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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돌아온’ 이광재가 말하는 여당의 책임정치

중앙일보 2020.05.27 00:07
여당 큰 덩치 믿고 행동하면 곤란… 민심은 배 뒤집을 수도
실용적 진보주의 ‘노무현 정신’도 다시 한번 되새겨봐야

직격 인터뷰
“깊은 강은 소리 내지 않고도 멀리 세차게 흐른다”

이광재 국회의원 당선인은 ’노무현 정신은 절문근사(切問近思), 즉 간절하게 묻고 가까운 일부터 생각하는 실용적 진보“라고 말했다

이광재 국회의원 당선인은 ’노무현 정신은 절문근사(切問近思), 즉 간절하게 묻고 가까운 일부터 생각하는 실용적 진보“라고 말했다

 
이광재(55) 전 강원지사가 휴대폰 카카오톡 ‘프로필’에 새로운 문구를 새긴 건 지난해 12월 31일. 이 전 지사는 ‘허업(虛業)의 바다가 아니고 인류에 도움 되는 담대한 희망의 씨앗을 심자’고 적었다.
 
“정치는 허업”이라는 말은 고(故) 김종필(JP) 전 자민련 총재가 2011년 자신에게 인사하러 온 당시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에게 건넨 메시지다. JP는 “기업인은 노력한 만큼 과실이 생기지만, 정치는 과실이 생기면 국민에게 드리는 것”이라고 했다.
 
노무현의 오른팔, ‘우광재’로 불리던 이광재 전 지사의 정치적 족쇄가 풀린 건 지난해 12월 30일. 2011년 ‘박연차 게이트’ 사건으로 지사직을 상실하고 피선거권이 제한된 지 9년 만에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특별사면을 받으면서다.
 
정계 복귀를 고민하던 이 전 지사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만난 건 사면 한 달 후인 1월 30일. 이 전 지사는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달라”는 이 대표의 요청을 수락하면서 4·15 총선에 뛰어들었다.
 
이 전 지사는 그로부터 두 달 반 후에 치러진 제21대 총선에서 원주갑에 출마해 국회의원 당선인 신분이 됐다. 총선을 기준으로 2008년 18대 이후 12년 만의 여의도 복귀다. 이 당선인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강원지사에 당선됐으나, 6개 월여 만에 직(職)에서 내려왔고 이후 9년 동안 고단한 야인의 길을 걸었다.
 
17·18대에 이어 3선 고지에 오른 이 당선인이 이번 당선으로 강원도와 친문 세력을 발판 삼아 2022년 대선 정국에서 입지를 넓혀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이 당선인은 “저는 부족한 게 많은 사람”이라며 손사래를 친다.
 
월간중앙이 5월 15일 국회 의원회관 404호에서 ‘노무현의 남자’ 이 당선인과 만났다. 404호는 이 당선인의 고교(원주고) 2년 선배인 심기준 민주당 의원의 방이다. 이 당선인은 “무엇보다 분열 정치 극복의 밀알이 되고자 한다”며 말문을 열었다.
 
 

세 가지 렌즈를 발견할 수 있었던 지난 9년

총선 당일이던 4월 15일 자신의 선거사무소에서 부인 이정숙씨와 대화하고 있는 이광재 당선인. / 사진:연합뉴스

총선 당일이던 4월 15일 자신의 선거사무소에서 부인 이정숙씨와 대화하고 있는 이광재 당선인. / 사진:연합뉴스

2008년 총선 이후 12년 만의 여의도 복귀다. 다시 돌아오려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
 
“첫째, 도지사직을 유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강원도민의 은혜를 갚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 생각했다. 둘째, 분열된 나라를 극복하는 데 역할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분열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고민해봤다. 그건 국가의 공통된 청사진이 없기 때문이다. 공통된 청사진을 만들어야 한다. (당선 후) 여야 공부 모임을 추진한 것도 그 때문이다. 셋째, 서포터가 돼야겠다고 다짐했다. 국민은 선거 전에는 왕이지만 선거 후에는 노예로 전락한다. 국민은 국회의원들을 보면서 ‘저렇게 좋은 스펙을 가진 사람들이 왜 우리들의 삶과 동떨어져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는다. 이게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다. 정책 입안 과정에 직접민주주의가 확실하게 도입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 서포터가 되고 싶었다.”
 
총선 승리에도 불구하고 그리 기뻐하지 않은 것 같았다.
 
