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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장원의 부동산 노트

분양 가뭄, 로또 반토막, 국적없는 아파트…'총성 없는' 재건축 수주전

중앙일보 2020.06.02 06:07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3주구 재건축 조감도(위)와 기존 단지 전경.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3주구 재건축 조감도(위)와 기존 단지 전경.

‘총성 없는 전쟁.’ 재건축·재개발 시공사 수주전을 두고 업계가 공통으로 하는 말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등의 영향으로 일감이 쪼그라든 건설업체들이 사력을 다해 매달리고 있다.  
 

강남권 3개 단지 재건축 수주전 끝나
공사비 1조1500억원 둘러싼 '전쟁'
후분양 후폭풍, 여전한 과열 경쟁

지난달부터 강남권 3개 단지(반포동 반포3주구·신반포15차, 잠원동 신반포21차)가 총 공사비 1조1500억원의 시공사 결정을 끝냈다. 

 
이달 말 이 3개 단지 공사비보다 규모가 더 큰 용산구 한남뉴타운 한남3재개발구역(예정 공사비 1조8000억원)이 시공사를 선정할 예정이다.  

 
재건축·재개발 수주전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주택시장의 방향타가 되기 때문이다. 직접적으론 해당 사업장 소유주와 건설업체 간 문제이지만 수주전 결과는 전체 주택시장에 영향을 미친다. ‘스카이’ 대학 학생이 전체 대학생의 극히 일부이지만 스카이 신입생 선발 방식과 입시성적이 다른 모든 대학의 입시제도를 좌우하는 것과 비슷하다.

 

재건축판 '스카이 입시전' 

 
코로나19 시대의 수주전은 여전히 ‘돈’ 전쟁이다. 조합원의 경제적 이익이 수주전 승패를 좌우한다. 2017년 하반기 강남을 달군 재건축 수주전에서 이슈는 조합원에게 직접적인 이익을 주는 금품·이사비 등이었다. 지난해 말 한남3구역에서 분양가 보장, 무상제공품목 등 간접적인 이익이 논란을 일으키며 제한된 뒤 이번엔 논란을 피한 ‘우회적인 이익’이 쟁점이 됐다.

지난달 19일 서울 서초구 한 웨딩홀에서 열린 반포3주구 시공자 합동 홍보 설명회에서 관계자가 신분 확인을 마친 조합원에게 손목 밴드를 달아주고 있다. 좀처럼 외부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 건설사 대표들이 이날 설명회에 참석해 조합원들에게 큰 절을 올리기도 했다.

지난달 19일 서울 서초구 한 웨딩홀에서 열린 반포3주구 시공자 합동 홍보 설명회에서 관계자가 신분 확인을 마친 조합원에게 손목 밴드를 달아주고 있다. 좀처럼 외부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 건설사 대표들이 이날 설명회에 참석해 조합원들에게 큰 절을 올리기도 했다.

분양가상한제 충격을 줄여 조합원의 추가 분담금을 낮출 수 있는 방법으로 ‘후분양’이 수주전을 좌우했다. 분양 시기를 늦출수록 땅값이 올라 분양가를 높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조합원 이익과 일반분양분 주택수요자 이익은 반비례 관계여서 후분양이 일반화하면 분양시장의 ‘로또’(시세차익)가 줄어들게 된다. 분양가가 3.3㎡당 4000만원대 초반에서 후분양으로 5000만원대 초반으로 올라가면 국민주택 규모인 전용 84㎡ 기준으로 로또가 3억원 줄어든다. 분양가가 그만큼 오른단 얘기다.
 
후분양은 앞으로 3년가량 분양 공백을 가져온다. 신반포21차와 반포3주구만 해도 2023년 이후 후분양한다.  
 
재건축·재개발 물량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서울 분양시장은 8월 상한제 본격 시행 전 밀어내기 분양 이후 당분간 분양 가뭄과 그 뒤 분양가 상승을 맞을 전망이다. 
 
