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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퍼 치타와 조민수, 진짜 센 모녀가 온다

중앙일보 2020.05.25 00:03 종합 20면 지면보기
27일 개봉하는 영화 초미의 관심사에서 래퍼에서 배우로 변신한 ‘치타’ 김은영이 극 중 재즈 가수로서 공연하는 모습이다. [사진 레진스튜디오]

27일 개봉하는 영화 초미의 관심사에서 래퍼에서 배우로 변신한 ‘치타’ 김은영이 극 중 재즈 가수로서 공연하는 모습이다. [사진 레진스튜디오]

“가수는 한번 노래하고 내려오면 끝인데, 같은 감정으로 여러 번 촬영하는 게 낯설고 힘들었어요. 계속 할 수 있을까 했는데 하다 보니 재밌게 다가왔죠.”
 

영화 ‘초미의 관심사’ 27일 개봉
치타, 재즈가수역 맡아 배우 데뷔
“나와 주인공 싱크로율은 50%”
연인 남연우 감독 “연기에 놀라”

래퍼 치타, 아니 배우 김은영(30)의 말이다. 카리스마 넘치는 랩 가사와 무대로 이름난 그가 오는 27일 개봉하는 영화 ‘초미의 관심사’(감독 남연우)로 연기에 도전했다. 최근 연애 리얼리티쇼 ‘부러우면 지는거다’(MBC)에 함께 출연 중인 남연우(38) 감독을 2018년 이 영화 촬영을 하며 처음 만나 사귀기 시작했다.
 
19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김은영은 “치타가 있던 김은영 안에 배우 은영이가 새로 태어났다. 얘를 잘 키우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가 연기한 순덕은 ‘치타’와 닮은, 소위 ‘센 언니’다. 이태원에서 ‘블루’란 예명의 재즈 가수로 일하는 그는 어느 날 집안 돈을 몽땅 들고 사라진 여동생 유리를 찾으려 들이닥친 엄마(조민수)와 하루 동안 이태원 일대를 뒤진다.
 
“순덕과 싱크로율요? 50% 이상이죠.” 그는 “순덕이 엄마와 살던 집에서 나와 음악을 한 친구라면, 실제 저는 어릴 적 음악 한다고 부산에서 일산으로 왔다”고 설명했다. “순덕은 치타랑 좀 더 닮았고 ‘김은영’이란 사람은 엄마 캐릭터랑 더 비슷해요. 사람 챙기는 것, 이야기하는 것 좋아하고 불같은 성격요. 순덕과 엄마한테 치타와 은영이 다 있죠.”
 
그는 순덕의 라이브 공연과 녹음 아르바이트 장면에서 주제가 ‘Need Your Love’와 ‘Urr’ ‘Film’ 등 다섯 곡의 재즈풍 자작곡을 직접 부른다.
 
원래 가수를 꿈꿨다는 그는 17세에 대형버스에 치이는 큰 사고로 뇌수술을 받은 뒤 목소리가 낮고 허스키해지면서 랩으로 전향했다. “노래들을 들은 제작사 대표님이 ‘구상 중이던 영화에 들어가면 좋겠다’며 ‘아예 치타씨가 출연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죠.” 이 영화 제작사는 tvN 드라마 ‘방법’을 만든 레진스튜디오다.
 
영화에서 엄마는 가수 꿈을 포기하고 혼자 순덕 자매를 키웠다. “너는 밥 먹는 것보다 가출을 더 많이 했어.” “밥이나 해 줘봤어?” ‘센 모녀’의 대화 속에 서운함과 짠함이 툭툭 묻어난다.
 
그는 연기에 대해 “다른 언어를 하나 배웠다”고 했다. 영화에서 그가 보여준 담백한 감정 표현은 래퍼로서 무대를 장악할 때와는 또 다른 단단함으로 안정감 있게 극을 받친다.
 
영화 ‘초미의 관심사’에서 순덕(오른쪽)의 이태원 집에 엄마(조민수)가 들이닥친 첫 장면.

