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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제리 크라우스

중앙일보 2020.05.29 00:20 종합 33면 지면보기
이동현 산업1팀 차장

이동현 산업1팀 차장

농구를 어지간히 좋아하지 않고서는 제리 크라우스(1939~2017)라는 인물을 알기 어렵다.
 
고교 시절 야구선수였던 그는 대학 졸업 후 미 프로농구(NBA) 볼티모어 불리츠(현 워싱턴 위저즈)의 스카우터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농구인이 아니었지만 좋은 선수를 찾아내는 ‘선구안’을 가진 그는 제리 슬로언, 얼 먼로 같은 ‘명예의 전당’ 급 선수들을 발굴했다.
 
그가 유명해진 건 1985년 NBA 시카고 불스의 단장으로 부임하면서였다. 불스는 84년 불세출의 스타 마이클 조던을 드래프트에서 지명했지만 약체를 벗어나지 못했다.
 
크라우스는 스코티 피펜·호레이스 그랜트(87년)를 영입했고, 빌 카트라이트(88년)·B.J 암스트롱(89년) 같은 선수들로 팀을 구성했다. 화룡점정은 89년 명장 필 잭슨을 감독에 앉힌 것이다.  
 
마이클 조던의 ‘원맨 팀’이었던 불스는 91년을 시작으로 두 차례의 ‘스리 핏(three peat·3연패)’를 이뤄냈다.
 
미국 스포츠 전문채널 ESPN이 방영한 ‘더 라스트 댄스(The Last Dance)’를 넷플릭스를 통해 한국에서도 볼 수 있게 됐다. 마이클 조던와 90년대 ‘불스 왕조’를 그린 다큐멘터리인데, 최대 빌런(악당)은 크라우스다.
 
그는 천재적인 스카우터였고 뛰어난 경영자였지만 조던을 비롯한 ‘슈퍼스타’들의 마음을 얻진 못했다. 조던과 불스 동료들은 물론, 필 잭슨 감독까지 그와 충돌했고 이미 세상을 떠난 크라우스는 생전 인터뷰로 등장하긴 하지만 아무런 변명도 하지 못한다.
 
시청자는 그를 ‘불스 왕조를 무너뜨린 사람’으로만 기억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크라우스는 불스 왕조의 창시자였고, 사상 최고의 팀을 만든 설계자였다. 크라우스가 없었다면 ‘농구의 신’ 마이클 조던도 없었을지 모른다. 세상에 완벽한 리더십은 없다. 리더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인간적인 매력이나 좋은 인간관계가 아닐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제리 크라우스가 ‘더 라스트 댄스’에 나오는 것처럼 악당이었던 것만은 아니란 사실이다. 마이클 조던이 슈퍼히어로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모든 인물에겐 양면이 있고, 때론 숨겨진 또 다른 면모가 있다. 세상살이가 영화처럼 단순하지 않은 까닭이다.
 
이동현 산업1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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