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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려는 美, 버티는 中···'반도체 신냉전' 한국이 곤란해졌다

중앙일보 2020.05.26 17:00
반도체를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이 다시 정면충돌하고 있다. 반도체 기술을 지키려는 미국과 이에 도전하는 중국 모두 한 치도 물러설 기색이 없다. 미·중간 반도체 충돌은 미래 패권 확보를 위한 기술 전쟁이다. ‘반도체 신(新)냉전’ 혹은 ‘반도체 3차 대전’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여기에 일본까지 반도체 부흥을 외치면서 한국의 반도체산업은 미·중·일간 반도체 패권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위기를 맞고 있다. 
 

반도체 패권이 곧 4차산업혁명 패권
중 도전에 미 인텔·퀄컴 마저 위협받아
미, 무역보복·기술제재 수단방법 안가려
중, 힘 키울때까지 정면충돌보다 버키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홍콩인권법안'에 서명하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중국, 홍콩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담았다"고 말했으나 중국의 격렬한 반발을 사고 있다. [UPI=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홍콩인권법안'에 서명하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중국, 홍콩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담았다"고 말했으나 중국의 격렬한 반발을 사고 있다. [UPI=연합]

 

죽이려는 미국 vs 버티는 중국  

미국 상무부는 지난 22일 중국 기업 블랙리스트 33곳을 선정하고 미국 기업과의 거래를 제한했다. "미국의 안보와 외교 정책에 반하는 활동을 했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중국 언론은 "미국이 중국의 첨단 기술 죽이기에 나섰다"고 맞받았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중 33곳 중 24곳이 인공지능(AI), 보안 소프트웨어, 광학기술 등 첨단 IT(정보기술) 업체라는 것이다. 이에 앞서 미국은 지난해 5월 제재했던 화웨이에 대해 꼭 1년 만에 추가 제재안을 내놨다. "미국의 기술을 활용해 비메모리 반도체를 화웨이에 공급할 때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게 골자다. 중국에선 "미국이 반도체 공급을 차단해 화웨이의 숨통을 끊겠다는 것"이라며 발끈했다. 미국은 왜 이렇게 강경한 것일까.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미, 반도체 패권 뺏기면 미래 패권도 넘겨야   

미국의 속내는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20일 공개한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접근' 보고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보고서는 화웨이를 직접 거론하며 "중국 정부가 혜택을 부여한 기업(화웨이)을 앞세워 세계 정보통신 업계를 장악하려 한다"고 강조했다. 박재근 한국 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은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자율주행차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이 반도체”라며 “중국이 4차산업 혁명시대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반도체를 비롯한 기술 확보에 나서자 미국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강경책을 펴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최근 잇따른 대중국 제재는 현재의 기술 패권을 사수해 미래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을 주저앉히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명이라는 것이다.
 
반도체 그래픽.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반도체 그래픽.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중의 도전에…인텔·퀄컴도 위협

특히 미국의 화웨이에 대한 집중 공세는 중국 기술기업을 대표하는 화웨이의 상징성이 꼽힌다. 또 화웨이가 전통적으로 미국이 강세였던 스마트폰용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칩이나 반도체 설계 같은 비메모리 반도체 기술에서 무섭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우선 미국은 화웨이가 중국 당국을 등에 업는 '반칙'을 통해 세계 최고 5G 기술 업체로 성장했다고 보고 있다. 더구나 5G는 4차 산업혁명은 물론 군사·안보와도 직결된 기술이다. 화웨이는 비메모리 분야에서도 비슷한 성장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 화웨이의 자회사인 하이실리콘은 비메모리이자 스마트폰의 핵심인 AP 칩 시장에서 세계 5위를 차지했다. 올해 1분기에는 중국 시장 점유율 43.9%로 처음으로 1위를 기록하며 퀄컴(32.8%)을 따돌렸다. 또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기업) 분야에서도 지난해 매출 기준 톱 10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성장했다. AP 칩과 팹리스는 각각 미국의 퀄컴과 인텔이 장악하고 있는 분야다. 박재근 교수는 "중국이 성능이 우수한 AP와 PC용 CPU(중앙처리장치)를 자체 개발하고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며 "미국으로서는 이대로 가면 인텔과 퀄컴마저 화웨이에 잡히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을 느낄 것이고 그럴수록 더 강력히 브레이크를 거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 힘 키울 때까지 미와 정면충돌 피해야  

미국의 잇따른 견제와 압력에도 중국의 반도체를 향한 진군은 거침이 없다. 시진핑 국가 주석은 "반도체는 사람의 심장과 같다"는 '반도체 심장론'을 주창하며 투자를 독려 중이다. 중국의 지난해 반도체 자급률은 15.7%(IC 인사이츠)로 자급률 70%라는 '제조 2025'의 목표와 아직 거리가 멀다. 미국의 딴지로 칭화유니그룹의 미국 마이크론 인수가 무산되는 등 해외 반도체 기업의 M&A(인수·합병)가 틀어지면서 기술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은 세계 최고의 파운드리 기업인 대만의 TSMC에 화웨이와의 거래 중단을 압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은 그럴수록 천문학적인 돈을 퍼부으며 자국 기업 육성책으로 맞서고 있다. 닛케이 아시안리뷰에 따르면 중국과 상하이시 당국은 22억5000만 달러(약 2조7700억원)를 파운드리 업체 SMIC에 수혈했다. 현재 14나노 공정 기술을 가진 SMIC가 7나노 공정 기술로 퀀텀 점프할 수 있게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또 중국 당국을 등에 업고 있는 YMTC(양쯔 메모리 테크놀로지)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양산하기 시작한 128단 적층형 낸드플래시 메모리를 연말부터 양산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미국과의 정면충돌을 피하며 '도광양회(조용히 때를 기다리며 힘을 키운다)' 전략을 펴고 있다고 본다. 「반도체 전쟁」의 저자인 허성무 코트라 해외지재권실 차장은 “중국 내부에서는 미국의 견제와 압박에도 반도체 산업이 발전 단계에 진입하기 전까지는 노골적인 공세를 취할 필요가 없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반도체 그래픽.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반도체 그래픽.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한국은 딜레마…기술력으로 활로 찾아야 

한국은 딜레마에 빠졌다. 조철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미중간 충돌로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단기적으로 반사이익을 얻을 수도 있다"며 "하지만 미국이나 중국이 한국에 각자 자기편에 서라고 하면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고 말했다. 한국 기업은 전략적 모호성, 즉 눈치 보기를 마다하지 않고 급변하는 상황에 맞춘 전략 짜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데서 나아가 ‘반도체 자급주의’를, 일본까지 반도체 부흥을 추진할 경우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이종호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미국은 오바마 행정부 때부터 반도체 주도권 회복 전략을 추진해 왔다”며 “중국 견제뿐 아니라 한국에 빼앗긴 메모리 반도체 주도권을 다시 찾으려 할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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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환경에 휘둘리기보다 반도체 초격차 전략을 지속하는 것도 중요하다. 안기현 한국반도체협회 상무는 "미·중간 문제에 한국 정부나 기업이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아무것도 없다"며 "반도체 산업과 관련된 규제 환경이나 내부 문제를 찾아 개선하고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는 후발주자들과 기술 격차를 벌여가면서 비메모리 분야로 영역을 넓히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악의 시나리오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허성무 차장은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 아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미국이 중국과 빅딜을 체결하며 미·중 반도체 협력 구도가 형성되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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