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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성매매 영상 뿌립니다"…'070' 그 전화에 10억 뜯겼다

중앙일보 2020.06.01 13:47
"오후 1시부터 사장님 성매매 몰카 영상 유포할게요." 지난 3월 A씨의 휴대전화 너머로 대뜸 성매매 영상을 유포하겠다는 그놈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놈은 목적은 돈이었다.

광주 북부경찰 49명 남성에서 10억 가로챈 일당 검거
'070' 번호로 걸려온 유사 범행 추정 녹취 들어보니
"합의금 주지 않으면 오후 1시부터 영상 유포한다"
동영상도 없이 협박…성매매 않고 돈 건넨 피해자도

 

"성매매 영상 몰카에 찍혔네요."

 
1일 익명을 요구하며 성매매 몰카 유포 협박범과 녹취를 제공한 A씨는 처음 그놈 목소리를 들었던 날을 생생히 기억했다. A씨는 "오전 업무 중에 '070'으로 시작되는 전화가 걸려왔는데 받자마자 '사장님 번호와 영상을 00 오피(성매매 업소)에서 입수해서 연락드렸다'고 협박했다"고 말했다.
 
A씨는 성매매 업소를 이용한 적도 없는데 걸려온 전화가 황당했지만,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놈은 휴대전화 너머에서 "XX 매니저와 성관계한 영상이 저희 몰카에 찍혀 유포하려 한다"며 '합의금'을 요구했다.
 
A씨가 "어디에 뿌릴 거냐"고 묻자 그놈은 "가족과 지인, 다크웹이다"고 했다. 다크웹은 n번방 사건 당시 아동·청소년 음란물이 유포되며 사이버 범죄의 온상으로 지목된 곳이다.
 

"계좌번호 달라"고 했더니 통화 끊고 잠적

 
A씨는 물증을 확보해 경찰에 신고할 생각으로 "돈을 줄테니 계좌번호를 달라"고 한 뒤 휴대전화 녹취 버튼을 눌렀다. 계좌번호만 알면 상대방을 추적한 단서가 될 것 같아 생각해 낸 노림수였다.
 
휴대전화 너머 그놈은 "저도 전화해야 할 사람이 사장님 말고도 많다"며 "그냥 합의 없는 거로 알고 점심시간 마친 오후 1시부터 사장님 지인분들한테 사장님 XX 영상 유포할게요"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A씨는 끊긴 전화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수신이 불가능한 번호'라는 음성 안내만 돌아왔다. A씨는 "성매매를 한 적도 없으니 당당하기 때문에 유도 질문을 해봤다"며 "성매매를 하지 않았더라도 혹시나 불안한 마음에 돈을 주는 피해자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성매매 영상 유포 협박해 10억원 뜯은 일당 검거

 
광주광역시 북부경찰서는 1일 성매매 업소를 이용한 영상을 유포하겠다며 남성들을 협박해 돈을 가로챈 범죄조직 총책 B씨(31) 등 13명을 공갈 등 혐의로 검거해 검찰로 송치했다. 이들은 지난해 6월부터 9월 동안 총 49명의 남성에게서 10억4340만원을 뜯어냈다.
 
이들은 피해자들의 동영상을 갖고 있지 않았다. 경찰이 확인한 B씨 등 범죄조직의 수법은 A씨가 받은 협박 전화와 닮았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받았다는 전화와 수법이 유사하다"며 "전화번호와 성매매를 했다는 상대방 이름(XX 매니저)을 언급하면서 돈을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피해자들은 성매매하지 않았어도 가족들에게 유포하겠다는 협박에 불안해 돈을 건넨 것으로 조사됐다. 일반적인 마사지 업소를 이용하고도 불안해 범죄조직에 돈을 건넨 피해자도 있었다.
 

범죄조직, 전화번호 3만개 확보해 협박 전화

 
B씨 등 일당은 성매매 업소 홍보 인터넷 사이트에서 전화번호 3만개를 사들인 뒤 범행에 활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관계자는 "성매매 업소를 차리려는 신규 업주들에게 전화번호를 파는 게시판이 있다"며 "최신 전화번호는 1000~3000개에 100만원, 오래된 전화번호는 1만개에 100만원에 거래되는 형태다"고 했다.
 
총책 B씨는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고 있지만, 경찰은 범죄조직 핵심 간부 5명이 경기도에 사무실을 차리고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파악했다. 베트남 교민을 통해 국내에서 활동할 인출책 5명을 모집했고, 광주에서 5명이 모이자 이곳을 범행 무대로 삼았다.
 
베트남에서 국내 인출책을 소개한 용의자 1명은 인터폴 적색수배가 내려졌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때문에 검거가 지연되고 있다. 경찰은 국내 도주 중인 하부 조직원들을 추적 중이다.
 
광주광역시=진창일 기자 jin.cha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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