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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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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155년 분노 건드린 트럼프···그 부친도 '인종 차별' 악명 높았다

중앙일보 2020.06.02 06:00
미국이 불타고 있다. 시작은 지난 5월 25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위조지폐 사용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아프리카계 미국인(흑인)’ 조지 플로이드(46)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벌어졌다. 경찰인 데릭 쇼빈이 무릎으로 플로이드의 목을 계속 눌러 결국 숨지게 한 것이다.

'숨 쉴 수 없다’ 플로이드 사건, 미국 흔들
경찰, 모든 인종·연령·계급·성에 마구 폭력
코로나·불평등·차별 시달린 시민 분노 폭발
흑인 용의자 집단구타, 소년 사살 범인도
솜방망이 처벌, 무죄 받아 사법신뢰 저하
남북전쟁 뒤 100년 흑백분리 제도로 보장
트럼프 부친 프레드, 흑인에 임대 거절해
50~60년대 민권운동으로 법적 평등해도
사회불만 여전, 공권력·사법체계는 불신
트럼프, 희생양 찾아 지지층 집결 몰두

지난 5월 31일 미국 수도 워싱턴DC의 백악관 근처에서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이던 시민이 성조기를 불길 속에 던지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5월 31일 미국 수도 워싱턴DC의 백악관 근처에서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이던 시민이 성조기를 불길 속에 던지고 있다. AFP=연합뉴스

 

과잉 공권력, 미국 뒤흔드는 대형사건으로  

당시 플로이드가 목이 눌린 채 “숨을 쉴 수 없다(I can’t breathe)”라고 호소하는 영상이 촬영돼 인터넷으로 급속히 유포되기 시작했다. 경찰 대변인은 체포 도중 경찰에게 플로이드가 물리적으로 저항했다고 주장했지만 CCTV 속 플로이드는 어떠한 저항도 하지 않고 순순히 체포됐다고 CNN이 보도했다.  
플로이드 사망 사건이 벌어진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시작된 항의시위는 1일(현지시간) 뉴욕, 워싱턴, LA 등 미국 전역 140개 이상의 도시로 번졌다고 CNN과 BBC 등이 보도했다.  로스앤젤리스와 시애틀, 애틀란타, 필라델피아 등 20여 도시에는 야간 통행금지령이 내려졌다. 수도 워싱턴의 경우 오후 7시부터 통행이 금지됐다고 BBC가 전했다. 캘리포니아주를 비롯한 15개주와 수도 워싱턴DC에는 주방위군이 동원돼 출동 준비에 들어갔다. 시위대원 중 4400명이 경찰에 체포됐으며, 총격 사건이 잇따르면서 5명 이상이 숨졌다. 이 사건은 한 개인의 죽음과 경찰의 처벌로 끝나지 않고 미국 사회를 온통 뒤흔들고 있다.  
미국 수도 워싱턴DC의 백악관 근처에서 경비에 동원된 경찰이 바리케이드 주변을 지키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 수도 워싱턴DC의 백악관 근처에서 경비에 동원된 경찰이 바리케이드 주변을 지키고 있다. AFP=연합뉴스

 

무자비한 경찰 폭력, 표면적인 이유일뿐

표면적인 이유는 경찰의 폭력적인 행동이다. 그동안 미국에서 꾸준히 문제가 제기됐던 카프카스계(백인) 경찰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과도한 공권력 행사가 결국 참사로 이어지고, 수많은 사람의 분노가 폭발했다. 미국 경찰은 무자비함으로 악명 높다. 브리태니카는 “미국의 모든 인종·연령·계급·성은 모두 경찰의 무자비성에 노출돼 있다”고 적고 있다. 공권력이 국가폭력이 될 정도로 무자비하게 행사돼온 것은 미국의 부끄러운 단면이다.  
5월 26일 미국 메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두 명의 여성이 '흑인들의 생명도 중요하다' '그의 이름은 조지 플로이드였다'는 팻말을 들고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에 항의하는 사위를 벌이고 있다.AFP=연합뉴스

5월 26일 미국 메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두 명의 여성이 '흑인들의 생명도 중요하다' '그의 이름은 조지 플로이드였다'는 팻말을 들고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에 항의하는 사위를 벌이고 있다.AFP=연합뉴스

 

