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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견장 쩌렁쩌렁 울린 이용수 할머니, 위안부 증언땐 눈물

중앙일보 2020.05.25 15:13
25일 대구 수성구 인터불고 호텔 기자회견장에 들어서는 이용수 할머니. 대구=백경서 기자

25일 대구 수성구 인터불고 호텔 기자회견장에 들어서는 이용수 할머니. 대구=백경서 기자

25일 오후 2시 40분 대구시 수성구의 인터불고호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2) 할머니가 휠체어에 탄 채 나타났다. 이 할머니는 지난 7일 첫 기자회견 후 18일 만에 처음 공식 석상에 등장했다. 평소에 걸어 다니는 것으로 알려진 할머니는 이날 야윈 모습으로 휠체어에 앉은 채 기자회견장에 들어서면서 손에 든 기자회견문을 만지작거렸다. 앉자마자 작심한 듯 "누구를 원망하고 잘못했다 하고 하는 거는…. 너무도 생각도 못 한 것이 나왔다"고 말했다.

25일 이용수 할머니 두번째 기자회견
휠체어 타고 등장한 할머니
기자회견장 앞에선 일부 시민 충돌도

 
이날 기자회견장은 이 할머니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가득찼다. 이 할머니는 "뭐를 용서를 합니까? (정의기억연대의 후원금 부정 사용 의혹은) 검찰에서 수사 할 일"이라고 했다. 다만 위안부 증언을 할 때에는 눈물을 보였다.  
 
이 할머니는 "(일본군이) 방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끌고가서 전기고문을 했다. 몸에 칼을 그었다. (하루는) 방에 들어가라고 담요를 드는데 보니까 군인이 있길래 안 들어간다고 했더니 그냥 머리를 질질 끌고 갔다. 허리를 발로 차서 넘어졌는데 배가 찢어지도록 아프고 죽도록 아파서…. 저 잘못한거 없다 그런데 살려달라고 했다. 이걸 밝혀줘야 하는데 (정의연은) 할머니 앉혀가지고 증언 한 번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이 할머니는 지난 19일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전 정의연 이사장)이 자신을 찾아와 사과한 것과 관련해서 말을 하던 중에 목이 메이는 듯 기침을 하기도 했다. 1시간 동안 진행된 기자회견이 끝날 때쯤엔 목소리가 잠겼는 데도 이 할머니는 "위안부 문제를 해결해 후손에게 올바른 역사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이 할머니의 기자회견은 장소를 두 번이나 바꾸는 등 어렵게 성사됐다. 당초 이 할머니가 대구 남구의 한 찻집에서 기자회견을 열길 바랐으나, 취재진 200여 명이 몰리는 바람에 장소가 협소해졌다. 따라서 기자회견 주최 측은 수성호텔로 바꿨다가, 인터불고 호텔로 다시 장소를 바꿨다.
 
기자회견이 열린 호텔 앞에서는 실랑이가 벌이기도 했다. 보수 성향 단체인 활빈단 관계자는 '수요집회에 이용당했다는 이용수 할머니 폭로 충격! 실체적 진실 즉각 규명하라!'는 팻말을 들고 서 있었다. 이에 한 행인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아라"는 등 항의하면서 소동이 벌어졌다.  
이용수 할머니 기자회견이 열리는 대구 수성구의 인터불고 호텔 앞에서 보수단체가 "실체적 진실 규명하라"는 팻말을 들고 서 있다. 이에 한 시민이 항의하고 있다. 대구=백경서 기자

이용수 할머니 기자회견이 열리는 대구 수성구의 인터불고 호텔 앞에서 보수단체가 "실체적 진실 규명하라"는 팻말을 들고 서 있다. 이에 한 시민이 항의하고 있다. 대구=백경서 기자

 
이 할머니는 지난 7일 첫 기자회견을 연 직후부터 잠행(潛行)했다. 대구 달서구 자택에서 머물지 않고, 주변 인사들의 도움을 받아 외부에서 숙식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2일 기자가 대구 달서구 할머니 자택을 찾았을 땐 집 안에 인기척이 없었다. 전화 통화를 시도했지만, 할머니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당시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80대 주민은 "이용수 할머니가 이 아파트에 산다"면서도 "최근 아파트에서 할머니를 뵙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1차 기자회견 후 '월간중앙' 등 일부 언론의 인터뷰에 응해 정의기억연대(옛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의연) 측의 문제를 폭로했다. 이때도 "병원을 다닌다"는 정도만 언급할 뿐 정확히 어디에 누구와 머무는지 등은 밝히지 않았다. 
 
할머니를 직간접으로 돕는 측근은 10여명으로 전해졌다. 진보 인사,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등이다. 지난 19일 윤미향 전 정의연 이사장이 이 할머니를 대구에서 만났다는 이야기가 나온 직후부턴 할머니를 돕는 측근들도 사실상 연락이 두절됐다.
 
이 할머니는 집이 아닌 대구시 중구 한 호텔에서 주로 머물렀다고 한다. 경기도 지인의 거처에 지내기도 했다. 경남의 사찰에서 지낸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 할머니는 집을 떠나 생활한 탓인지 기력이 많이 쇠했다고 한다. 특히 윤 전 이사장과 지난 19일 만난 후 건강이 나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김정석·백경서·김윤호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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