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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가 '기본소득' 더 공들인다···김종인 "실질 자유" 숨은 뜻

중앙일보 2020.06.04 05:00

'실질적 자유'로 기본소득 공식화한 김종인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초선의원 공부모임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있다. [뉴스1]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초선의원 공부모임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있다. [뉴스1]



“실질적인 자유를 이 당이 어떻게 구현해내느냐,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이 3일 당 초선 의원 강연에서 한 말이다. 김 위원장은 “보수가 지향하는 가치인 자유는 말로만 하는 형식적 자유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전혀 의미가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위원장이 ‘실질적 자유’를 언급한 걸 두고, 정치권에서는 기본소득 도입 논의를 사실상 공식화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일자리나 소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개인의 자유를 달성할 수 없다”는 ‘실질적 자유’ 개념이 기본소득 도입의 핵심 논거라서다. 『21세기 기본소득』을 쓴 벨기에 정치철학자 필립 판 파레이스가 1996년 발표한 첫번째 책도 그래서 『모두에게 실질적 자유를』이란 제목을 달았다.
 
통합당에서는 김 위원장이 미취업 청년 등에 한정한 ‘청년 기본소득’을 주장할 거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전국민에게 1인당 50만원을 지급하는 ‘전국민 기본소득’의 경우 연간 300조원 이상의 재원이 필요하다. 지난해 국세수입(293조원)을 초과하는 만큼 현실성이 거의 없다는 이유다. 김 위원장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기본소득은 이제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검토를 막 하려는 단계”라며 서두르지는 않겠다는 뜻을 전했다.
 
통합당 곳곳에서도 관련 논의는 활발하다. 조해진(3선), 성일종(재선) 의원 등은 기본소득제를 연구하거나 관련 입법을 준비 중이다. 지난달 29일 당선인 총회에서도 “기본소득 도입을 논의하자”는 요구가 여럿 나왔다. 통합당 3040 조직위원장들의 모임 ‘젊은미래당’은 최근 기본소득 논의를 경제·노동·복지정책 리모델링의 기회로 삼자는 취지의 성명서를 냈다.
 

기본소득 대체 뭐길래

이재명 경기지사 [중앙포토]

이재명 경기지사 [중앙포토]

기본소득은 국민에게 조건 없이 매달 일정액의 현금을 나눠주는 제도다. 기술발달로 일자리 소멸이 가속화되는 만큼 기존의 노동연계형 사회복지제도로는 공동체의 존속이 어렵다는 전제에서 논의가 시작됐다. 이에 따라 수령 대상을 모든 국민으로 하는 ‘전국민 기본소득제’가 이상적으로 언급된다. 핀란드와 미국 알래스카주가 제한적ㆍ실험적으로 도입했을 뿐, 기본소득을 본격 시행하는 국가는 아직 없다.
 
한국에서는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경기지사가 적극적이다. 박 시장은 만 19~34세 서울시 거주 미취업자 4000명에게 6개월간 매달 50만원을 주는 ‘청년수당’을 통해, 이 지사는 경기도 거주 만 24세 청년들에게 분기별로 25만원씩 지역 화폐를 지급하는 ‘청년배당’을 통해 기본소득 성격의 정책을 시행 중이다. 이 지사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기본소득은 피할 수 없다. 스스로 주도해서 할 것이냐. 끌려가서 어쩔 수 없이 할 것이냐, 두 선택 중 하나밖에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다만 민주당 지도부에서 공식적으로 기본소득 도입을 언급하진 않고 있다. 당 핵심 인사들 사이에서 “전국민 기본소득은 역부족이다. 청년 기본소득 논의는 의미가 있지 않나”(정세균 국무총리)는 인식이 공유되는 정도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이재명 지사만 긴급재난지원금을 기본소득제의 ‘도입’으로 삼고 싶어한다”며 제도 도입에 난색을 표했다. 물밑에서 “도입 필요성을 느낀다. 6월 중 기본소득위원회를 설립하도록 하는 법안을 제출하고 관련 논의를 하겠다”(소병훈 민주당 의원)는 이들이 있지만, 당 차원의 공식적인 움직임은 다소 유보적이다. 
 

보수정당은 왜 뛰어들었나

2011년 무상급식 실시를 찬반 의견을 묻는 서울시주민투표가 서울시내 각 주민센터에서 실시됐다 [중앙포토]

2011년 무상급식 실시를 찬반 의견을 묻는 서울시주민투표가 서울시내 각 주민센터에서 실시됐다 [중앙포토]

 
통합당이 기본소득 논쟁에 더 적극성을 띄자 의외라는 반응이 나온다. ‘성과에 따른 보상’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보수 정당의 철학과 동떨어져서다.
 
일단 연이은 전국선거 4연패를 벗어나기 위한 노선 재정립 성격이 있다는 분석이다. “보편적 복지는 진보, 선별적 복지는 보수라는 도식에서 벗어나야 다가올 선거에서 승산이 있다. 기본소득 이슈를 먼저 선점해 기득권 이미지를 벗어야 한다”(중진 의원)는 이유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27일 통합당 전국 조직위원장 대상 특강에서 “2011년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바보 같은 짓이다. 당이 시대정신을 못 읽었다”고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면전에서 비판했다. 이에 오 전 시장이 “나도 무상급식에 대해선 생각이 변했다”고 지적을 수용하기도 했다.
 
기본소득 논의를 주도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도입을 주장해야 한다는 시각도 통합당 내부에 있다. 통합당의 한 수도권 의원은 “기본소득 논의의 핵심은 기존 복지제도의 ‘구조조정’과 노동유연성 강화”라며 “노조와 연계가 강한 진보진영에서 기본소득 담론을 꺼내면 단순히 ‘현금 얹어주기식’ 제도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이런 이유로 우리가 기본소득 논쟁에 먼저 뛰어들어야 한다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파생 쟁점 수두룩, 갈등 불가피 

다만 기본소득 논의가 본격화했을 때는 통합당 내부 갈등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시장경제의 기본 철학에 위배되는 만큼 내부 이념 논쟁이 있을 수 있다. 통합당 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실질적 자유를 얘기하면서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얘기했는데, 오늘날 한국 경제의 위기가 빵을 살 능력조차 없는 절대 빈곤에서 오는 거냐, 아니면 규제로부터 오는 거냐”고 반문했다.
 
최소 수십조원(청년기본소득)에서 수백조원(전국민 기본소득)에 이르는 재원 마련도 논쟁거리다. 통합당의 한 재선 의원은 “기본소득은 들어가는 돈의 단위가 다른 복지 정책과는 차원이 다르다. 아무리 복지 구조조정을 해도 증세는 불가피하다”며 “연말정산 때 환급받는 소득세 세액공제, 기초생활보장제 등도 없애야 할 텐데 막상 논의가 시작되면 반발이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영익ㆍ하준호 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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