좌절한 미국인, 불평등·차별에 불만 폭발

시위대는 “숨을 쉴 수 없다(I can’t breathe)”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정의 없이는 평화도 없다(No Justice, No Peace)”라는 구호가 적힌 패널을 들고 같은 내용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이 외침은 미국을 넘어 글로벌로 울려 퍼지고 있다. 영국 런던, 독일 베를린, 캐나다 밴쿠버 등에서 동조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는 사회연결망서비스(SNS)에서도 #I can’t breathe #Black Lives Matter #No Justice, No Peace 등의 해시태그를 붙이는 운동으로 번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코로나19 봉쇄조치와 경제 둔화, 대규모 실직사태로 좌절한 미국인들이  플로이드 사건을 당하면서 불평등과 관련한 고통을 분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동안의 미국 사회 내 인종차별과 소득불평등 등 다양한 분노와 좌절이 이번 시위에서 분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5월 31일 시애틀에서 열린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항의 집회에 참가한 한 시민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5월 31일 시애틀에서 열린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항의 집회에 참가한 한 시민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AFP=연합뉴스

 

155년 해묵은 인종 분리·불평등의 상처가 배경  

미국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위사태의 배경에는 편협·차별로 점철된 155년 전통의 인종분리 정책의 상처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사건에는 미국의 유색인종 집단이나 진보적인 인사들이 정치권과 법원, 행정부가 이런 인종 관련 사건에 공정하게 대응하는지를 의심하고 항의할 수밖에 없는 비극적 역사가 배경에 자리 잡고 있다. 1865년 남북전쟁이 끝난 뒤 현재까지 150년에 걸친 긴 역사가 배경이다.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야폴리스에서 시위 집압에 동원된 경찰 옆에 '좋은 경찰은 죽은 경찰밖에 없다'는 낙서가 적혀 있다. '좋은 인디언은 죽은 인디언밖에 없다'는 서부 개척시대 백인들의 차별적인 말을 비꼬아 경찰에 대한 분노를 나타냈다. AFP=연합뉴스,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야폴리스에서 시위 집압에 동원된 경찰 옆에 '좋은 경찰은 죽은 경찰밖에 없다'는 낙서가 적혀 있다. '좋은 인디언은 죽은 인디언밖에 없다'는 서부 개척시대 백인들의 차별적인 말을 비꼬아 경찰에 대한 분노를 나타냈다. AFP=연합뉴스,

 

92년 로드니 킹 집단폭행 경찰 솜방망이 처벌

가깝게는 1992년 LA폭동으로 비화한 1991년 3월 3일 로드니 킹(1965~20012년) 폭행사건에서 비롯한다. 단순 신호위반으로 경찰에 단속 당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경찰들로부터 몰매를 맞는 장면이 주변을 지나던 사람에 의해 촬영돼 일반에 공개됐다. 미국 공권력의 고질적 인종차별과 폭력성이 수면 위로 드러난 사건이었다. 하지만 킹은 청각까지 잃었지만 이 사건에 연루된 경찰은 재판 결과 가벼운 처벌만 받게 되자 폭발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1992년 4월 29일부터 5월 4일까지 LA의 한인타운을 보복 공격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권력과 사법 체계마저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서글픈 역사다. 정의가 없으면 평화도 없다는 구호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 5월 31일 미국 메사추세츠 주 보스턴에서 열린 항의 시위에서 '정의가 없으면 평화도 없다'는 구후가 적힌 배너가 등장했다. AFP=연합뉴스

지난 5월 31일 미국 메사추세츠 주 보스턴에서 열린 항의 시위에서 '정의가 없으면 평화도 없다'는 구후가 적힌 배너가 등장했다. AFP=연합뉴스

17세 흑인소년 사살한 자경단원 ‘정당방위’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는 구호는 2012년 2월 26일 플로리다 주 샌퍼드에서 발생한 17세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고교생이 자경단원의 총에 맞아 숨진 사건이 계기가 됐다. 고교생 트레이번 마틴은 친척집을 찾았다가 편의점에서 먹을 것을 사들고 귀가하던 중 지역 자경단원인 조지 짐머만의 추적을 받다가 권총에 맞아 숨졌다. 조지 짐머만은 정당방위로 2013년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 사건 이후 미국에선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는 구호가 확산했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1861~1865년 재임). 사진=미국 의회 도서관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1861~1865년 재임). 사진=미국 의회 도서관

