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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경궁 가마 뒤 우쭐한 호위병… ‘100억 마법’ 디지털 행차도

중앙일보 2020.05.26 12:00
국립중앙박물관이 새로 개장한 '디지털 실감영상관' 중 1관에서 상영되는 ‘왕의 행차, 백성과 함께 하다’의 장면. 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원행정리의궤도’를 기초로 여러 의궤와 반차도(행렬도)를 참고해 복색과 분위기를 뽑아냈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이 새로 개장한 '디지털 실감영상관' 중 1관에서 상영되는 ‘왕의 행차, 백성과 함께 하다’의 장면. 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원행정리의궤도’를 기초로 여러 의궤와 반차도(행렬도)를 참고해 복색과 분위기를 뽑아냈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어두컴컴한 110평 공간에 들어서면 3면 파노라마로 대형 스크린이 펼쳐진다. 폭 60m, 높이 5m에 이르는 스크린에서 ‘그림 속 조선인’ 1000여명이 룰루랄라 행진을 한다. 정조대왕이 어머니 혜경궁 홍씨 환갑을 맞아 화성(華城)에 있는 사도세자 묘소(현륭원)에 성묘하러 가는 장면이다. 혜경궁 가마 뒤로 으스대며 활보하는 호위군사가 보인다. 말 탄 채 뒤돌아보는 사람, 의기양양 북 치는 사람 등 표정과 걸음이 제각각이다. 형형색색 3D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한 문무백관과 나인들이 어찌나 생생한지 225년 전 그날로 빨려드는 듯하다.

1795년 정조 화성행차, 3D 애니로 구현
60m 길이 3면 파노라마로 생생히 감상
AR·VR 기술로 북한 무덤 속까지 엿봐
국립중앙박물관 '디지털영상관' 개장

 
11분짜리 영상의 제목은 ‘왕의 행차, 백성과 함께 하다’. 지난 20일 첫 선을 보인 국립중앙박물관(이하 중앙박물관) 디지털실감영상관 콘텐트 중 하나다. 정조 19년(1795) 열린 이른바 ‘수원화성행차’ 풍경을 현대기술로 재현했다. 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원행정리의궤도’를 기초로 여러 의궤와 반차도(행렬도)를 참고해 복색과 분위기를 뽑아냈다. 새벽녘 창덕궁을 출발해 화성 행궁으로 향하는 1박2일 여정이 마치 축제처럼 전개된다. 특히 도중에 등장하는 궁중무용은 무형문화재 전수자들의 춤동작을 ‘모션캡처’ 해서 그림에 입혔다고 한다.  
정조 19년(1795) 열린 이른바 ‘수원화성행차’ 풍경을 기록한 '원행정리의궤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산으로 이번 디지털 실감영상관 개관을 맞아 공개 전시되고 있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정조 19년(1795) 열린 이른바 ‘수원화성행차’ 풍경을 기록한 '원행정리의궤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산으로 이번 디지털 실감영상관 개관을 맞아 공개 전시되고 있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실제 사람 '모션 캡처'해 그림 속에 입혀 

국립중앙박물관이 새로 개장한 '디지털 실감영상관' 중 1관에서 상영되는 ‘왕의 행차, 백성과 함께 하다’의 장면. 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원행정리의궤도’를 기초로 여러 의궤와 반차도(행렬도)를 참고해 복색과 분위기를 뽑아냈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이 새로 개장한 '디지털 실감영상관' 중 1관에서 상영되는 ‘왕의 행차, 백성과 함께 하다’의 장면. 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원행정리의궤도’를 기초로 여러 의궤와 반차도(행렬도)를 참고해 복색과 분위기를 뽑아냈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이 새로 개장한 '디지털 실감영상관'에선 다양한 문화유산 실감콘텐츠를 제공한다. 1관에서 상영되는 '왕의 행차, 백성과 함께하다' 모습.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이 새로 개장한 '디지털 실감영상관'에선 다양한 문화유산 실감콘텐츠를 제공한다. 1관에서 상영되는 '왕의 행차, 백성과 함께하다' 모습.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전통 문화유산과 21세기 한국의 자본‧기술력의 만남. 중앙박물관이 한국콘텐츠진흥원과 손잡고 지난해부터 공들여온 한국형 ‘실감콘텐츠’다.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혼합현실(MR), 고해상도영상, 홀로그램, 외벽영상(미디어파사드) 등 여러 기술을 아우른다. 지금까지 총 20개를 제작해 우선적으로 11개가 지난 20일부터 중앙박물관 내 디지털실감영상관 4곳에서 상영되기 시작했다. 광주와 청주, 대구박물관도 각각 영상관을 통해해 지역 특성에 맞는 대표영상을 선보인다. 콘텐트 제작비 77억원을 포함해 박물관 4곳의 관련 시설 공사비까지 총 108억원이 투입된 프로젝트다.
 
