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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이 술 나른다고?…그러다간 쇠고랑 찬다”

중앙선데이 2020.05.30 00:02 688호 7면 지면보기

술 유통 ‘리베이트 쌍벌제’

지난 5월 14일 서울의 한 유흥음식점 앞에서 주류 도매 직원이 술을 나르고 있다. 김홍준 기자

지난 5월 14일 서울의 한 유흥음식점 앞에서 주류 도매 직원이 술을 나르고 있다. 김홍준 기자

“주류 도매업을 조직폭력배들이 운영한다고요?”
 

주류 유통 ‘중간고리’ 도매업자의 24시

주류 도매 관련 일을 하는 A(46)씨와 B(33)씨는 “업계에서 조폭을 본 적 들은 적도 없고, 우격다짐으로 술 팔다가는 쇠고랑 차는 시대”라고 입을 모았다. A씨는 14년 차, B 씨는 7년 차다. 이들은 “이 바닥은 옷깃만 봐도 누구인지 서로 다 알 정도”라고 말했다. 그런 이유로 이들은 본인과 회사 이름, 이동 경로를 밝히지 말아 달라고 했다. 주류 관련 업체에 어떻게든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주류 도매는 리베이트를 제조업체로부터 받고 소매업체에 주기도 해왔던 중간고리다. A씨와 B씨의 말을 빌려 주류 도매상의 24시를 전한다. 인터뷰 답변은 A씨와 B씨의 공통된 의견이다.
 

# 9:30 서울 X구

 
B씨는 전날 오후에 수거한 공병을 수납하고 경리실에서 당일 배달 물량을 할당받았다.
 
오늘(지난 20일) 배송량이 많은 건가.
“오늘같은 목요일이나 화요일에는 보통이다. 월·금요일이 가장 많다. 금요일에는 주말 수요를 대비하는 것이고, 월요일에는 주말에 빠진 주류를 채운다. 수요일이 가장 적다.”
 
하루 몇 곳 배송하나.
“좀 되는 도매상은 20~25곳, 중소업체는 많아도 15곳이다. 불경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겹쳤다. 그전엔 하루 80~90짝 옮겼는데, 현재는 50~60짝 수준이다.”
 
주류업계에는 P박스(플라스틱 박스) 지박스(종이박스)라는 단어를 쓴다. 이들이 종종 쓰는 단어 중 ‘까대기’는 기계나 도구를 쓰지 않고 직접 등에 지고서 주류를 옮기는 일, ‘딱지’는 양주 박스의 라벨을 의미한다.
 

# 11:00-15:00 경기도 Y시, 서울 Z구

 
B씨는 P박스 세 개를 메고 지하로 연결된 계단을 내려갔다.
 
고되지 않나.
“익숙해지면 괜찮다. 그래도 꺼려지는 곳은 이런 지하 업소다. 무릎이 깨질 것 같다. 지하 1층에 내려가느니 지상 3층까지 올라가는 게 낫다.”
 
주차 어려움도 있겠다.
“스트레스다. CCTV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 고지서가 날아오면 경찰서에 가서 읍소한다. 대부분 봐준다.”
 
관리직이면서도 배송에도 나선 A씨의 휴대폰이 울렸다. 다른 배송직원이었다. A씨는 직원에게 “접촉 사고요? 보험료가 너무 오르니 현금으로 해결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배송 중 술병이 쏟아지는 경우도 있다.
“굽은 길에서 속도를 줄이지 못하거나 박스 고정이 허술한 게 원인의 대부분이다. 그래도 운송하는 술 3분의 1 이상은 살아남는다. 실수로 그런 사고 한번 나면 지나가는 분들이 대부분 이해해 주지만, 욕하고 지나가는 사람도 있다.”
 

# 21:00 다시 서울 X구

경기도 고양의 한 먹자골목에 주차 중인 주류 배송 차량. 김홍준 기자

경기도 고양의 한 먹자골목에 주차 중인 주류 배송 차량. 김홍준 기자

 
퇴근 뒤 늦은 저녁 식사를 시작했다. 이들은 음식점에서 ‘영업’을 했다.
 
이런 식으로 영업하나.
“그렇다. 소매점에서 술 마시면서 사장님 상대로 영업한다. 지인 소개로 많이 이뤄지기도 한다. 판촉하기도 한다.”
 
판촉이란 게 뭔가.
“안 먹고 안 마셔도 소매점에서 카드로 긁는 거다. 비즈니스의 한 기법이다.”
 
불법 아닌가.
“솔직히 애매하다. 개정된 고시에는 거래관계의 원활한 진행을 목적으로 제공하는 접대비는 가능하다고 돼 있다.”
 국세청은 이런 영업 전략에 대해 여신금융업법 위반이라고 밝혔다.


매점을 뚫으면 기존에 거래하던 도매업체의 항의를 받나.
“항의는 드물다. 주류 도매업은 독특하다. 같은 상품을 갖고 경쟁한다. 그래서 영업 전략에서 갈린다. 항의보다 영업 전략을 물어본다. 소매점과 거래하는 도매업체가 잘 아는 곳이면 미안해서 안 가져오는 경우도 있다.”
 
소매점 폐업이 늘었나.
“눈에 띌 정도다. 더러 도매업체 미수금(외상)을 안고 폐업하기도 한다. 액수가 많으면 소송이라도 거는데, 100만~150만원 정도는 소송을 걸기도 참 그렇다. 언젠가는 다시 거래 틀 수도 있고. 미수금을 안 주면 거래를 안 하겠다는 가게도 있다. 우리한테는 고객이다. 도매업체의 영업 전략이 중요하다. 소매점이 잘돼야 우리도 잘되는 것 아닌가.”
 
김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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