남북전쟁 뒤에도 흑백분리 100년간 합법

하지만 이는 최근의 상황만 본 것이고, 그 배경에는 길고긴 차별과 억압, 그리고 불공정의 역사가 자리 잡고 있다. 길게는 남북전쟁(1861~1865년) 이후 1965년까지 100년간 미국에서 합법이던 ‘인종분리’가 악의 거대한 뿌리 노릇을 했다.  
미국은 100만 명에 가까운 군인과 민간인이 희생된 남북전쟁이 끝나자 1865~1870년 사이에 노예제 폐지와 동등 보호조항, 투표권 보장 등을 수정헌법 13·14·15조를 명시했다. 하지만, 헌법 수정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지역의 차별까지 없애지 못했다. 남북전쟁에서 승리해 1865년 노예제를 폐지하고 연방을 지킨 에이브러햄 링컨(1809~1865년, 재임 1861~1865년)이 정치적으로 남부를 고려하느라 인종차별을 철저히 종식하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 공화당 소속의 링컨은 1864년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할 당시 부통령으로 민주당 소속의 앤드루 존슨(1808~1875년, 1865~1865년 부통령 재임, 1865~1869년 대통령 재임)을 지명했다. 존슨은 당론으로 노예제를 찬성했던 민주당에서 드물게 노예제에 반대한 인물이었다. 남부인 노스캐롤라이나 주 출신으로 역시 남부인 테네시 주에서 장사로 성공한 인물이다. 재력을 갖추자 정치에 뛰어들어 연방 하원의원과 테네시 주지사, 테네시 연방 상원의원을 거쳐 부통령에 올랐다. 남북전쟁이 벌어지면서 테네시 주는 연방에서 탈퇴해 남부연합에 가담했지만 존슨은 이를 거부했다. 링컨은 남북전쟁 뒤 미국의 통합을 염두에 두면서 노예제를 폐지하는 남부 인물인 그를 중용했다.  
앤드루 존슨.대통령(1865~1869년 재임). 사진=미국 의회 도서관

앤드루 존슨.대통령(1865~1869년 재임). 사진=미국 의회 도서관

 

남부 출신 링컨 후계자 존슨, 흑백분리 용인  

존슨은 1865년 링컨이 암살되면서 대통령 직을 승계했다. 대통령이 된 그는 남북전쟁에서 패배한 주들에 동정적이고 유화적인 정책을 폈다. 존슨은 남부의 주들이 교묘하게 흑백분리 법안을 제정해 차별을 법제화·제도화하는 것을 방치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인종차별과 흑백분리를 비호하고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선거권만 가진 2등시민’으로 만드는 역할을 했다. 투표권조차 갖은 제약으로 제대로 행사하기 힘들었다. 남부 주들은 흑인과 백인이 같은 공공장소를 이용할 수 없도록 서로 구역을 분리하는 법, 이른바 ‘짐 크로 법’을 줄줄이 입법했다. 짐 크로는 흑인으로 분장한 광대 캐릭터의 이름으로 ‘짐크로 법’은 교묘하게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백인 사회와 분리하고 차별하는 것을 방치하는 각 주의 법들을 가리키는 대명사가 됐다.  

지난 5월 29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벌어진 시위에 참가한 시민이 '짐 크로 법을 놔두지 않겠다'는 구호를 적어 보이고 있다. 짐 크로 법은 흑백 분리와 차별을 정당화한 법들을 가리킨다. AFP=연합뉴스

지난 5월 29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벌어진 시위에 참가한 시민이 '짐 크로 법을 놔두지 않겠다'는 구호를 적어 보이고 있다. 짐 크로 법은 흑백 분리와 차별을 정당화한 법들을 가리킨다. AFP=연합뉴스

존슨은 법무장관 출신으로 전쟁장관(1862~1868년 재임)을 맡은 에드윈 스태튼(1814~1869년)이 남부연합에 대한 자신의 지나치게 관대한 정책을 비난하자 그를 해임하려고 하면서 의회와 갈등을 빚었다. 결국 연방하원이 그를 탄핵했으나 연방상원에서 탄핵에 필요한 재적의원 3분의 2(36석)에 1표가 모자라는 찬성 35대 반대 19로 간신히 자리를 지켰다. 임기 내내 의회와 갈등 끝에 레임덕에 빠진 그는 미국 역사상 가장 인기가 없는 대통령으로 통한다. 남부 출신 앤드루 존슨이 자신의 출신 지역을 챙기느라 인종차별과 분리의 잔재를 철저히 제거하지 못한 것은 미국 인종차별의 어두운 역사가 155년 이상 생존한 가장 큰 원인이 된 셈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흑인 군인 전용 출입구 앞에 있는 흑인 헌병과 모터사이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흑인 군인 전용 출입구 앞에 있는 흑인 헌병과 모터사이클.

