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노관범의 독사신론(讀史新論)] 100년 전 박은식, 타인의 아픔이 곧 나의 아픔

중앙일보 2020.05.28 00:15 종합 22면 지면보기

근대 고전 『한국통사』 읽는 법

박은식 선생의 유해가 1993년 8월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 되고 있다.

박은식 선생의 유해가 1993년 8월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 되고 있다.

화창한 5월에는 기념일이 많다. 가정을 위한 기념일도, 나라를 위한 기념일도 있다. 전자로는 어린이날이 있다. 3년 뒤 100주년을 맞이하는 어린이날은 본래 어린이 해방을 외치며 시가행진하는 날이었다. 지금은 모든 어린이의 생일 같은 날이 됐다.
 

“나라 멸망해도 역사는 살아남아”
청일전쟁 패한 중국인 마음 울려
시대·지역 뛰어넘는 고통의 기억
혼란의 5월 새롭게 돌아보게 해

후자로는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이 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전통에서 5·18은 현행 민주주의 헌정의 출발점이 된다. 3·1의 피 흘림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됐듯이 5월의 영령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의 새로운 민주주의 체제가 가능했다. 공교롭게 5월에는 한국의 민주주의 전통과 연결되는 기념일이 모여 있다. 11일 동학 농민혁명기념일은 동학 농민군이 황토현 전투에서 관군에게 승리한 날, 10일 유권자의 날은 해방 후 처음 국회의원 총선거를 실시한 날이다.
 
5월에는 또 다른 기념일이 있다. 달력에는 나오지 않지만 7일이 어떤 학회의 창립일이다. 여느 학회와 달리 이 학회는 국사 교과서에 이름이 나온다. 그렇다. 진단학회다. 1934년 학회 창립 회칙에는 ‘본회는 조선 및 인근 문화의 연구를 목적으로 함’이라는 조항이 있다. 진단(震旦)의 말뜻이 본디 동방이니 ‘동방학’에 어울리는 학문을 추구했다고 하겠다. 참고로 진단은 한국사의 어떤 나라 이름이기도 하다. 궁예가 세운 마진(摩震)은 마하진단의 줄임말로 대동방이라는 뜻이다.
  
1960~70년대 일어난 한국고전 연구
 
1960~70 년대 한국 고전 및 선각자를 돌아본 책과 신문 기사. 사진은 중앙일보에 연재된 ‘근대화의 여명’. [중앙포토]

1960~70 년대 한국 고전 및 선각자를 돌아본 책과 신문 기사. 사진은 중앙일보에 연재된 ‘근대화의 여명’. [중앙포토]

진단학회는 해마다 한국 고전을 검토하는 학술대회를 개최해 왔다. 1973년 ‘『삼국유사』의 종합적 검토’를 제목으로 제1회 대회를 시작했다. 『삼국유사』 지은이 일연의 선불교에 관한 고찰(민영규), 『삼국유사』의 신화에 대한 고찰(김열규), 『삼국유사』의 사학사적 의의에 대한 고찰(이기백), 이렇게 세 발표가 있었고 종합토론이 뒤따랐다. 세월이 흘러 이태 후면 제50회 심포지엄을 맞게 된다. 『삼국유사』 『삼국사기』 『고려사』에서 시작해서 최근에는 『임하필기』 『한국통사』 『징비록』에 미쳤다.
 