“당선이 확정된 날 주위에서 ‘기쁘지 않냐’고 물어왔다. 기쁘긴 한데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코로나19 이후 당면한 실직·파산·질병 등에 대해 두려움을 가진 사람이 많다.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이 많았다. 지금도 마음의 짐이 너무 무겁다.”
 
야인이었던 지난 9년이 이 당선인에게는 어떤 시간이었나?
 
“(도지사직에서 내려온 이후) 2년 가까이 중국 칭화대에 가서 공부했다. 분한 마음에 한국에서는 도저히 살지 못할 것 같았다(웃음). 칭화대에 있을 때 중국 지도자들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많이 알게 됐다. 그리고 돌아와서 [중앙 SUNDAY]에 ‘원로에게 대한민국의 길을 묻다’를 연재했다. 싱크탱크 여시재(與時齋)에 5년 정도 몸담으면서 공부를 많이 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 나를 보게 됐다. 과거에는 무슨 일이 생기면 남의 부족함과 잘못부터 보려 했다. 하지만 이제는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무엇이 부족한지,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먼저 보려고 노력한다.
 
세 가지 렌즈를 발견한 것도 지난 9년 동안의 소득인데 첫째, 망원경이다. 망원경을 통해 인류는 우주를 볼 수 있게 됐고, 저는 망원경을 통해서 미국·중국·일본·러시아라는 세계의 큰 흐름을 보게 됐다. 둘째, 현미경이다. 현미경을 통해 인류는 생물학의 시대를 열었다. 저는 현미경을 통해서 한국 사회를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셋째, 볼록렌즈다. 볼록렌즈로 나뭇잎을 태우려면 한곳에 집중해야 하듯이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면 집중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볼록렌즈를 통해 노무현 대통령이 왜 성공하고 실패했는지 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알게 된 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 이유가 있다는 사실이다. 빙하가 물 위로 떠오른 만큼 물밑에 잠겨 있듯이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다.”
 
이 당선인은 2013년 [중앙SUNDAY]에 ‘원로에게 대한민국의 길을 묻다’ 인터뷰 시리즈를 연재했다. 이 전 지사는 이 연재물을 이듬해인 2014년 [대한민국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는 책으로 출간했다. 보수에선 고(故) 남덕우 전 국무총리, 김장환 목사 등이, 진보에선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조정래 작가 등이 등장한다.
 
 

“백성에겐 쌀이 곧 하늘”

2009년 당시 이광재 민주당 의원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상가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09년 당시 이광재 민주당 의원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상가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4·15 총선은 민주당의 압승과 통합당의 참패로 요약된다. 민주당 180석(비례대표 위성정당 포함)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는가?
 
“작년 말에 민심 흐름을 살펴봤을 때는 민주당이 굉장히 어려운 선거를 치르게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결과는 민주당의 대승이었다. 코로나19 영향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보수 야당의 무능함이 더 큰 원인이라고 본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 국민은 국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사람이 마구 죽어 나가는 등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이 한계를 드러내는 것도 봤다. 국민은 코로나19 때문에 힘들어 죽겠는데 보수 야당은 정쟁만 일삼으려 했다. 그래서 국민이 민주당에 승리를 안겨준 것이다.”
 
민주당의 책임정치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세종실록에 ‘백성은 쌀을 하늘로 여긴다’는 말이 등장한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파산·실직·질병에 대한 두려움을 이른 시일 내에 극복하는 게 우선 과제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성장이 가장 중요시됐다면 코로나19 이후로는 생명과 인간의 가치가 중요해졌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디지털 사회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산업화·민주화에 이어 디지털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세계의 주변국이 아닌 중심국으로 발돋움하는 새로운 역사를 거대 여당인 민주당이 주도해야 한다.”
 
사마천이 쓴 중국 역사서 [사기]에는 왕자이민위천 이민이식위천(王者以民爲天 而民以食爲天, 임금은 백성을 하늘같이 여기고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같이 여김)이란 글귀가 나온다. 과거부터 국내 유력 정치인들은 이 문구를 자주 인용하고 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152석으로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후 전국 단위 선거에서 연패를 거듭했고, 결국 정권을 내줘야 했다. 열린우리당의 교훈은 무엇일까?
 
