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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 논설위원이 간다] “만성질환 피해 줄인다” vs “플랫폼에 종속 불 보듯”

중앙일보 2020.05.25 00:37 종합 25면 지면보기

원격의료 찬반 목소리를 듣다

코로나19로 세상이 달라졌다. 한국에 원격의료가 도입된 것도 변화 중 하나다. 2월 말부터 최근까지 약 30만 건의 전화 진단·처방이 이뤄졌다. 주기적으로 병원에 가는 만성질환 환자들이 코로나19 감염 우려 때문에 원격 처방을 받은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한시적 조치 덕인데, 정부는 내친김에 본격적인 원격의료 도입에 대한 운을 띄웠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취임 3주년 연설에서 “의료·교육·유통 등에서 비대면 산업을 집중 육성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비대면 의료’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의료계는 이것을 전화와 인터넷을 이용한 ‘원격의료’와 다르지 않은 것으로 이해한다. 문 대통령 연설 이후 관료들이 원격의료 효과성을 잇달아 거론했다. 동시에 의료계에서는 반대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윤건호 가톨릭대 대학원장
“당뇨·고혈압 등 수시·밀착 관리로
중증질환으로 이어지는 것 막아”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
“의사 연결해 주는 플랫폼 생겨나
의료계가 홍보에 매달리게 될 것”

대표적 원격의료 찬성론자인 윤건호 가톨릭대 대학원장. 윤 원장은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산하 디지털헬스케어 특별위원회 위원장이다. [중앙포토]

대표적 원격의료 찬성론자인 윤건호 가톨릭대 대학원장. 윤 원장은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산하 디지털헬스케어 특별위원회 위원장이다. [중앙포토]

윤건호(62) 가톨릭대 대학원장은 10여 년 동안 원격의료를 실시해야 한다고 역설해 왔다. 서울성모병원 내분비내과 소속 전문의인 그는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의 디지털헬스케어 특별위원회에서 위원장직을 맡고 있다. 그에게 원격의료가 왜 필요한지, 반대론에 대한 생각은 무엇인지를 물었다.
 
원격의료를 반드시 도입해야 하나.
“현실의 문제를 보자. 10년간 한국의 당뇨병 환자를 조사해 보니 1년 동안 지속해서 약을 먹은 환자가 50%가 채 되지 않는다. 병원에 오는 게 귀찮거나, 스스로 괜찮아졌다고 판단했거나, 바빠서 어쩔 수 없이 병원에 올 수 없었거나 등으로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병원에 가지 않고도 진단과 처방을 받을 수 있다면 이처럼 병을 방치하는 환자가 크게 줄어들 것이다.”
 
만성질환 치료·관리에 원격의료가 특히 필요하다는 이야기인가.
“우리나라에서 만성질환에 따른 합병증으로 중증질환을 갖게 된 5%의 환자에게 국가 전체 의료비의 약 50%가 쓰인다. 당뇨병·고혈압·고지혈증 등을 앓다가 뇌·심장·혈관·신장 등의 중병으로 이어진 경우다. 평소에 만성질환을 잘 관리했다면 그중 상당 부분을 막을 수 있었다. 막대한 의료비 투입도 문제지만 환자들의 삶의 질 측면에서도 안타까운 일이다.”
 
병원에 가지 않고도 진단과 처방을 받을 수 있게 하면 만성질환 관리가 더 잘 된다는 것인가.
“원격의료를 말하면 병원에 가지 않고 처방전 받는 것을 먼저 떠올리는데 그게 핵심이 아니다. 환자를 지속적으로 관리한다는 게 요체다. 내가 실험적으로 환자들이 스스로 혈당을 체크해 내게 원격으로 보내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환자가 쓰는 혈당 측정기가 자동으로 그의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수치를 보내고, 환자가 그 앱을 통해 내게 보낸다. 나는 그것만 봐도 관리가 잘 되고 있는지, 문제가 생겼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다. 관찰하다가 이상 현상이 눈에 보이면 그 앱을 통해 조언하고 병원으로 오라고 하기도 한다.”
 
현행 의료법에 그런 원격 상담은 진료비를 받을 수 없게 돼 있지 않나.
“그 시스템은 병원(서울성모병원)의 지원을 받아 내가 만들었고, 이를 통한 환자 관리에는 돈을 받지 않는다. 원격의료가 도입되면 이런 ‘코칭’ 부분에 대한 의료비 지급도 건강보험 체계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원격의료가 도입되면

원격의료가 도입되면

 
원격의료에 국한된 게 아니라 총체적인 디지털 건강 관리의 개념을 이야기한다는 느낌이 든다.
“큰 틀에서 볼 필요가 있다. 만성질환자에게는 약뿐 아니라 음식과 운동도 중요하다. 의사가 그걸 일일이 체크하고 관리할 수는 없다. 의사, 운동 전문가, 영양사가 협업하며 환자를 관리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게 가야 할 길이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그런 환경을 만드는 게 어렵지 않게 됐다.”
 
