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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교무부장 아들 오답 3개 수정한 사립고 여직원, 父와 짰다"

중앙일보 2020.06.02 17:20
전북 전주의 한 사립고등학교에서 특정 남학생의 중간고사 답안지 오답 3개가 정답으로 둔갑한 사건은 같은 학교 교무부장이던 학생의 아버지가 여성 교무실무사에게 부탁해 저지른 범행으로 밝혀졌다. 두 사람은 수사 내내 "답안지 조작을 부탁한 적 없다" "동료 교사의 자작극"이라며 혐의를 부인했지만, 검찰은 두 사람의 공모 정황을 뒷받침하는 문자 메시지 등을 확보해 모두 재판에 넘겼다.
 

전주지검, 전 교무부장·교무실무사 기소
시험평가 업무방해·사문서변조 등 혐의
당사자 "조작 안해" "동료 자작극" 부인
檢, 둘 주고받은 메시지 등 공모 확인

 전주지검은 2일 "공모를 통해 전주 지역 모 사립고 교사 A씨(50대)의 아들 답안지를 수정해 성적을 조작한 혐의(업무방해·사문서변조·변조사문서행사)로 이 학교 교무실무사 B씨(30대·여)를 구속기소 하고, A씨는 불구속기소 했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지난해 10월 10일부터 13일까지 치러진 2학년 2학기 중간고사(1차 고사) 기간 첫날 A씨 아들 C군이 본 '언어와 매체' 과목 OMR 답안지 중 3개 문항 오답을 같은 달 15일 오후 4시쯤 수정 테이프로 지우고 컴퓨터 사이펜으로 정답으로 바꾼 후 채점 기계에 입력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이 학교 교무부장을 지낸 A씨가 직급 체계상 그의 지시를 받는 B씨와 짜고 아들 답안지를 조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 부탁으로 B씨가 답안지 오답을 수정한 것으로 조사됐다. 
 
 두 사람은 경찰과 검찰 조사 내내 혐의를 완강히 부인한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아들 답안지 조작을 부탁한 적 없다", B씨는 "답안지를 조작한 사실이 없고, 학교 측에 신고한 국어 교사의 자작극"이라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검찰은 두 사람이 삭제한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 등을 복원해 답안지 조작을 공모한 정황을 확인했다.
 
 전북교육청 등에 따르면 당시 시험 문제를 출제한 국어 교사는 A씨 아들 C군이 제출한 답안지를 유심히 봤다. C군이 평소 성적이 최상위권인 학생이어서다. 이 과정에서 객관식 세 문제 답이 오답임을 확인했다.
 
쌍둥이 딸에게 시험 문제와 정답을 유출한 혐의를 받는 숙명여고 전 교무부장. 뉴스1

쌍둥이 딸에게 시험 문제와 정답을 유출한 혐의를 받는 숙명여고 전 교무부장. 뉴스1

 하지만 채점 결과 C군의 해당 과목 성적은 국어 교사가 예상한 점수보다 10점 가까이 높게 나왔다. 이를 수상히 여긴 국어 교사는 곧바로 교장에게 보고했다. 
 
 학교 자체 조사 결과 C군이 낸 OMR 답안지 중 3문제 답을 B씨가 수정 테이프로 고쳤다. B씨는 채점 과정에서 담당 교사가 10분가량 자리를 비운 사이 이 같은 행위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건이 불거지자 B씨와 C군은 각각 사직서와 자퇴서를 냈지만, 전북교육청이 감사에 나서면서 이를 보류했다.
 
 A씨 부자는 2018년에도 이번 답안지 조작 사건과 비슷한 소문에 휩싸였다고 한다. C군이 내신성적은 최상위권인데 모의고사 성적은 그보다 한두 등급 낮게 나오자 "교무부장인 아버지가 부당하게 아들 성적에 개입한 게 아니냐"는 게 소문의 골자다. 지난해 2월까지 이 학교 교무부장을 지낸 A씨는 "오해받기 싫다"며 본인 요청으로 전북 지역 한 공립고교로 파견을 간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 결과 B씨가 답안지를 조작한 당일 채점실 폐쇄회로TV(CCTV) 영상은 삭제된 상태였다. 감사를 마친 전북교육청은 지난해 11월 6일 "교무실무사의 또 다른 부정행위가 있는지, 전 교무부장인 학생 아버지의 개입이 있었는지 등을 밝힐 필요가 있다"며 전주지검에 수사를 의뢰했다. 검찰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경찰은 지난달 15일 두 사람을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애초 교무실무사가 위험 부담을 감수하고 자기 자식도 아닌 전 교무부장 아들 답안지를 조작하자 학교 안팎에서는 두 사람의 관계와 금전 거래 등을 의심하는 시각도 있었다. 이에 두 사람은 검·경 조사에서 "동료 관계일 뿐이고, 답안지 조작을 대가로 돈을 주고받은 사실이 없다"는 취지로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배창대 전주지검 인권감독관 겸 전문공보관(부장검사)은 "검찰은 공소 유지에 만전을 기하고, 성적 조작 등을 통해 공정하고 투명한 학업 성적 관리를 저해하는 불법을 엄단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당시 사건이 불거지자 전북교육자치시민연대 등은 "전북교육청이 교사와 자녀가 같은 학교에 다닐 수 없도록 하는 '고교 상피제' 도입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교육부는 2018년 교무부장 아버지와 쌍둥이 딸이 한 학교에 다녀 일어난 '숙명여고 시험 문제 유출 사건'을 계기로 국·공립 고등학교에 상피제 도입을 권고했다.
 
 이에 전북을 제외한 전국 16개 시·도교육청은 중등 인사관리 기준에 '국·공립 고교 교원-자녀 간 동일 학교 근무 금지 원칙'을 반영해 올해부터 시행하고 있다. 김승환 전북교육감은 "그동안 불거진 시험 문제 유출 사건은 극히 일부의 일탈 행위이지 자녀와 교사가 같은 학교에 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고 보긴 어렵다"며 상피제 도입을 거부했다. 다만 전북교육청은 교사인 부모가 희망하면 국·공립학교는 전보를, 사립학교는 법인 내 전보 또는 공립학교 파견·순회 근무 등의 방안을 시행하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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