영화 ‘초미의 관심사’에서 순덕(오른쪽)의 이태원 집에 엄마(조민수)가 들이닥친 첫 장면.

남연우 감독은 영화 ‘가시꽃’(2013)으로 들꽃영화상 남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출신. 김은영은 “처음엔 노래할 때처럼 순덕이 이때 이런 행동·표정을 하지 않을까, 하고 감독님한테 여쭤봤는데 그렇게 얼굴과 손짓 등으로 표현하려 말고 시나리오를 많이 읽고 순덕이 마음을 찾아내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남 감독은 지난 18일 개봉 전 간담회에서 “연기란 무엇인가 20년 가까이 고민한 저보다 (김은영이)많은 순간 너무 잘해서 부끄러워지기도 했다”며 “‘이 인물이 할 법한 생각을 그 순간에 진짜 해줬으면 좋겠다’는 말밖에 안했는데 그걸 잘 해 줘서 감사하다”고 했다.
 
순덕이 객석의 엄마를 마주 보며 ‘Need Your Love’를 부를 때 김은영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났단다. 영화를 볼 때마다 자꾸 “오열하게 된다”는 장면이다.
 
“엄마가 딸을 응원하면서 앉아 있다가 그 노래를 들으며 마음이 무너지지 않았을까 싶었죠. 그런 모습 딸한테 보이기 싫어서 (밖으로) 나간 것 같거든요. 딸도 자기 앞에서 항상 강해 보여야 했던 엄마를 알고 있지 않았을까요. 우리 엄마 힘들었을 텐데, 고생 많이 한 거 불쌍해, 안됐어, 하고. 안 운 테이크도 있었는데 결국 그 복합적인 감정의 장면을 감독님이 택해주셨죠.”
 
간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와 늘 함께하고 싶어 왼팔에 양복 정갈하게 입은 아버지의 모습을 문신으로 새긴 그다. 어머니와 2년여 전부터 서울에서 같이 살게 된 이야기를 꺼냈다.
 
“10대 때 본 엄마는 강하고 누구보다 용감했는데, 지금은 그 강인함 뒤 여림이 겹쳐 보여요. 이제 ‘아, 우리 엄마가 원래 그렇게 강하기만 한 사람이 아니었겠지’싶거든요. 순덕도 그렇지 않았을까요.”
 
그가 직접 섭외했다는 드랙퀸 나나부터 문신가게 싱글맘, 게이커플, 트랜스젠더, 피부색 다른 한국 청년 등 이태원의 각양각색 캐릭터가 영화 속에서 어우러지며 모녀의 여정은 유쾌하게 흐른다.
 
“편견 그 자체를 이야기하고 싶다”는 건 뮤지션으로서, 배우로서 그가 갖는 바람이다. “(남성 중심 힙합계에서) ‘여자 래퍼’로 활동하면서 시스템적으로, 상업적으로 부딪혀온 지점들이 있었다. ‘너무 리스크 있어’ ‘안 해봤는데 안 될 것 같아’, 그런 게 다 편견이다. 그렇게 배제하니 더는 새로운 게 나오지 않는 것”이라며 “제 숏컷을 보고 처음엔 ‘너무 세보여’ 했던 이들도 이젠 ‘치타지 뭐’ 한다. 안 해보고 ‘익숙하지 않아서 안 된다’, 하며 막아온 것들을 이야기해보고 싶다”고 했다.
 
“결국 목표는 우리 모두가 잘 사는 거죠. 서로 다 이해할 필요도 없고 다 밀어낼 필요도 없고 각자 한 명, 한 명을 하나밖에 없는 가장 특별한 사람들이라고 인정해주면서 잘 어울려 살았으면 좋겠어요. 어느날 제가 페미니즘, 성소수자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죠. 사람들이 낯설고 불편해하는 주제들을 계속 살살 많이 노출시킨다면 언젠가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지 않을까요.”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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