“국민에게는 쌀이 곧 하늘이다. 먹고사는 문제에 더 집중했어야 했다. 국민은 먹고살기 힘든데 여당은 이념적 문제에 치우쳐 있지 않았나 싶다. 또 당시에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으로 분열돼 있었다. 우리에게 분열은 굉장한 어려움이었다. 그리고 내부적으로 (의원들이) 통제되지 못하다 보니 중구난방이었다. 덩치만 컸지 여당으로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한 것이다. 이번 총선 이후 이해찬 대표가 당선인들에게 ‘말조심하라’고 당부하는 것도 잘 새겨야 한다. 우리에게는 절제된 전진이 필요하다. 깊은 강은 소리 내지 않으면서도 멀리 세차게 흐른다.”
 
과거 열린우리당과 현재 민주당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일까?
 
“공통점은 다수당이라는 점이다. 차이점은 당시는 아슬아슬한 과반 의석이었지만 지금은 압도적 과반이라는 점이다. 국회라는 건 결국 수(數)의 권력이다. 그리고 당시에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으로 나뉘어 있었지만 지금은 하나로 뭉쳐 있다. 이게 굉장한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좀 더 자세히 말해 달라.
 
“현재 민주당은 진보와 중도가 단단히 통합돼 있는 형국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보수까지 끌어들인 DJT 연합과 제3후보 이인제의 출마 속에서도 대선에서 불과 39만 표 차이로 승리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가 있었음에도 57만 표 차이로 이회창 후보를 이겼다. 정 후보와의 단일화는 진보와 중도의 연대라는 효과가 있었다.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진보 진영) 단독 집권에 성공했다. 단독 집권 후 지방선거(2018년)에서 이기고 이번 총선에서 압승함에 따라 진보와 중도가 결합하게 됐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봤을 때 과거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때와 달리 (권력 기반이) 상당히 탄탄하다고 할 수 있다. 개혁과 혁신을 추진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그렇다고 덩치만 믿고 함부로 행동하면 안 된다. 민심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기도 한다. ‘생선 굽는 자세’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심스럽게 굽지 않으면 생선은 금세 흐트러진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건 과감한 길을 거야 한다는 것이다.”
 
[순자]에는 “군자주야서인자수야, 수즉재주수즉복주(君者舟也 庶人者水也. 水則載舟 水則覆舟)”라는 구절이 나온다. 또 노자의 [도덕경]에서는 정치에서 무위(無爲)를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삶듯이 해야 한다(治大國, 若烹小鮮).”
 
4연패(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에 빠진 미래통합당을 어떻게 보고 있나?
 
“2002년 대선 승리 직후 노무현 당선인은 유인태 정무수석에게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만나라고 했다. 노 당선인은 유 수석을 통해 여야 화합이라는 새로운 제의를 한 것이다. 그런데 보수당은 대선 직후 재검표를 주장하고 나왔다. 이미 보수가 주류가 아닌데도, 국민의 선택이었는데도 마치 노 당선인을 어느 날 갑자기 주인의 땅을 뺏은 소작농 취급한 것이다. 그게 결국 2004년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졌다. 코로나19로 국민은 힘들어 죽겠는데도 보수 야당은 정쟁으로 일관했다. 그러다 보니 중도까지도 다 잃게 된 것이다.”
 
 

“정치는 생선 굽는 자세로”

5월 10일 노무현재단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1주기를 맞아 유튜브 방송 ‘노무현의 시대가 올까요’를 진행했다. 왼쪽부터 강원국 작가 전재수 민주당 의원 이광재 민주당 당선인 김경수 경남도지사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 사진:유튜브 캡처

5월 10일 노무현재단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1주기를 맞아 유튜브 방송 ‘노무현의 시대가 올까요’를 진행했다. 왼쪽부터 강원국 작가 전재수 민주당 의원 이광재 민주당 당선인 김경수 경남도지사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 사진:유튜브 캡처

