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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어용 권력이 된 시민단체

중앙일보 2020.05.26 00:38 종합 31면 지면보기
고대훈 수석논설위원

고대훈 수석논설위원

‘위안부 운동가 윤미향’은 대단한 권력이었던 모양이다. 기부금을 개인 통장으로 모금해도, 취업과 일감 몰아주기로 아버지와 남편을 걷어 먹여도, ‘안성 쉼터’를 수상하게 거래해도, 억대의 뭉칫돈이 연기처럼 사라져도 간섭하는 사람이 없었다. 누군가 “앵벌이로 팔아 배를 불려온 악당들”이란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절규를 들었고, 윤미향의 전횡을 봤겠건만 모두 외면했다.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상임대표와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이사장을 거쳐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로서 국회의원 배지를 단 윤미향의 모습은 시민단체 활동가들에게 롤모델이었으리라. 화양연화(花樣年華),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드라마 제목처럼 계속 누렸을 것이다.
 

윤미향 의혹 본질은 NGO 권력화
견제·감시의 운동정신 퇴색하고
침묵의 부당거래로 권력에 진출
‘어용’ 시민단체는 간판 내려야

‘윤미향의 비극’은 “속을 만큼 속았다”는 이용수 할머니의 폭로로 시작됐다. 그러나 그 본질은 출세의 지름길로 변질된 시민운동의 타락에서 찾아야 한다. 과거 보수 정권에서도 ‘뉴라이트 운동’ 등 시민단체와의 유착이 있었지만 김대중·노무현에 이어 문재인 진보 정권에서 특히 유난스럽다. ‘인권’ ‘민주’ ‘정의’ ‘여성’ ‘환경’ 등 화려한 거대 담론을 독점한 시민단체는 스스로 권력이 됐다. 정부 인사와 개각 때면 시민운동가가 집권계층으로 발탁되는 익숙한 장면은 힘의 이동을 보여준다.  
 
어느 공무원이 전해준 얘기는 윤미향이 아무런 감시와 제지를 받지 않았던 단서를 제공한다. “정권에 우호적인 시민단체에 싫은 소리 할 간 큰 공무원이나 기업은 없다. 잘못 건드렸다가 밉보이며 적폐로 몰리기에 십상이다. 상전 모시듯 설설 기어야 한다. 언제 장·차관으로 올지 어떻게 알겠나.”
 
요즘 ‘신(新)주류’에 끼려면 정대협·참여연대·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시민단체 명함이 필요한 세상이다. 지은희 전 여성장관, 이미경 현 KOICA 이사장이 윤미향과 같은 정대협 출신이다. 한명숙 전 총리도 여성민우회 회장을 지냈다. 참여연대 위상은 ‘만사참통(모든 인사는 참여연대로 통한다)’이 말해준다. 문재인 청와대의 정책실장은 참여연대 출신 장하성·김수현·김상조 세 사람이 대를 이어 맡았고, 비서관·행정관도 대거 포진해 있다. 조국 전 법무장관·김연철 통일장관을 비롯해 행정부에도 요직을 꿰찼다.
 
민변 회장을 지낸 김선수·이석태 변호사는 각각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에 임명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전화를 걸어 “권력기관 개혁”을 당부한 비례대표 국회의원 최강욱 전 청와대 비서관도 민변 출신이다. 고위 공무원과 공공기관, 정부 위원회에는 시민운동가들이 셀 수 없을 만큼 차고 넘쳐난다. 비정부기구(NGO)란 표현이 무색하게 ‘NGO 권력의 전성시대’다. 부끄러운 현실이다.
 
시민단체의 권력층 진입은 지극히 한국적인 현상이다. 그들은 ‘앙가주망’(Engagement, 사회참여)으로 미화한다. 미국과 유럽에서 지식인의 앙가주망은 있지만, 정치적 독립성을 생명으로 하는 시민운동이 특정 정치세력에 예속되는 경우는 극히 이례적이다. 공짜 점심이 없듯이 특혜는 ‘부당거래’를 낳는다. 정권의 일탈과 비리를 감싸거나 묵인하는 보은(報恩)은 일종의 상도의다. 마치 일본의 손타쿠(忖度, 윗사람의 뜻을 미리 읽어 행동함) 문화를 보는 듯하다.
 
문재인 정부 3년을 돌아보면 대강 읽힌다. 보복성 적폐 놀음과 내로남불 인사에 진보 시민단체들은 대체로 눈을 감았다. ‘조국 사태’를 비롯해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드루킹 여론조작,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행 등 의혹들이 불거졌을 때도 침묵했다. 기준도 없는 선과 악, 정의와 불의로 내 편과 네 편을 가르는 이분법적 진영논리에 따라 정권과 보조를 맞췄다.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는 참여연대의 사명”은 현실과 동떨어진 공허한 구호일 뿐이었다.
 
‘윤미향 사태’에서도 진영논리가 어김없이 작동한다. 식상한 친일론을 또 우려낸다. ‘윤미향과 정의연 의혹’에 대한 합리적 의심 제기를 ‘토착 왜구의 모략극’으로 둔갑시키려는 집권 세력과 한목소리를 낸다. 정의연 홈페이지에는 시민단체들의 엄호 성명이 쏟아진다. ‘선의의 작은 오류’를 두고 “친일·반인권·반평화 세력이 역사를 뒤집으려 정치 공세를 편다”는 음모론이 판친다. 어제 이용수 할머니는 “생명을 걸고 끌려간 위안부 할머니를 이용해 왔다. 윤미향의 죄를 물어야 한다”고 분노했다. 위안부 운동을 정치 욕망의 발판으로 삼아온 그간의 위선과 부도덕성을 시인하고 사과하라는 외침이었다.
 
윤미향 사태는 시민단체의 존재 이유를 다시 묻고 있다. 권력의 단맛을 본 그들은 정권과 운명공동체라는 일그러진 동지의식과 진영주의의 포로가 되고 있다. 권력의 매서운 파수꾼은 사라졌고, 정치적 중립성은 허물어졌다. 시민단체를 주류세력으로 키우려는 정권과 그 정권에 보답하려는 시민단체, 두 세력의 빗나간 결탁은 공멸의 길이다. 까칠한 저항의 NGO 정신을 망각한 시민단체는 간판을 내려야 한다. ‘어용’과 ‘진보’는 공존할 수 없다. ‘어용 진보 시민단체’란 비판이 흘러다닌다.
 
고대훈 수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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