개원의들은 원격의료가 도입되면 자본력을 갖춘 대형 병원으로 환자가 몰릴 것이라고 하는데.
“원격 진단·관리에 필요한 인프라를 정부가 개발해 보급해야 한다. 시스템을 갖추는 데 드는 비용 걱정을 덜어줘야 한다. 작은 병원 의사들이 이 시스템을 통해 환자의 건강을 잘 관리하면 오히려 대형 병원으로 환자를 빼앗기는 문제가 줄어들 수도 있다. 통상 병이 심해지거나 여러 병이 생기면 대학 병원으로 간다. 원격의료 체계를 통해 수시 상담이 가능해지면 동네 병원과 환자들의 마음의 거리가 줄어 환자 수와 방문 횟수가 늘어날 수도 있다.”
 
의사들이 반발하는 것은 오해 때문이라는 건가.
“정부가 신뢰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도입과 의·약 분업 실시 때 정부는 의사의 수입이 줄어들지 않도록 하겠다며 여러 보완 조치를 약속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정부가 의료인을 포함한 국민에게 잘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작업을 충분히 해야 한다.”
 
청와대 직속의 위원회(디지털헬스케어 특별위원회)의 책임자로 활동하고 있는데, 원격의료에 대한 정부 의지는 어느 정도인가.
“그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대통령의 뜻도 강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여러 부처에서 다소 서두르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차분하게 가야 한다.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밀어붙이면 안착이 어렵다.”
 
원격의료 반대에 앞장선 최 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 [중앙포토]

원격의료 반대에 앞장선 최 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 [중앙포토]

윤 원장과 같은 찬성론자들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의료계 반발은 거세다. 그 중심에 대한의사협회가 있다. 연일 정부에 날카로운 공격을 퍼붓고 있는 이 단체의 최대집(48) 회장에게 물었다.
 
격렬하게 반대하는 이유는.
“코로나19 감염 확산이라는 특별한 상황 속에서 의사들이 부분적인 원격의료 실시에 동의했다. 청와대와 정부는 그 틈을 이용해 의료계가 오랫동안 반대해 온 원격의료를 일방적으로 추진하려고 한다. 코로나19 감염 위험 노출과 환자 급감 등으로 의사들이 고통받고 있다. 이런 때에 원격의료를 이야기하는 것은 의사 등에 칼을 꽂는 것과 다르지 않다. 대다수 회원이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원격의료가 왜 문제라고 생각하나.
“의사가 환자를 대면해야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다. 환자 몸을 두드리고 만지는 것도 필요하다. 그 과정이 생략되면 불완전한 정보를 바탕으로 처방해야 한다.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위험한 일이다. 환자가 병원에 오는 일을 줄이려면 왕진을 활성화하면 된다.”
 
의료가 자본에 종속될 것이라는 주장도 하고 있는데.
“원격의료가 도입되면 몇몇 온라인 플랫폼에 병원이 종속되는 현상이 나타날 게 뻔하다. 그곳에서 병원을 검색하고, 그곳을 통해 의사와 접촉하게 되고, 병원은 그곳에 홍보하고, 의료기나 의약품도 그곳에 광고하게 될 것이다. 결국 대형 플랫폼에 병원과 의사가 모두 매달리게 된다.”
 
만성질환 환자들 관리에 원격의료가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부분적으로 그런 시스템을 도입할 수도 있겠으나 기본적 의료의 틀을 허물어선 안 된다. 원격의료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게 아니다. 어느 수준으로 어떻게 활용할지를 정부와 의료계가 머리를 맞대고 의논해야 한다. 청와대와 관련 부처들이 앞다퉈 원격의료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우리(대한의협)에게는 단 한 번도 의견을 물은 적이 없다. 지금이라도 협의체를 구성해 조사·연구부터 해야 한다. 이런 일방통행은 위험하다.”
 
정부가 ‘비대면 의료’ 확대에 대한 뜻을 철회하지 않으면.
“코로나 사태로 한시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전화 진단·처방을 중단해 달라고 이미 회원들에게 촉구했다. 정부가 강행하면 ‘총파업’도 불사할 계획이다.” 
 
윤 원장과 최 회장의 찬·반 양론에 접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윤 원장은 차분한 준비와 설득을 주문했고, 최 회장은 협의를 촉구했다. 정부는 의사들이 우려하는 부분에 대한 답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 의사들은 환자의 건강과 편익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정부가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고, 업계가 각자의 이해에만 매달려 싸우는 바람에 사라진 ‘타다’를 떠올려 보라.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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