보수 야당이 지리멸렬해진 근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한마디로 권력중독증에 걸려 있는 것 같다. 권력과 정치는 함께 굴러가야 한다. 권력은 무엇을 할 수 있는 힘이고, 정치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사실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고 난 뒤에 권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보수 야당은 권력만을 생각한다. 지금 국민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해야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정도전에게는 자신만의 국가 비전이 있었다. 정도전이 꿈을 이루는 데 이성계가 필요했다. 두 사람의 결합은 정치(정도전)와 권력(이성계)의 만남이다. 20대 국회 임기가 5월 29일에 끝나면, 21대 국회 원 구성을 위한 여야 협상이 시작된다. 협상이 타결되기까지 한 달가량 공백이 있을 것이다. 이 기간에도 기업지원금 등 처리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다. 그런데도 야당이 상임위원장 자리 몇 개 더 달라며 버티는 모습을 보인다면 국민에게 더 큰 외면을 당한다. 국민은 ‘당신들은 우리들이 먹고사는 문제에는 관심이 없다’고 판단할 것이다. 상임위원장은 의원 개인에 국한된 일일 뿐 국민과는 무관하다. 지금 야당이 해야 할 일은 여당과 협력하되, 여당보다 더 적극적이고 참신한 정책을 내놓는 것이다. 그러면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고 길이 열릴 것이다. 민주당 입장에서도 독주는 바람직하지 않다. 건전한 야당이 필요하다.”
 
 

야당과 격투기 대신 기록경기 펼쳐야

2003년 4월 당시 이광재 국정상황실장(오른쪽)이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 앞서 정만호 정책상황비서관과 이야기하고 있다

2003년 4월 당시 이광재 국정상황실장(오른쪽)이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 앞서 정만호 정책상황비서관과 이야기하고 있다

거대 여당 그리고 지리멸렬한 야당, 이런 구도가 민주당에 득일까 독일까?
 
“그건 알 수 없다. 누가 잘하느냐 못하느냐가 문제다. 어떤 이들은 정치를 격투기라고 하던데 꼭 그렇게 볼 것만은 아니다. 수영의 박태환 선수나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 선수를 보자. 기록경기 선수인 그들에겐 아름다움이 있다. 정치도 기록경기이기에 아름다울 수 있다. 격투기처럼 만날 피만 흘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프랑스 보수의 아이콘이었던 샤를 드골 대통령은 대표적인 진보주의자 앙드레 말로를 문화부 장관으로 임명해서 10년 동안 함께했다. 미국의 헨리 키신저가 보수주의자였기에 중국 마오쩌둥과 만나 양국 수교의 산파 역할을 할 수 있었다고 본다. 1980년대 미국에 레이거니즘이 자리하면서 민주당은 연패했다. 이때 클린턴이 진보정책연구소를 만들면서 반전 계기를 마련했고, 1992년 대선에서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슬로건으로 중도를 끌어안음으로써 승리할 수 있었다. 덩치만 보면 180석(민주당) 대 103석(통합당)이다. 격투기는 이치에도 맞지 않는다.”
 
개헌에 관한 이 당선인의 입장은 무엇인가?
 
“지난 10년간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다른 나라들의 흥망성쇠를 공부했다. 우리는 미·중·일·러 사이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운명이다. 살아남으려면 우리 리더도 4강 리더들만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저는 (미국처럼) 4년 중임제가 필요하다고 본다. 미국의 리더는 8년, 중국과 일본은 10년 이상 그리고 러시아는 그보다 더 오래 나라를 이끈다. 우리는 5년 단임제다 보니 정상회담 때 파트너가 바뀔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국가를 제대로 끌고 나가기 어려운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의 윈스턴 처칠 수상이 루스벨트 미 대통령에게 편지를 800통이나 썼다고 한다. 국제사회에서 지도자 간 유대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그 유대 관계라는 건 지도자의 임기와도 밀접하다. 여야 합의가 무엇보다 중요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다음 대선 전에 개헌이 이뤄졌으면 한다. 앞서 말했듯이 4년 중임제로 가되, 대통령은 국제 관계나 남북 문제에 보다 집중하고 나머지 내치 부분은 책임총리에게 위임하는 식이 좋다고 본다.”
 
대통령 임기가 약 2년 남았다. 향후 당·청 관계는 어떻게 정립돼야 한다고 보는가?
 
“코로나19로 인해 새로운 나라로 가는 시스템을 2년 이내에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당·청 간 관계가 원만해야 한다. 20대 국회는 일하는 날 반, 노는 날 반이었던 것 같다. 처리해야 할 법안이 너무 많이 밀려 있다. 21대 국회는 앞으로 2년 동안 1년 365일 내내 일한다는 각오를 가져야 할 것 같다. 그래야 새로운 대한민국이 나아갈 새로운 레일을 깔 수 있을 것이다.”
 
20대 대선이 2년도 안 남았다. 잠룡들의 경쟁이 치열할 텐데 당 차원에서 어떤 관리가 필요하다고 보나?
 
