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예영준의 시시각각] 미·중 러브콜, 딜레마와 축복 사이

중앙일보 2020.06.02 00:41 종합 30면 지면보기
예영준 논설위원

예영준 논설위원

“미·중 양측으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상황이 결코 골칫거리나 딜레마가 될 수 없다. 굳이 말하자면 이것은 축복이 될 수 있다.” 박근혜 정부 중반인 2015년 윤병세 외교장관이 이런 말을 했다가 현실과 동떨어진 낙관론에 치우쳤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하지만 윤 장관의 말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다는 건 변함없는 세상 이치다. 문제는 그때 우리가 실제로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원칙 세우고 분명한 선긋기 필요
천안문 오른 뒤 사드 배치 결정한
박근혜 대중외교 실패 교훈삼아야

2015년 가장 강력하고 집요한 러브콜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보내온 천안문 초청장이었다. 그해 9월 열병식 때 박 대통령은 서방 국가 정상으로는 유일하게 천안문 망루에 올라 인민해방군의 행진에 손을 흔들었다. 한국의 뜻과 상관없이 한국은 확실한 중국의 벗이 되겠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졌다. 박 대통령은 “조속한 시일 내에 한반도 평화통일을 어떻게 이뤄나갈 건가에 대해 논의가 시작될 것”이라고도 말했다. 한·중 관계에서 단단히 김칫국을 마시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건 중국도 마찬가지였다.
 
이듬해 7월 북한의 도발을 계기로 박근혜 정부는 미뤄 오던 사드 배치 결정을 내렸다. 당시 베이징 특파원이던 필자는 중국인들로부터 “한국이 어찌 이럴 수 있나”는 말을 숱하게 들었다.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천안문 망루에 와서 모든 걸 중국과 상의할 것처럼 하던 한국이 하루아침에 뒤통수를 친 것으로 받아들인 게 당시 그들의 정서였다.
 
결과만 보면 미국의 뜻대로 사드 배치가 이뤄졌지만, 그 사이 미국의 불필요한 의심을 사면서 한·미 관계에도 깊은 상처가 나고 말았다. 축복이 아니라 미·중 모두의 신뢰에 금이 간 최악의 결과였다.
 
미·중 신냉전의 먹구름이 한반도 상공으로 몰려오고 있다. 구냉전이 그랬듯 신냉전의 최전선도 한반도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식민통치와 6·25의 폐허를 딛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낸 공든 탑을 어떻게 하면 지킬 수 있을까. 미·중 어느 쪽과도 척지지 않고 국익을 극대화하는 실리외교를 펼쳐야 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실리외교를 원칙 없는 눈치보기 외교나 등거리 중립외교와 혼동하면 안 된다. 등거리 중립외교는 한국이 영세중립이나 비동맹을 선언한 국가가 아닌 이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인가. 사드 경험을 반추하면 몇 가지 귀중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우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선긋기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때로는 전략적 모호성이 요긴하지만 그 기간이 너무 길면 예기치 못한 결과를 부를 수 있다. 작가 김진명이 소설 『사드』에서 선택의 딜레마를 호소해 베스트셀러가 된 게 2014년의 일인데, 한국 정부는 2년 이상 모호한 태도로 일관했다.
 
원칙 없는 눈치보기 외교는 한계가 자명하다. 황희 정승처럼 이도 옳고 저도 맞다면 눈앞의 곤란은 넘어갈 수 있지만 영원히 위기를 회피할 수 없다.
 
사드 배치 결정이 그랬듯 더 이상 선택을 미룰 수 없는 결정적 순간이 오게 마련이다. 마지못해 선택의 순간에 내몰릴 게 아니라 처음부터 명확한 원칙을 세워 놓고 주판알을 정확하게 굴려 손익 판단을 그르치지 않아야 하며, 우리 스스로의 의지로 결정적 순간을 선택해 행동해야 한다. 그것 말고는 닥쳐올 신냉전의 파고를 헤쳐나갈 수 있는 길이 달리 없다.
 
2020년의 강력한 러브콜은 트럼프 미 대통령으로부터 왔다. 주요 7개국(G7)정상회의에 문재인 대통령을 초청하겠다는 것이다. 참석 여부 결정은 그리 힘든 일이 아닐 것이다. 다만 중국과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슬기롭게 해 나갈지가 풀어야 할 난제로 남게 될 것이다. 미·중 딜레마에 빠져 헤어나지 못할 것인지, 당당히 G11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하는 축복으로 만들어 나갈 것인지, 문재인 외교가 시험대에 섰다.
 
예영준 논설위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