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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의 시시각각] 당신이 왜 거기서 나와?

중앙일보 2020.06.04 00:41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상언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지난달 29일의 윤미향씨(당시에는 의원 신분이 아니었다) 기자회견에 큰 기대는 없었다. 아침부터 의원직 포기 선언이 아닌 요식적 해명의 자리가 될 것이라는 보도가 쏟아졌다. 그래도 지켜보기는 했는데, 내내 트로트 열풍으로 뜬 유행가의 한 대목이 입가에서 무한 반복 재생됐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국회 내규에 안 맞는 윤미향 회견
조국 사태 때도 유사 상황 펼쳐져
상식 파괴하는 운동권 윤리 재연

그가 등장한 곳은 기자회견장이 있는 국회 소통관이었다. 단상에 올라 ‘대한민국 국회’라는 글자가 금색으로 박혀 있는 발언대 뒤에 섰다. 그가 국회의원이 될 때까지는 10시간이 남아 있었고, 당시 국회 주인(20대 의원들)은 따로 있었다. 윤씨와 같은 예비 의원에게는 당선인이라는 우아한 수식어가 붙었지만 엄연히 의원은 아니었고, 그 어떤 법률도 특별한 신분을 보장하지 않았다.
 
소통관은 지난해 개관했는데, 그 전엔 정론관이라는 곳이 같은 역할을 했다. 거기에서 열린 수많은 회견을 직간접으로 겪었으나 당선인이 발언대를 독점해 사용하는 것은 보지 못했다. 국회 내규에 따르면 그 장소에서 언론을 상대로 공적 발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현역 국회의원, 정당의 대표와 대변인으로 국한돼 있다. 윤씨는 그중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이사갈 집에 아직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도 들이닥쳐 안방에 드러눕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지하주차장을 통해 회견장을 오가는 그를 청색 넥타이를 맨 국회 직원들이 호위했다. 그는 국민 세금으로 세워져 국가 예산으로 관리되는 곳에서 공무원의 엄호를 받으며 국회의원처럼 회견했다. 입법과 국정 감시라는 국회 본연의 업무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탈과 불법행위 의혹에 대한 방어에 공적 자산을 사용했다. 위안부 피해자 후원금을 개인 명의의 계좌로 거두고 시민단체 운동을 가족 비즈니스처럼 한 그에게 공(公)과 사(私)의 경계는 여전히 흐릿했다. 그 덕분에 하고 싶은 말만 한 뒤 기자들의 접근을 쉽게 따돌리면서 유유히 사라질 수 있었다. “국회에 곧 들어올 분이기 때문에 사용권자로 인정했다.” 국회 사무처 해명이 애처롭게 들린다. 거대 여당이 단체로 감싸는 이의 회견에 누가 손들고 반대할 수 있었겠나.
 
이날 일은 잊었던 다른 비정상 회견을 떠올리게 했다. 지난해 9월 2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국회 본관 회의장(246호)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그 역시 국회 시설 사용 권한이 없었다. 그는 법무부 청사는 물론 다른 행정부 시설을 쓸 수 있었는데도 굳이 국회를 택했다. 자신과 가족의 문제를 열심히 추적한 사회부(법무부는 통상 사회부가 담당) 기자들 대신 세부사항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정치부 기자들을 상대하려는 속셈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었다. 실제로 사회부 기자들이 국회 출입 절차를 거쳐 합류하기 이전의 질의응답은 김빠진 맥주 같았다.
 
그날 그 장소 사용 신청은 이인영 당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했다. 3일 뒤 대리 신청이 국회 내규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는 야당 측의 지적에 유인태 국회 사무처장은 “맞는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국회의원들이 규칙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고 특유의 소신 발언을 했다. 그가 지난달 29일 회견에 대한 사무처의 ‘폭넓은’ 유권해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9개월 간격을 두고 국회에서 월권(越權) 회견을 한 두 사람은 여러모로 닮았다. 잘못해 사회적 지탄을 받아도 ‘대의’를 운운하며 오히려 비판자들을 공격한다. 개인의 위법 의혹들을 진영과 이념의 문제로 둔갑시킨다. 물의를 빚은 사람이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이런 운동권적 윤리관은 사회 규범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하며 상식을 파괴한다. 봉준호 감독이 오스카상 수상 소감에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조적인 것”이라는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말을 되뇌었는데, 지극히 개인적인 치부를 집단적 음모에 의한 상처로 뒤바꾸는 운동가들의 빼어난 창조력을 요즘 매일 목도하고 있다. 역시 거장들의 식견은 훌륭하다.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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