“당내 과당 경쟁은 경계해야 한다. 국난 극복이 우선이다. 국민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 민주당이 집권당으로서 국난 극복에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대통령 선거에서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민주당 차기 대선후보의 자격(조건)은 무엇일까?
 
“팀워크를 잘 살릴 수 있어야 한다. 그다음으로 비전과 추진력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미래를 위한 선도 투자(IT 산업)와 사회적 약자를 위한 공동체 회복, 이 양자의 조화 속에서 시장 기능 강화를 통한 IMF 위기 극복에 나섰다.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나사(NASA)를 만들어서 전 세계 과학자들을 끌어모았다. 9년 뒤 미국은 초일류 기술을 보유한 전무후무한 국가로 거듭났다. 셋째는 통합이다. 우리가 디지털 사회로 진화하는 데 통합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국제 관계(연맹·협력)다. 그런데 아쉽게도 한 사람이 이 모든 능력을 갖출 순 없다. 그래서 팀워크를 극대화할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팀워크 극대화가 차기 대선후보의 첫째 조건 

이광재 당선인은 ’젊은이들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해 베를린까지 다녀올 수 있도록 길을 여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광재 당선인은 ’젊은이들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해 베를린까지 다녀올 수 있도록 길을 여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광재 당선인도 잠룡 중 한 명이라는 평가에 동의하는가?
 
“전혀 아니다(웃음). 저는 정치신인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부족한 것이 너무 많은 사람이다.”
 
이광재 당선인이 생각하는 ‘노무현 정신’은 무엇인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인간의 얼굴을 한 사람이다. 다시 말해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노선으로 보면 실용적 진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볼 수 있는 근거는 두 가지다. 노 전 대통령의 정책을 키워드로 분석하면 보수로 분류된다.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제주도 해군기지 등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예전에 노 전 대통령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변호사 시절 이혼하려는 남자와 여자를 상담했는데 몇천만 원 때문에 소송까지 벌이는 모습을 봤다. 사랑해서 결혼했을 텐데 헤어지려고 하니 그 정도 돈 때문에 다투더라. 사람에게는 그만큼 현실이 중요하다는 걸 생각하게 됐다.’ 노무현 정신은 절문근사(切問近思), 즉 간절하게 묻고 가까운 일부터 생각하는 실용적 진보라 생각한다.”
 
오랜만에 돌아왔다. 꿈이 있다면?
 
“정치꾼·정치인·정치가가 있다. 정치꾼에겐 당선되는 게 가장 큰 목표다. 정치인은 꿈과 현실적 성공, 이 두 가지의 조화를 이루려고 한다. 정치가는 현실보다 꿈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저는 정치가가 되려고 한다. 21대 국회가 존경받는 국회로 나아가는 데 서포터가 되고 싶다. 또 지역구(원주)의 서포터도 되고 싶다. 소싯적에는 30대 때는 정도전으로, 40대 때는 이성계로 살고 싶었는데 이제는 서포터의 길을 가고자 한다.”
 
좌우명이나 신조가 궁금하다.
 
“돌아보면 외로운 시절이 많았다. 북한산에 올라 심호흡을 하곤 했다. 매일 팔각정까지 똑같은 길을 가는데 어느 날 아침 거미줄이 얼굴에 걸리더라. 그때 큰 깨달음을 얻었다. ‘매일 와도 거미줄에 걸리는데 하물며 한 달, 1년 만에 온다면 내 앞에 더 큰 거미줄이 생기겠구나.’ 끝없이 공부하지 않으면 거미줄에 걸릴 것이다. 저는 공부와 탐험을 좋아한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하고자 한다.”
 
인터뷰가 마무리된 뒤 이 당선인은 심기준 의원실에 걸려 있는 지도를 가리키며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기차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해 모스크바를 거쳐 베를린까지 갈 수 있다. 개인적으로 2004~2005년 사이에 다녀온 적이 있다. 우리 젊은이들이 기차를 타고 이 코스로 여행을 간다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질 것이다. 에너지가 넘치는 우리 민족에게 남한은 너무 좁다. 무대가 턱없이 좁다 보니 여야가 만날 싸우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남들이 가질 수 없는 자신감을 얻었다. 세계를 향한 도전의 서포터가 되겠다.”
 
 
- 글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 사진 김경빈 선임기자 kgboy@joongang.co.kr / 녹취 정리 심민규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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