 

미국 대법원 판결로 흑백 분리 ‘합헌’    

1883년 미국 대법원은 인종차별을 금지하고 동등 보호를 규정한 수정헌법 제14조가 정부 활동에만 적용된다고 판결하면서 개인이나 민간단체가 이를 어겨도 연방정부가 그 피해자를 법적으로 보호해줄 수 없게 됐다. 1896년 5월 18일에는 연방대법원이 갈등에 갈등을 더했다. 인종 간에 ‘분리하되, 평등하면(separate but equal) 합헌’이라는 ‘황당한’ 결정을 내렸다. 8분의 1이 흑인 혈통인 호머 플래시라는 원고가 전차에서 백인 칸에 탔다가 차장에게 쫓겨나자 재판을 걸었는데 루이지애나 주 소송에서 패배하자 연방대법원까지 갔다가 최종 패배했다. 플래시와 루이지애나 주 판사인 존 퍼거슨의 이름을 따서 ‘플레시 대 퍼거슨 재판’으로로 부른다. 미국에서 인종 간 분리가 그 뒤 100년 간 합헌적 지위를 얻게 되는 어두운 사건이었다.  
이 때문에 주택계약·대출·직업선택 등에서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이 공공연하게 이뤄졌다. 대학이나 고교 등 공립학교와 공원이나 주점을 비롯한 공공장소, 기차를 비롯한 대중교통에서 대놓고 인종 분리를 실시하는 계기가 됐다. 심지어 화장실이나 식당, 공공시설 식수대에서도 인종격리가 이뤄졌다.  
유색인종 전용 급수대. 사진=위키피디아

유색인종 전용 급수대. 사진=위키피디아

 

오스카상 '그린북', 인종분리 시대 증언

2018년 제작돼 2019년 오스카상 작품상·각본상·남우조연상을 받은 ‘그린북(Green Book)’은 미국 남부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묵을 수 있는 숙소, 먹고 마실 수 있는 음식점, 기름을 넣을 수 있는 주유소를 안내하는 여행 책자 이름에서 제목을 땄다. 그린북에 들지 않는 숙소·음식점·주유소에는 백인만 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1962년이 배경인 이 영화의 후반부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피아니스트의 초청공연을 여는 미국 남부 앨라배마 주 버밍엄의 호텔 측이 관행이라며 식당에서 흑인의 식사를 거절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는 실화다. 분노한 피아니스트는 계약된 공연을 거부하고 떠나고, 백인 호텔 매니저는 뒤에 대고 “이래서 흑인은 쓰지 않는 것”이라고 고함을 지른다. 원인과 결과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 것이 인종차별의 원인임을 보여주는 명장면이다.

미국 조자아주의 그레이하운드 승차장에 있는 유색인종 전용 표시. 인종차별과 분리의 증거다. 사진=미국 의회 도서관

미국 조자아주의 그레이하운드 승차장에 있는 유색인종 전용 표시. 인종차별과 분리의 증거다. 사진=미국 의회 도서관

 

우주경쟁 영웅인 흑인 여성 수학자도 차별

이런 황당한 인종 분리 기준은 심지어 미국이 소련과 우주경쟁에 나서면서 1958년 설치한 우주항공국(NASA·나사)에서도 적용됐다. 1960년대 우주개발 사업을 위해 고용된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 수학자들도 작업실에서 800m나 떨어진 흑인 여성용 화장실을 이용해야 했다. 국가의 명운을 건 우주경쟁, 인류의 미래를 열 첨단기술 개발 현장에서도 인종 분리가 공공연하게 이뤄졌다. 이 황당한 일화는 2016년 제작된 영화 ‘히든 피겨(Hidden figures)’에서 생생하게 묘사됐다. 이들은 미국이 우주개발에서 소련을 누르는 데 기여한 우주영웅이다. 과학 영웅조차 고스란히 인종분리의 피해를 본 것이다. 미국의 어두운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백인 공동체에 백인 세입자를 원한다.' 1942년 미국 디트로이트에 적힌 인종차별적인 표시다. 사진=위키피디아

