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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널찍한 좌석 야호! 그런데 영화 보는 재미가 사라졌다

중앙일보 2020.05.25 13:00

[더,오래] 홍미옥의 모바일 그림 세상(53)

처음엔 좋았다. 이게 웬 횡재냐 싶기도 했다. 생활 속 거리두기가 시작되던 오월 어느 날, 참 오랜만에 영화를 보러 갔다. 깨끗하고 넓은 영화관에서 보고 싶던 영화를 보던 날, 놀랍게도 관객은 다섯 명에 불과했다. 하기는, 관객 수 오백 명만 들어도 박스오피스에 진입한다는 자조 섞인 유머가 유행이긴 하다. 하지만 넓은 영화관은 통째로 전세 낸 듯 편했고 분위기는 오히려 쾌적했다. 마치 우리 집 거실인 양 최대한 편한 자세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뭔가 편치 않은 이 기분은 도대체 무슨 조화일까?
 
코로나19로 한산해진 영화관의 최근모습/ 갤럭시탭S6 아트레이지 [그림 홍미옥]

코로나19로 한산해진 영화관의 최근모습/ 갤럭시탭S6 아트레이지 [그림 홍미옥]

 

평범한 일상이 주는 행복

여느 때 같았더라면 여기저기서 고소한 팝콘 냄새가 풍겼을지도 모른다. 눈치 없는 누군가는 걸려오는 휴대폰을 조심스레 받고 있을 것이다. 냉장고에 반찬 만들어놨으니 꺼내 먹어라. 혹은 신발장 위에 학원비를 올려 두었다는 등의 통화를 했을지도. 물론 그런 관객에게 힐난의 눈짓을 보내는 이도 분명 있었겠다. 뒤늦게 헐레벌떡 입장하는 관객이 가린 스크린을 보느라 짜증이 솟구치는 사람도 있었을 보통의 영화관. 하지만 그날은 그런 불편하고 짜증 났을 일들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다. 세시간의 러닝타임은 끝까지 한결같이 고요했다. 과자를 뜯는 바스락거림, 꼬릿한 버터오징어와 팝콘 냄새도 느낄 수 없다.
 
그뿐인가! 관객의 탄식도 기쁨의 탄성도 전혀 들리지 않았다. 너무 조용한 나머지 장대한 서사를 다루는 영화가 혼자 돌아가는 낡은 영사기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놀라는 장면에선 함께 탄성을 뱉고 안타까운 장면엔 같이 훌쩍였을지도 모를 시간이 사라진 거다. 알게 모르게 함께 감동하고 공감하던 분위기의 힘은 컸다. 내 집처럼 넓고 쾌적했던 영화관이 차츰 춥게 느껴지는 걸 보니 말이다. 안 그래도 긴 영화의 러닝타임이 유난히 더 길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짐 자무시 감독의 영화 '패터슨'의 한 장면. [영화 패터슨 스틸]

짐 자무시 감독의 영화 '패터슨'의 한 장면. [영화 패터슨 스틸]

 
한참 전에 보았던 영화 패터슨, 짐 자무시 감독의 패터슨은 얼핏 보아선 심심하기 짝이 없다. 주인공은 뉴저지주 패터슨 시에 사는 버스 기사 패터슨, 평범하기 짝이 없는 그의 일상은 도무지 재미있어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영화는 시종일관 반복된 일상을 고장 난 라디오처럼 계속 보여준다. 무릇 영화라면 드라마틱한 반전이나 소름 끼치는 스릴러, 혹은 피 튀기는 액션 장면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나? 초반부터 푹신한 의자에 몸을 맡기고 졸고 있는 관객도 보였다. 중반쯤엔 마치 급한 일이라도 생긴 것마냥 자리를 뜨는 관객도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영화가 진행될수록 패터슨의 일상은 관객의 하루가 되고 나의 이야기가 되어갔다. 어제 같은 오늘, 오늘 같을 내일의 소중함이 읽히는 순간이었다고 할까?
 

평범함이 주는 특별한 선물

오늘, 평범한 일상이 주는 고요한 하루가 그리워진다.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몸살을 앓은 지 몇 달째다. 아무렇지도 않고 즐거울 것도 없던 어제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저절로 알아버렸다. 이맘때쯤이면 들리던 중고생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는 중간고사가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슬리퍼를 신고 뛰던 발걸음 소리는 얼마나 예뻤던가!
 
동네 경로당 앞 정자에서 들리던 어르신들의 자식 자랑, 병 자랑(?)은 얼마나 구수했는지 새삼스레 생각난다. 오늘도 텅 빈 학교엔 학생들이 보고 싶다는 현수막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언제쯤이면 저 현수막도, 자꾸만 땀이 차는 이 마스크도 벗어 던질 수 있을지….
 
우리가 원하는 일상 장르는 화려한 액션도 숨 막히는 스릴러도 아니란 걸 새삼 느끼는 요즘이다. 흔하디흔한 말 중에 가장 평범한 게 가장 특별하다는 그 말이 이토록 다가올 줄 몰랐다. 이 시련이 지나고 다시 마주할 일상은 한층 더 아름다운 선물로 우리 앞에 설지도 모르겠다.
 
스마트폰 그림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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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미옥 홍미옥 스마트폰 그림작가 필진

[홍미옥의 모바일 그림 세상] 둘도 없는 친구인 스마트폰과 함께 세상 이야기를 그리는 중년 주부.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 중년도 아직 늦지 않았음을 그림을 통해 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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