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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163개국 질병수당, 한국엔 없어…부천 확진자 37% 아파도 출근

중앙일보 2020.06.03 00:49 종합 27면 지면보기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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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의 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는 지난달 27일 확진 판정을 받고 국가지정 격리병원에 이송됐다. 그는 지난달 22일 오후 4시 40분 부천의 쿠팡 신선물류센터로 출근했다. 23일에도 같은 시각에 출근해 이튿날 새벽 2시 귀가했다. 이날 근육통과 기침에 시달렸다. 컨디션이 떨어지자 오후 동네의원을 방문해 진료받고 약국에서 약을 탔다. 그는 25일 오후 쿠팡 센터에서 세 시간가량 일했다. 경기도 부천시가 공개한 동선이다. 이 환자는 몸 상태가 나빠졌는데도 약으로 버티며 일했다. 감기·몸살로 여겼을 수도 있다.
 

‘아프면 사나흘 쉰다’ 현실성 없어
쿠팡센터 일용직 열 중 넷은 무시
소득 최소 50% 대주는 질병수당
“문케어만큼 중요, 논의 시작해야”

보건 당국이 “아프면 사나흘 집에서 쉬어라”고 강조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부천시가 지난달 23일~이달 1일 공개한 확진자 38명의 동선을 분석했더니 14명이 증상 발현 후 아파도 일을 나간 것으로 드러났다. 작업 중 증상이 시작된 경우도 있다. 두 가지 일을 하는 ‘투잡’ 일용직도 이런 신세였다. 30대 여성은 지난달 24일 쿠팡 물류센터에서 밤새워 일하고 귀가했는데, 다음날 기침·두통이 왔다. 그런데도 이날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독서실에서 아르바이트했다. 한 보험회사 직원은 지난달 23~24일 주말 내내 쿠팡에서 일했고, 코로나19 증상이 왔는데도 다음날 회사에 나갔다.
 
아프면 쉬는 게 상식이다. 선진국 근로자는 대개 그리한다. 한국은 아파도 주사 한 대 맞고, 해열제 먹고 일터로 간다. 이래야 유능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다른 이유도 있다. 상병(傷病)수당, 즉 질병수당이 없는 점이다. 아파서 일을 못 해 소득을 잃으면 이를 보충해 주는 사회보장제도이다. 매우 낯설지만 시행하지 않는 데가 별로 없다.  
 
건강보험공단 산하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이 지난해 1월 펴낸 ‘상병수당제도 도입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국제사회보장협회(ISSA) 182개국 중 19개국만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국과 미국만 없다. 국제노동기구(ILO)가 1952년 이미 기준을 제시했다. 한국은 99년 국민건강보험법을 만들 때 50조에 담았다. 하지만 한 번도 논의한 적 없다.
 
2일 오후 경기도 안양시 한 물류센터 직원들이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있다. 해당 건물에 입주한 다른 회사 직원이 확진됐는데, 그는 동료에게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뉴스1]

2일 오후 경기도 안양시 한 물류센터 직원들이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있다. 해당 건물에 입주한 다른 회사 직원이 확진됐는데, 그는 동료에게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뉴스1]

코로나19가 상병수당을 불러왔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4월 국회에서 “자영업자도 그렇고 상병수당이 필요한 환경에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본격 논의할 시점이 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진도가 안 나갔다. 상병수당은 아프다는 것을 증명하고 3일, 5일, 7일 지나서 지급한다. 소득의 50%나 66.7%를 주는 데가 많다.  
 
건보연구원 추계에 따르면 한 해 최저 8055억원, 최대 1조7718억원 든다. 복지부가 상병수당에 관심 있는 것 같지만 실은 건보 보장성 강화(일명 문재인 케어)에 마음이 가 있다. 대통령 이름이 붙은 정책이다. 박 장관은 당시 국회에서 “긴급성 측면에서 어느 것이 더 급한지 놓고 보면 급여 확대가 우선순위에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상병수당 현황.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상병수당 현황.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근로자 사정은 절박하다. 쿠팡 안성물류센터의 30대 일용직 근로자는 중앙일보 취재진에게 “코로나가 무섭다. 그래도 아파도 갈 수밖에 없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데, 아파도 3~4일 쉰다고요? 그걸 어떻게 지키나. 아픈 거 알아도 간다”고 말했다. 쿠팡 부천물류센터의 30대 근로자는 “일자리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 여기저기 이력서 쓰면서 잠깐 일한다”며 “식당 하다 손님 끊긴 사람, 프리랜서 일을 하던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건보연구원은 보고서에서 “문재인 케어 효과가 가시화되면 의료비 부담은 줄일 수 있다. 하지만 학계는 질병으로 인한 가계 파탄의 이유가 의료비 부담보다 소득 상실에 더 큰 원인이 있다고 본다”며 “건보 보장성 강화만으로 한계가 있기 때문에 소득 손실 보장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도입 폭을 두고 의견이 엇갈린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은 “우리는 연차도 못 쓰고 아파도 참고 일한다. 소득이 부족하거나 불안정 취업자가 많아서 질병이나 심지어 전염병 감염 위험이 있어도 생업에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오 위원장은 “진료비 지원(건보 확대)만으로 의료 복지를 다했다고 할 수 없다. 질병으로 인한 소득 단절을 외면해 왔다. 21대 국회 초반에 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장기요양보험료처럼 상병보험료를 걷거나 국고 지원금을 늘리면 된다”고 덧붙였다.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큰 병 걸린 경우에만 적용하고 5, 7일 정도 대기기간(5, 7일 이후부터 수당 지급)을 둬서 오·남용을 막아야 한다”며 “코로나19 같은 비상사태가 생기면 대기기간을 한시적으로 없애는 식으로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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