『근대한국명논설집』(신동아). [중앙포토]

『근대한국명논설집』(신동아). [중앙포토]

진단학회가 고전 연구를 시작할 무렵 우리 사회에는 한국 고전에 대한 관심이 상승하고 있었다. 민족문화 진흥을 목적으로 65년 민족문화추진회가 설립돼 초대 회장에 박종화가 선임됐다. 민족문화추진회가 고전 국역 사업에 주력했고, 2007년 출범한 한국고전번역원의 모태가 됐다. 한국 고전 목록도 만들어졌다. 잡지 ‘신동아’는 학계 추천을 받아 한국 고전 100선 해제집을 69년 신년 별책부록으로 냈고(『한국을 움직인 고전백선』), 출판사 현암사도 69년 전문가 추천을 받아 한국 고전 100선 해제집을 출판했다.(『한국의 명저』)
 
진단학회의 『한국고전심포지움』(일조각). [중앙포토]

진단학회의 『한국고전심포지움』(일조각). [중앙포토]

민족문화를 상징하는 고전 정선 작업과 함께 한국의 근대정신을 적시하는 명문 정선 작업도 병행됐다. ‘신동아’는 해방이 되기까지 100여년간 민족을 지도한 ‘오피니언 리더’의 명문 모음집 66편을 66, 67년 잇따라 신년 별책부록으로 냈고(『근대한국명논설집』), 중앙일보도 같은 기간 『지봉유설』의 이수광부터 갑신정변의 서재필까지 근대화 운동 선각자 37명의 행적을 소개한 유홍렬의 글을 절찬리에 연재했다.(‘근대화의 여명’ 66년 3월 5일~67년 5월 13일)
 
『한국의 명저』(현암사). [중앙포토]

『한국의 명저』(현암사). [중앙포토]

한국의 고전은 대개 전근대 문헌에서 멈추었다. 근대는 고전이 아닌 명저의 세계였다. 『현대 한국의 명저 100권』(신동아·1985)은 해방 후 문사철 및 사회·정치·경제·법학 분야에서 한국학 학술 서적을 골랐다. 20세기 지성사의 시각에서 고른 『우리 시대의 명저 50』(생각의나무·2009)의 첫 번째 책은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다. 그렇지만 전근대 고전과 근대 명저 사이의 장벽을 뚫고 ‘근대 고전’이라는 영역을 창출한 진귀한 문헌이 있다. 바로 박은식의 『한국통사』(韓國痛史)다.
 
『한국통사』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은 머리말에 있다. 이를테면 이런 구절이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나라는 멸망할 수 있어도 역사는 멸망할 수 없다고 했다. 나라는 형체다. 역사는 정신이다. 지금 한국의 형체는 망가졌지만 정신이라도 보존할 수는 없을까. 이것이 통사(痛史)를 짓는 까닭이다. 정신이 보존돼 멸망하지 않는다면 형체도 때가 되면 부활할 것이다.’ 박은식이 지은 글이 많지만 오직 이 머리말이 ‘신동아’의 근대 명 논설 66편에 들어간 것도 나라와 역사의 관계를 논한 이 구절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한국통사』를 잘 읽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나라의 형체가 없어져도 민족의 정신이 역사에 잘 보존돼 있으니 민족의 역사를 깨우쳐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결심을 했다면 가장 잘 읽은 사람이다. 하지만 고전을 읽는 방법은 다양하다. 『한국통사』 독법이 그 한 가지일 뿐일까. 예로부터 제갈량의 ‘출사표’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충신이 아니라고 했지만 『한국통사』 역시 눈물의 독서 이외에 다른 길은 없는 것일까.
 
『한국통사』의 얼굴은 제목의 키워드 ‘통(痛)’이다. 단순히 나라 잃은 아픔이었을까. 지은이가 느낀 ‘통’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병자호란을 겪은 조선 유학자는 인통함원(忍痛含怨·아픔을 참고 원한을 머금다)을 말했을 뿐이지만 대한제국의 멸망을 겪은 지은이는 끝내 아픔을 참지 못하고 국외로 망명하고 말았다. 둘의 ‘통’은 서로 달랐을까. 지은이는 양명학에 심취해 타인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고 나의 아픔이 타인의 아픔이 되는 감성의 유학을 지향했다. 공자가 천하를 주유한 것은 고통받는 세인을 보고 치밀어 오르는 아픔을 견딜 수 없어서였다는데 둘의 ‘통’은 서로 같았을까.
  
