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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중앙일보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한국의 에델바이스 '설악솜다리'를 찾아서

중앙일보 2020.06.04 11:00
 
"설악의 꽃 중 으뜸이니
한 번은 꼭 설악솜다리를 봐야 합니다."
조영학 작가가 시시때때로 한 말입니다.
 
오래전부터 '한국의 에델바이스'라 불린다는 얘기를 
주워들은 바 있습니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에델바이스를 들으며
꽤 궁금했던 꽃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벼르고 별러 꽃을 찾아 나섰습니다. 

 
 
한계령

한계령

 
첫날은 장수대에서 출발하여 대승령 부근을 훑었습니다만
결국 찾지 못했습니다. 
이튿날은 한계령에서 귀때기청봉을 거쳐 
대승령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했습니다.
이른바 설악산 서북 능선입니다. 
 
 
귀때기청봉가는 길의 너덜지대

귀때기청봉가는 길의 너덜지대

 
귀때기청봉으로 가는 길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돌무더기 너덜지대 네댓 개를 통과해야 했습니다.
꼭 한번은 봐야 한다는 꽃이라지만
땡볕 아래 돌밭을 오르며 
자연스레 후회가 밀려 왔습니다.
 
 
귀때기청봉

귀때기청봉

 

오르고 또 올랐는데도 귀때기청봉은 아득합니다.
귀때기청봉, 이름의 유래가 재미있습니다.
설악의 봉우리 중에서 가장 높다고 으스대다가 
대청봉ㆍ중청봉ㆍ소청봉 삼 형제에게 
귀싸대기를 맞았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귀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매서운 바람 때문에 유래 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귀때기청봉 털진달래 군락지

귀때기청봉 털진달래 군락지

 
놀랍게도 1578m 귀때기청봉 부근에 
온통 분홍빛 아롱거립니다.
바로 털진달래입니다. 
장관이 따로 없습니다.
5월 말인데 여기는 비로소 봄이 움트고 있습니다.
 
 
대승령 가는 길의 너덜지대

대승령 가는 길의 너덜지대

 
1400고지 이상에서만 산다는 설악솜다리 꽃은
여기서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귀때기청봉을 지나 대승령으로 가는 길에 
또 다른 너덜지대가 나타납니다.
사실 그간 지나오고 나아가야 할 길은 
탐방로 구간별 난이도에 
최상인 '매우 어려움'으로 표시된 길입니다.
 
마침 이 코스를 자주 다니는 사람을 만나 
설악솜다리를 본 적 있는지 물었습니다
복 받은 사람만 볼 수 있는 꽃이라 들었으며
당신은 못 봤다고 합니다.
순간, 다리에 맥이 풀렸습니다.
 
 
대승령 가는 길

대승령 가는 길

 
설악솜다리는 여전히 보이지 않고
일곱시간의 산행에 서서히 지쳐갑니다.
꽃을 찾으며 걷으니 아무래도 산행이 더딥니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설악의 풍광입니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올 법한 풍광입니다. 
과연 설악이라 싶습니다. 
 
 
 
길을 지나다가 뒤돌아봤습니다.
지나온 바위 중턱에 하얀 솜털이 슬쩍 비칩니다.
자세히 들여다봤습니다.
바로 설악솜다리입니다.
 
낮은 채도의 녹색 설악솜다리가 

잿빛 바위에 붙어 있으니 쉽사리 눈에 띄지 않습니다.
보일 듯 말 듯 비쳤던 솜털 덕에 알아챘습니다. 
 
무려 7시간 만에 찾았으니
환호성이 절로 납니다. 
 
찾긴 찾았으나 휴대폰으로 사진 찍는 일이 난감합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높은 데 자리 잡았습니다.
게다가 꽃이 핀 친구들은 바위 뒤쪽에 있습니다.
눈으로만 보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어떻게든 사진을 찍어야 합니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 늘 휴대하는 게 있습니다. 
바로 셀카봉입니다.
제 눈엔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셀카봉에 장착된 휴대폰 카메라 렌즈는 꽃을 볼 수 있습니다.
 
휴대폰 카메라를 적당히 세팅해서 
바위 뒤쪽으로 휴대폰을 밀어 넣었습니다.
 
아무리 보이지 않더라도 
꽃술이 또렷한 사진을 찍는 게 목표입니다. 
상책은 많이 찍는 겁니다.
수동으로 포커스를 지정한 후, 
꽃으로 조금씩 다가가며 한 장씩, 한 장씩 찍습니다.
제대로 된 사진 한장만 건지자는 전략입니다.
다행히 꽃술이 선명한 사진 하나 건졌습니다.  
 
 
 
 
어렵사리 사진을 찍고 바위 아래로 내려가
뒤쪽으로 돌아갔습니다.
다행히 다른 꽃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하나같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습니다.
 
셀카봉을 밀어 올렸습니다.
수동 포커스로 최단거리에 지정해놓고,
포커스가 맞는 부분에 녹색 피킹이 되게끔 설정했습니다.
 
두어 발짝 뒤에서 
휴대폰 화면이 보이는 곳에 서 있는 조 작가에게  
꽃이 녹색으로 보이면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조 작가의 신호에 맞춰 셀카봉 스위치를 눌렀습니다.
 
찍힌 사진을 확인해 보니 완벽한 협업이었습니다.
하얀 솜털 보송보송한 설악솜다리가 
사진에 담겨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꽃이 덜 핀 어린 개체였습니다.
올해 설악의 꽃들이 예전보다 10여일 이상 늦은 편입니다.

지나오면서 봤던 꽃들이 대체로 그랬습니다.
진작에 폈어야 할 꽃들이 몽우리 상태인 게 태반이었습니다.
그만큼 올봄 기온이 낮았기 때문입니다.
 
  
 
흙 한 줌 없을 것 같은 바위에 붙어  
이슬 먹고 사는 이 친구들은 멸종 위기종입니다.
 
조 작가의 설명을 들으면 기가 막힙니다.  
"오래전에 에델바이스라고 해서 
이 꽃을 압화로 만들어 수학여행 온 학생에게 팔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멸종위기종을 더 멸종위기로 몰아간 거죠.
 
정확하게 에델바이스와 같은 종은 아니에요.
오히려 에델바이스와 비슷한 것은 설악솜다리보다 왜솜다리입니다.
에델바이스와 비슷하니까 
우리나라에서 에델바이스 에델바이스 하는데

설악솜다리는 분명한 우리나라 토종이에요."
 
 
 
카메라 렌즈가 아닌 제 눈으로 
우리 토종 설악솜다리 얼굴이 보고 싶었습니다.
 
바위 꼭대기에 올라 엎드려 내려다보았습니다.
꽃이 핀 친구가 보였습니다.
완전히 만개하지 않았지만, 노란 꽃 서넛을 피워올린 친구입니다. 
보는 것만으로 설레는 노랑입니다. 
 
눈엔 보여도 휴대폰으로 사진찍기엔 거리가 멀었습니다.
다시 셀카봉을 꺼내 최대한 늘어뜨렸습니다.

노란 꽃 피운 설악솜다리가 또렷이 액정에 맺혀왔습니다. 
 
 
 
왜 사람들이 '한국의 에델바이스'라고 하는지 알겠습니다.
왜 사람들이 설악의 꽃 중 으뜸이라 하는지 알겠습니다. 
왜 사람들이 이 꽃을 보려 설악에 오르는지 알겠습니다.
설악에서 설악솜다리를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설악솜다리를 사진으로 담는 장면과
설악솜다리에 대한 조영학 작가의 설명은
동영상에 담겨있습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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