"우리는 백인 공동체에 백인 세입자를 원한다.' 1942년 미국 디트로이트에 적힌 인종차별적인 표시다. 사진=위키피디아

 

트럼프 부친, 흑인에겐 주택 임대 거절해 악명

그 시기에는 유색인종이 아파트나 주택을 얻으면서 집주인으로부터 당하는 인종 차별이 어렵지 않게 목격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부친인 프레드 트럼프(1905~1999년)는 뉴욕에서 부동산 임대업을 하면서 유색인종을 차별하다 고발을 당하기도 했다. 1950년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프레드 트럼프의 부동산을 임대해 거주하면서 인종차별적인 태도와 차별적인 임대사업을 목격한 포크 가수 우디 거스리(1912~1967년)는 1954년 이를 담은 ‘올드맨 트럼프(Oldman Trump)’라는 노래를 만들기도 했다. 이 노래는 그의 생전에 발표되지 못하고 묻혔다가 2016년 연구자들에 의해 손으로 쓴 가사와 악보가 발견돼 몇몇 그룹이 녹음하기도 했다.  
지난 5월 31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 집결한 시위 진압 경찰들. AFP=연합뉴스

지난 5월 31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 집결한 시위 진압 경찰들. AFP=연합뉴스

 

1955년 로자 파크스 사건으로 금기 깨기

이런 차별은 미국 유색인종 활동가들과 인종을 초월해 양심과 정의를 구현하려고 노력한 지사들이 차례로 분쇄했다. 1954년 당시 남부 17개 주에서 주법으로 공립학교에 흑백 학생이 함께 다닐 수 없도록 하고 있었는데 연방대법원이 이를 불법으로 판결했다. 1896년의 ‘분리하되 평등’이라는 황당한 판결이 거의 60년 만에 뒤집힌 것이다. 딸이 집에서 먼 흑인 학교에 다니던 올리브 브라운이라는 남성이 캔자스주 토피카 교육위원회를 상태로 제기한 소송에서 대법원은 이 같은 판결을 내렸다. 공립학교에서의 흑백 분리를 판결로 바로 잡는 데 반 세기가 넘게 걸린 셈이다.    
1955년 12월 남부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의 버스에서 민권운동에 한 획을 긋는 역사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로자 파크스(1913~2005년)라는 여성이 버스에 탔다가 흑인 칸이 꽉 찬 것을 보고 백인 칸에 앉았는데 기사가 흑인 칸으로 옮길 것을 요구하자 이를 거부한 것이다. 파이크가 흑백 인종분리법 위반으로 체포되자 지역 흑인들은 승차 거부에 들어갔다. 시 당국과 협상했던 지역 목사 마틴 루서 킹(1929~1968년)은 이 사건을 계기로 민권운동에 뛰어들었다. 1년이 넘는 법정 투쟁과 비폭력 평화 시위 끝에 이들은 버스에서 흑백 분리는 위헌이라는 판결을 받아냈다.  
미국의 흑인 민권운동 지도자,민권 시위를 이끈 혐의로 닷새간 구류처분을 받은 다음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마틴 루서 킹 목사와 부인, 그리고 동생의 심각한 표정. [오른쪽부터)

미국의 흑인 민권운동 지도자,민권 시위를 이끈 혐의로 닷새간 구류처분을 받은 다음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마틴 루서 킹 목사와 부인, 그리고 동생의 심각한 표정. [오른쪽부터)

 

“꿈이 있다” 킹 목사, 차별·분리 금지 이끌어

킹 목사는 민권 운동을 이끌었으며 1963년 워싱턴 대행진을 조직했다. 그는 “나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dream)”로 시작하는 연설로 미국에 '차별 없는 세상'에 대한 희망의 바람을 불어넣었다. 1964년에는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민권운동은 린든 존슨(1908~1973년, 재임 1963~1969년) 대통령 재임 기간에 법과 제도 면에서 결실을 봤다. 미국은 1964년 ‘민권법’을 제정해 인종·민족·출신국·소수종교·여성 차별을 불법화하고 학교·일터·공공시설에서 인종분리가 금지됐다. 1965년에는 ‘선거법’을 제정해 주나 지방 정부가 투표 자격을 제한하거나 별도의 조건을 다는 것을 금지해 인종 등을 이유로 미국 시민의 권리인 투표권 행사에 지장을 주는 일이 없도록 했다. ‘민권법’과 ‘선거법’의 통과로 1865년 남북전쟁 종전 직후부터 100년간 계속된 ‘짐 크로법’의 인종분리 망령이 법과 제도적으로 사라졌다. 미국을 새로운 평등사회의 꿈에 부풀었다.  
하지만 이를 이끈 킹 목사는 1968년 백인우월주의자이자 인종차별주의자로 알려진 인물의 흉탄에 목숨을 잃었다. 킹 목사가 숨지자 미국 여러 도시에서 이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와 함께 폭동이 발생해 집과 자동차가 불타고 약탈도 발생했다. 하지만 이는 킹 목사의 뜻과 다르다는 흑인 지도자들의 설득과 경찰·군인의 출동으로 시위는 진정됐다.  