한국 문헌에 처음으로 등장한 ‘통사’  
 
『한국통사』의 ‘통(痛)’은 지은이의 ‘통’이기도 하지만 독자의 ‘통’이기도 하다. 서간도에 망명한 이건승(李建昇)은 이 책을 읽고 ‘숨김없이 마음껏 말한 참 좋은 역사책’이라고 기뻐하고 시를 지었는데, 이 책이 간행돼 중국인이 수천 질을 구매했고 우리나라 문자 중에 중국에서 이렇게 유행한 것이 없다고 밝혔다. 제1차 세계대전 기간 일본이 중국 위안스카이(袁世凱) 정부에 가한 굴욕적인 21개조 요구로 중국 인심이 비등한 때, 한국의 ‘통사’를 읽고 지은이의 ‘통’과 만난 수많은 중국인 독자의 ‘통’은 무엇이었을까. 청일전쟁의 아픔을 생각해 중국 인민이 마음을 고쳐먹고 진보해야 한다고 말한 지은이의 충고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한국통사』의 ‘통(痛)’은 지은이와 독자의 ‘통’이기도 하지만 출판사의 ‘통’이기도 하다. 이 책이 나오기 전까지 전통 문집이든 근대 매체이든 한국 문헌에서 ‘통사’라는 말을 찾을 수 없다면 ‘통사’라는 제목을 만들어낸 것은 출판사의 기획이었을까. 청나라 말기 중화민국 초기 중국 작가 우젠런(吳趼人)은 몽골의 침략으로 멸망하는 남송 말기의 역사를 배경으로 역사소설 『통사(痛史)』를 지었다. 『한국통사』의 지은이는 감히 정사를 자처할 수 없어서 ‘통사’라고 이름한다고 고백했는데, 이것은 출판사의 제안을 수용한 결과일까. 『한국통사』가 출판될 무렵 중국에서는 『조선망국연의(朝鮮亡國衍義)』 『조선통사(朝鮮痛史)』 등 한국 국망을 테마로 하는 역사소설이 유행했다.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낸 것일까.
 
한국통사의 키워드는 아픔이다. 진정한 고전은 변화하는 세월 속에서도 불변의 화두를 기억한다. 한국은 이미 민주화운동을 기념일로 갖고 있고 지나간 근대사를 이제 더 이상 아픔의 역사로 가두지는 않아도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근래의 사태를 보며 여전히 아픔의 역사 속에 있음을 절감한다. 통사를 다시 읽어야 할까.
 
장대비 같은 눈물 흘린 박은식
시조

시조

독립운동가 박은식은 중국인과 만나면 『한국통사』를 증정하고 통사의 메시지를 전했다. 1916년 6월 중국 근대 사상가 캉유웨이(康有爲)의 어떤 문인이 회고한 기록이다.
 
“하루는 한국 유자(儒者) 박은식 군이 와서 만나 보니 창연한 노인이었다. 인사한 후 그가 지은 『안중근』 및 『한국통사』를 선물 받았다. 함께 말하려 하니 두 손 모으고 알아듣지 못한다 사양했다. 종이와 먹을 꺼내 서로 마주하며 필담했다. 당시 한국은 멸망했다. 매번 종사의 통한을 건드리면 그때마다 장대비 같은 눈물을 흘렸다. 중간에 이완용(李完用)의 일을 물으니 다시 발끈하여 분개를 견디지 못했다. 쌓인 종이가 한 치나 됐고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박은식은 조선 유학자 율곡 이이의 노래라 소개하며 시조 한 수(사진)도 한글과 한자로 써 주었다. 아직 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박은식의 유묵인데 그가 율곡을 존모한 마음을 볼 수 있다. 원래 조선 중기 양사언의 시조인데, 박은식이 잘못 알았던 것 같다. 최남선은 한국 근대 잡지 ‘소년’에서 이 시조를 율곡의 작품이라 소개했다.
 
노관범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교수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