하지만 후분양이 상한제 시대 ‘뉴노멀’로 굳혀지는 데 한계도 있다. 신반포21차와 반포3주구에서 후분양이 주효한 것은 ‘공짜’ 후분양이기 때문이다. 시공사에서 후분양에 드는 수백억원의 공사비 금융비용을 부담하겠다고 한 것이다.

 
후분양 금융비용을 조합이 낼 경우 이 비용보다 후분양에 따른 분양수입 증가액이 더 적으면 조합으로선 후분양이 오히려 손해가 된다.   
 
후분양 비용을 감당할 만한 여력이 안 되는 건설업체는 제시하기 어려운 조건이어서 업계의 수주 비용 부담은 더욱 커졌다. 
 

땅값 하락하면 후분양 손해 

  
후분양한다고 분양가가 꼭 오른다는 보장이 없다. 땅값이 내려가면 분양가도 하락하게 된다. 건축비가 자재비 상승 등으로 오르더라도 분양가에서 차지하는 땅값 비중이 더 크다. 강남권에선 70~80%가 땅값이다.  
 
땅값 상승세가 아파트보다 더 견고하긴 하지만 2005년 이후 서울 표준지 공시지가가 한번 하락세를 나타냈다. 2008년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이다. 그해 서울 공시지가가 평균 2.3% 내렸다. 반포3주구 내 표준지 공시지가를 보면 1990년 이후 지난해까지 다섯 차례 하락했다. 분당 등 수도권 1기 신도시 입주로 집값이 하락한 1990년대 초반과 1997년 발생한 외환위기 충격을 받은 1998년, 그리고 2009년에 이어 2011년이다. 
 
현재론 땅값 기세가 등등하지만 코로나19 파장에 따라 땅값 앞날을 장담하기 어렵다.  
자료: 국토부

자료: 국토부

강남 수주전은 ‘강남’과 ‘비강남’의 골을 깊게 했다. 재건축 청사진은 억대의 최고급 외산 주방제품과 호화로운 마감재, 고급 호텔 서비스를 포함해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줬다. 내부는 외산으로 도배되고 외관은 해외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다. 건설사들이 제안한 단지 이름마저도 외래어를 넘어 이해하기 힘든 ‘외국어’다. 아파트 단지 이름의 외국어 일색은 이전부터 있었지만 아직 안 쓴 그럴듯한 외국어가 귀해져서인지 갈수록 용어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원 펜타스’ ‘트릴리언트’ ‘프리빌리지’ ‘크레센도’ ‘하이드원’…  

 
재건축이 국내보다 해외 경제 부양 효과가 더 크고 국적 없는 단지를 짓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여전한 OS요원 개별접촉 

 
코로나19 영향으로 대면 접촉을 꺼리면서 재건축·재개발 수주전을 과열시킨 주범의 하나로 꼽혀온 홍보도우미(OS요원)가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여전히 법에서 금한 개별 접촉 등이 이뤄지고 있다. 과거와 같은 금품·향응 제공 논란은 특별히 없었더라도 은밀한 개별 접촉은 사소한 문제로 넘길 사안이 아니다. 개별접촉에 탈법·위법의 유혹이 도사린다. 
  
업체들은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홍보가 제한되자 여론전으로 과열 분위기를 더욱 달궜다. 반포3주구 수주전에 참여한 삼성물산과 대우건설은 지난 4월 초 입찰 직후부터 지난달 30일 시공사 선정 직전까지 모두 30건에 가까운 보도자료를 언론사에 배포했다.  
 
재건축과 관련 없는 일반인은 시공사 대표의 조합 사무실 방문과 같은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알아야 했고 으리으리한 재건축에 씁쓸해했다. ‘20년간의 역량 모아 기념비적 작품 선물한다’ ‘'VVIP 호텔급 컨시어지 서비스' 제안’. 보도자료 제목들이다. 반포3주구는 서울시의 '클린 수주 시범사업장' 1호였다. 안장원 기자 ahnj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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