1년여 앞두고 박원순·이재명의 경쟁이 치열하다. 코로나가 시장·지사들을 도드라지게 보이도록 해 싸움이 더욱 숨 가쁘다. 이태원 클럽발 확산 때도 고강도 대책으로 신경전을 벌였던 둘은 요즘 ‘전 국민 고용보험’(박원순)과 ‘전 국민 기본소득’(이재명)으로 기 싸움 중이다. 근데 박원순의 고군분투에 비해 코로나발 성적표는 이재명과의 격차가 너무 크다. 지난 2일 발표된 리얼미터 선호도 조사에서 이재명은 14.2%, 박원순은 2.3%다. 이재명은 이낙연(34.3%)에 이어 2위다. 다른 최근 조사들도 결과가 크게 다르지 않다. 박원순은 갤럽 5월 조사에서 1%도 나왔다.
 
‘농사꾼’ 박원순이라면 부지런하단 얘긴데 성적은 도대체 왜 그런 걸까. 스타일 차이를 보여주는 예가 또 있다. 지난 3월 16일 문재인 대통령과 박원순·이재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서울시청에서 열린 코로나 방역 대책회의에서다. 차이는 두 사람의 비공개 회의 보고에서 현격했다. 박원순은 준비해간 서울시 대책 자료에 본인 의견을 더하는 보고 방식을 택했다. 전형적이고 무난한 보고였다. 이재명은 안 그랬다. 가져간 자료는 대통령에게 “읽어보시면 됩니다”로 갈음한 후 “코로나랑 같이 살 준비를 해야 한다. 이제 코로나가 시작이라 ‘상황을 잡았다’는 얘기를 하시면 안 된다”고 건의했다. 이어 기본소득 도입 주장도 한참을 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한 정치권 인사는 “박 시장이 평범했다면 이 지사가 튄 거였다”며 “하지만 대중의 관심은 평범함보다 아웃사이더 기질에 더 기우는 모양”이라고 했다.
 
박원순은 내심 억울할 듯도 싶다. 일은 많이 했는데 알아주지를 않으니 말이다. 영세 소상공인·자영업자 41만명에게 140만원을 준다 해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코로나 대응체계의 기초는 2015년 박원순이 메르스 대응 때 만들어 놓은 것이라는데 방역의 공은 정부가 다 가져갔다. 박원순은 행정의 달인이란 소릴 들을 정도로 꼼꼼함과 디테일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시원시원하게 치고 나가는 것 없이 꼼꼼하고 디테일하기만 하니 오히려 대선 가도엔 걸림돌이다. “지지율이 왜 안 오르나”라고 물을 때 “일은 잘하고 있는데 잘 몰라주는 것 같다”는 식으로 답하니 안되는 거다.
 
이재명은 과해도 선명하다. 요즘은 기본 소득에 목숨을 건 모양새다. 성남시장 시절부터 필요성을 주장했고 2017년 대선 때도 공약으로 기본소득(연간 130만원 지급)을 내세웠다. 거기다 재난지원금을 1인당 20만원씩 추가로 지급하라고 정부에 질러 놓았다. 포퓰리즘이란 비판은 개의치 않는다. 나름의 논리가 있다. 안티도 많지만 극렬팬이 많은 이유다.
 
아직 시간은 충분히 남았다. 박원순이 올라가고, 이재명이 내려올 수도 있다. 이낙연이 상승세를 어떻게 이어나갈지도 변수다. 박원순도 지지율 1위를 해본 정치인이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주목받아 인기가 좋았다. 다시 그 고지에 오르려면 전형과 고지식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냥꾼 기질을 지닌 농사꾼이 될 필요가 있다. 이재명은 우선 자신의 운명을 가를 대법원 판결 위기를 넘어야 한다. 능란한 순발력으로만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사냥꾼의 모습이 아니라 농사꾼 기질도 있다는 걸 느끼게 해야 한다. 코로나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올가을 2차 팬데믹 얘기도 나온다. 두 사람의 행동이 주목받을 기회가 더 많아질 거다. 뭐든 앞으로 하기에 달렸다.
 
신용호 논설위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