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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기념품 수건은 이제그만…나, 특급호텔 수건 쓰는 남자

중앙일보 2020.05.27 14:00

[더,오래] 한재동의 남자도 쇼핑을 좋아해(13)

모두가 쓰는 필수품이지만 돈 주고 사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이 바로 수건이다. 집에 있는 수건 대부분이 동창회 등 행사에서 받은 기념품일 것이다. 덕분에 색도 다르고, 사이즈도 다르고, 질감도 다르다. 아마도 수건 회사들의 주요 고객은 일반 소비자가 아닌 대한민국 모임 총무들이 아닐까?
 
수건을 쇼핑해야겠다고 느낀 순간이 있다. 하얀 수건들로 채워진 호텔 욕실이 주는 정갈한 느낌을 받았을 때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벼락출세한 주인공이 특급호텔에 투숙하며 부자 놀이를 하는 장면을 떠올려 보면, 하얀 수건들이 등장한다. 대부분 샤워를 마치고 나오는 주인공이 몸에 두르고 나온다. 미국에는 행사 후에 수건을 주는 문화가 없는 걸까? 미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늘 흰색이나 회색 등 무채색의 커다란 수건만 쓰는 것 같다. 5G 시대에 이런 의문을 머리로만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다. 30대 후반 남성이 가장 많이 쓴다는 네이버 지식인에 검색했더니 십수 년 전 정말 이런 질문을 한 사람이 있었다! 다만 답변이 ‘수건 사은품은 공짜를 좋아하는 한국에만 있는 것’이라는 냉소적인 것이었다.
 
기념품 수건으로채워진 욕실은 매우 컬러풀 하다. [사진 전남 오픈 마켓]

기념품 수건으로채워진 욕실은 매우 컬러풀 하다. [사진 전남 오픈 마켓]

 
인테리어가 대중화되면서 집 꾸미기를 취미로 가진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중 욕실은 호텔, 리조트같이 모던한 디자인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다. 모던한 인테리어에는 아무래도 기념품으로 받아서 색과 디자인이 다른 수건을 모아 두는 것보다, 무채색으로 통일된 수건들이 어울리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기존에 있는 수건들을 모두 버리기도 쉽지 않다. 기념품으로 받은 수건이지만 한국의 발달한 섬유산업을 증명하듯이 내구성이 강하다. 보통 몇 년은 너끈하게 사용할 수 있으므로 아무래도 아까울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수건을 구매하는 것에는 심리적 장벽이 크다. 처음으로 독립해서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게 되거나, 결혼으로 인한 신혼집 꾸미기 등 새 출발을 하지 않는 한 어렵다. 나도 결혼하면서 처음으로 돈 주고 수건을 사 보았다.
 
당장 포털에 수건을 검색하면 연관검색어에 ‘호텔 수건’이 뜨고, 수많은 온라인 커머스에서 호텔 수건 패키지를 판매하고 있다. 주로 흰색, 회색, 남색 등 무채색 위주의 40수 수건들을 판매한다. 수건을 사려고 마음먹으면 30수, 40수 등의 표현이 나오는데, 숫자가 높을수록 실 두께가 가늘어서 같은 면적을 더 촘촘하게 채운 수건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숫자가 높은 것은 흡수력이 좋고 더 포근한 느낌이 들지만, 실이 가늘어서 내구성이 떨어지고, 숫자가 낮은 것은 실 두께가 두꺼워서 내구성은 튼튼하지만 흡수성은 떨어진다. 흔히 말하는 특급호텔 수건은 보통 40수라고 생각하면 된다.
 
호텔에정갈하게 비치된 수건들을 보면 안정감이 느껴진다. [사진 워시앤조이]

호텔에정갈하게 비치된 수건들을 보면 안정감이 느껴진다. [사진 워시앤조이]

 
신혼집 욕실 선반에 가득한 회색의 수건들을 볼 때면, 샤워부스도 없는 작은 욕실이지만 정갈하게 관리된 공간의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다만 호텔처럼 흰색 수건을 사지 않은 이유는, 도저히 빨래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때가 덜 타는 회색 수건이 더 오래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끔 회사 행사 같은 곳에서 받아오는 기념품 수건이 생기면, 색이 맞으면 욕실에서 쓰고 초록색이나 주황색같이 색이 튀는 것은 아깝지만, 걸레로 사용했다.
 
수건 색을 회색으로 통일하는 것 말고도 좀 더 멋을 부려보기 위해, 특급 호텔처럼 수건을 돌돌 말아서 보관했다. 물론 일반적으로 평평하게 접는 것보다는 빨래 개는 일이 번거롭긴 했지만, 돌돌 말린 수건을 샤워 후 집어 들면 조금 더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일상의 소소한 허세 부리기지만, 돈 한 푼 들지 않는다.
 
 
수건 회사의 마케팅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스포츠 마케팅의 한 획을 그었는데, 그 당시 이 수건 회사를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에 박찬호 선수가 뜰 정도였다. 2005년도 박찬호 선수가 메이저리그를 호령할 무렵 이 수건 회사가 케이블TV에서 중계되는 박찬호 선수 경기에 계속 광고를 내보냈다. 광고모델은 현재 영화 ‘기생충’의 여주인공으로 유명한 조여정씨였다. 그녀는 ‘타올 CF가 나오면 박찬호 선수가 승리한다’는 징크스를 만들어내면서 ‘승리의 여신’이라는 애칭으로도 불렸다. 그 광고를 보고 사람들이 수건을 사러 달려가진 않았겠지만, 수많은 모임 총무들이 수건 기념품을 선정할 때 도움을 준 듯하다. 광고했던 수건 회사가 지금 국내 1위 업체가 된 걸 보니 말이다.
 
직장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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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동 한재동 직장인 필진

[한재동의 남자도 쇼핑을 좋아해] '이제부터 쇼핑을 잘해야지!'라고 다짐하면 쇼핑을 잘할 수 있을까? 알고 보니 쇼핑에도 공부가 필요하더라. 쇼핑! 하면 비싼 명품 백을 사려고 줄을 서는 부정적 이미지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사실 집 앞 편의점에서 간단한 먹을거리를 사는 것도 쇼핑이다. 그렇다면 ‘쇼핑을 잘한다’라는 건 무슨 의미일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을 가장 효율적으로 구매하는 것으로 정의하고자 한다.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는 곧 불혹 직장인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쇼핑 경험담이다. 거창한 명품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이 즐기는 패션과 생활용품에 집중되어 있음을 미리 양해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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