이번 프로젝트 실무를 총괄한 중앙박물관 박물관정보화과 장은정 학예연구관은 “가상‧증강현실 기술을 활용한 실감콘텐츠는 무엇보다 기존 박물관의 시공간적 제약을 넘어서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중앙박물관 영상3관(상설전시관 1층 고구려실 내)에서는 특수 프로젝터 영상을 통해 북한에 있는 고구려 벽화무덤 3곳을 체험할 수 있다. 학술자료와 촬영 사진을 토대로 재구성한 일종의 가상현실(VR)을 통해 안악 3호 무덤, 덕흥리 무덤, 강서대묘의 구조와 벽화 배치를 앉은 자리에서 조감한다. 마찬가지로 2관에서는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는 중앙박물관 수장고와 보존과학실 등을 VR로 둘러볼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새로 개장한 '디지털 실감영상관'에선 다양한 문화유산 실감콘텐츠를 제공한다. 3관 고구려 벽화무덤 모습.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이 새로 개장한 '디지털 실감영상관'에선 다양한 문화유산 실감콘텐츠를 제공한다. 3관 고구려 벽화무덤 모습.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이 새로 개장한 '디지털 실감영상관'에선 다양한 문화유산 실감콘텐츠를 제공한다. 미디어파사드로 거듭난 경천사지 십층석탑 모습.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이 새로 개장한 '디지털 실감영상관'에선 다양한 문화유산 실감콘텐츠를 제공한다. 미디어파사드로 거듭난 경천사지 십층석탑 모습.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박물관이 가장 내세우는 '작품'은 상설전시관 1층 복도 끝 ‘경천사지 십층석탑’을 변신시키는 ‘미디어파사드’다. 낮에는 AR 기술로 각 면의 조각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하고, 야간 개장 땐 손오공의 모험, 석가모니의 삶과 열반 등을 ‘레이저 쇼’로 구현한다. 이 프로젝트와 1관의 디지털 갤러리는 뉴에이지 음악 작곡가 양방언 음악감독이 전통 국악을 재해석해 배경음악을 선사한다.
 

미국 달리박물관은 AI로 달리와 '인증샷' 

이 같은 실감형 콘텐츠는 해외 유수 박물관들도 너나없이 뛰어 들고 있는 트렌드이기도 하다. 2015년 개관한 중국 고궁박물원 디지털 전시관에선 VR 고글을 착용한 채 청 황제가 된 기분으로 조서에 옥새를 찍어 승인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청대 황실 의복 코너에선 스크린 화면을 터치해 의상 갈아입히기 놀이를 한다. 왕희지 등의 서예 대가의 작품을 3D 스크린으로 감상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미국 살바도르달리 박물관(플로리다 주 세인트피터스버그)의 경우 2016년부터 상설 전시 중인 ‘달리의 꿈 VR(Dreams of Dali in VR)’이 인기다. 360도 VR 영상을 통해 초현실주의적인 달리의 작품세계에 직접 걸어들어간 듯한 체험을 한다. 인공 지능(AI)을 통해 달리를 재현한 ‘달리 라이브(Dali Lives)’ 코너에선 관람객들이 달리와 대화를 나누고 사진 촬영도 한다.
미국 살바도르 달리 박물관의 '달리의 꿈 VR'(Dreams of Dali in VR) 캡처 장면. [유튜브 캡처]

미국 살바도르 달리 박물관의 '달리의 꿈 VR'(Dreams of Dali in VR) 캡처 장면. [유튜브 캡처]

 
이 같은 ‘인터랙티브 체험’은 디지털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란 밀레니얼-Z세대(MZ세대)를 겨냥한 박물관의 생존 전략이기도 하다. 장은정 연구관은 “이들은 즉각적인 체험 외에도 스스로 크리에이터가 되려는 욕구가 강하다”면서 “이번 디지털 영상관에도 옛 문화유산을 갖고 노는 즐거움을 주고자 애썼다”고 했다. 2층 영상2관의 ‘태평성시도’ 같은 경우 8K 고화질로 원본 이미지를 구현하면서 각 폭마다 목화솜 타기, 장원급제, 화분 운반 등 ‘터치 게임’을 배치한 이유다.
 

디지털 혁신 덕에 박물관 관객 39% 늘기도 

실제로 이같은 디지털 변환은 젊은 관객 수를 늘리고 있다. 2013년 개관한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미술관 갤러리 원은 ‘아트렌즈(대화식 디스플레이)’ 등 혁신적 시도로 박물관 관람객 수를 1년 만에 39% 늘렸다. 총 60만명에 이르는 관객 중 아이 동반 가족이 25% 증가한 것도 고무적인 부분이다.
 
디지털화에 따른 고민도 있다. 한국 전통회화의 경우 현대 디지털이 표방하는 색감이나 동작선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자칫 우리 원본의 멋과 깊이를 훼손할 우려도 있다. 장 연구관은 “서양 회화와는 다른, 우리만의 톤을 살리고자 노력했다”면서 “다행히 우리 전통회화를 바탕으로 한, 스토리가 차별화된 콘텐트라서 호응이 좋다”고 강조했다. 1관에서 ‘수원화성 행차’와 교차 상영되는 ‘금강산에 오르다’ ‘영혼의 여정, 아득한 윤회의 길을 걷다’ ‘신선들의 잔치’ 등이 우리의 자연과 전통 도교‧불교 세계를 소개하는 식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새로 개장한 '디지털 실감영상관'에선 다양한 문화유산 실감콘텐츠를 제공한다. 1관에서 상영되는 '신선들의 잔치' 모습.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이 새로 개장한 '디지털 실감영상관'에선 다양한 문화유산 실감콘텐츠를 제공한다. 1관에서 상영되는 '신선들의 잔치' 모습.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배기동 관장은 “이번 디지털영상관은 스마트박물관으로 나아가기 위한 첫 출발”이라면서 “코로나19 시대에 교류 전시의 개념도 바뀌고 있다. 이 같은 디지털콘텐트를 해외 박물관과 교류하는 방법도 모색해 갈 것”이라고 말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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