지난 5월 30일 로스앤젤리스에서 열린 시위에서 한 남자가 무정부 주의를 상징하는 깃발을 들고 있다 . AP=연합뉴스

지난 5월 30일 로스앤젤리스에서 열린 시위에서 한 남자가 무정부 주의를 상징하는 깃발을 들고 있다 . AP=연합뉴스

 

트럼프, 절망한 국민 껴안는 대신 “테러범"몰이

그리고 민권운동의 성과인 선거법 제정 뒤 55년이 지난 지금 미국은 킹 목사 암살 직후를 방불케 하는 전국적인 대형 시위 사태를 맞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플로이드의 죽음으로 촉발된 시위와 통금 사태가 킹 목사 암살 직후 벌어진 항의 시위 뒤 최대 규모라고 지적했다.  
이번 사태는 지금도 미국의 유색인종은 헌법·법률상으로만 백인과 평등할 뿐 실제 미국 사회적 인종차별과 분리는 여전하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인종을 떠나 차별 없고 공정한 세상을 바라는 모든 사람을 절망에 빠뜨리고 있다. 미국 사회가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어디에 있는지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AP·AFP·통신의 사진과 CNN·BBC·CNBC 등의 동영상을 살펴보면 시위 참가자들은 인종과 무관하다. 이번 시위는 본질에서 흑백 대결이라기보다 정의와 평등, 그리고 공정한 사회를 원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회에 항의하기 위해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약탈에 나서는 범죄자는 소수로 보인다. 피해자인 조지 플로이드의 동생인 테렌스 플로이드는 형이 숨진 장소를 방문해 핸드마이크를 들고 평화를 호소했다. 
그런데 더욱 큰 문제는 이런 상황을 맞아 국민을 설득하고 진정시켜야 할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인종차별의 이런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항의 시위대를 폭도라고 부르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실체도 뚜렷하지 않은 ANTIFA(반파시즘운동)라는 네트워크 단체를 시위의 배후라고 주장하며 이를 테러단체로 지정하겠다는 말을 하고 있다. 경찰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용의자 살해(또는 과실치사 또는 미필적 고의에 따른 살인)에 항의하는 시위대를 적으로 몰고 군을 동원해 해산하겠다는 이야기나 다름없다. 지도자로서 실망스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지난 5월 29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사위 참가자가 "나는 숨을 쉴 수 없다"라고 적힌 천으로 입을 가리고 있다.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의 무릎에 목이 눌려 고통을 받는 동안 외친 말이다. 이 말은 21세기 미국 민권운동의 상징이 될 전망이다. AFP=연합뉴스

지난 5월 29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사위 참가자가 "나는 숨을 쉴 수 없다"라고 적힌 천으로 입을 가리고 있다.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의 무릎에 목이 눌려 고통을 받는 동안 외친 말이다. 이 말은 21세기 미국 민권운동의 상징이 될 전망이다. AFP=연합뉴스

초조한 트럼프, 마음의 행로는 어디로?

트럼프는 국민의 대통령으로서 사회의 통합을 추구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정략적으로 지지층 결집만 노리는 ‘득표 기계’의 부끄러운 모습만 보이고 있는 셈이다. 트럼프는 코로나19 방역을 제대로 하지 못해 국민의 질책을 받아왔다. 오는 11월 3일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할 가능성이 갈수록 작아지는 상황이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경으로 전국적인 시위 사태를 맞고 있는 트럼프는 초조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가 어떤 황당한 행동으로 미국의 가치를 계속 무너뜨리고, 미국 국민을 더욱 더 분열시키며, 사태 해결을 어렵게 할 것인지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트럼프가 이번 사태에 책임이라도 제대로 느끼는지는 알 수 없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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