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잠행 22일만에 돌아온 김정은···美 보란듯 '핵 카드' 꺼냈다

중앙일보 2020.05.24 12:22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재잠행 22일 만에 '군사 카드'를 들고 다시 공개 활동에 나섰다. 북한 매체들은 김 위원장이 당 중앙군사위원회 7기 4차 확대 회의를 열고 핵전쟁 억제력을 강화하고 무력기구의 편제를 개편하는 방안을 논의를 했다고 24일 전했다. 또 미사일 개발 분야의 핵심 인물인 이병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군수공업부장이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으로 선출하고, 총참모장인 박정천을 군 차수로 승진하는 등 군 장성급 인사도 했다. 북한 매체는 ‘확대 회의’가 언제, 어디에서 열렸는지, 무력기구의 편제를 어떤 식으로 바꿨는지를 밝히지는 않았다.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주재한 가운데 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4차 확대회의를 열었다고 북한매체들이 24일 보도했다. 이번 회의에서는 당 중앙군사위 인사도 단행됐다. 김 위원장은 새로운 군사대책 명령서 등 7건의 명령서에 서명했다. 왼쪽부터 최부일 당 부장, 이병철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김수길 총정치국장, 박정천 총참모장 , 정경택 국가보위상이 문서에 서명하는 김정은 위원장을 보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주재한 가운데 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4차 확대회의를 열었다고 북한매체들이 24일 보도했다. 이번 회의에서는 당 중앙군사위 인사도 단행됐다. 김 위원장은 새로운 군사대책 명령서 등 7건의 명령서에 서명했다. 왼쪽부터 최부일 당 부장, 이병철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김수길 총정치국장, 박정천 총참모장 , 정경택 국가보위상이 문서에 서명하는 김정은 위원장을 보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김정은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 열어 "핵능력 강화"
지난 1일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 참석뒤 등장
국방 조직 재편, 박정천 등 대대적인 군인사 단행
"군 중심의 대내 결속 강화하고, 미국에 대한 메시지"

노동신문 등 북한 관영 매체가 김 위원장의 활동 소식을 보도한 건 지난 1일 평남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 참석(보도일 2일) 이후 22일 만이다. 김 위원장은 비료공장 준공식 참석 이후 다시 공개활동을 중단했는데, 이번 22일간 공개활동 중단은 1월 25일 이후 22일간 모습을 감췄을 때와 함께 올해 들어 최장기 미식별 기간이다. 김 위원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이 중국에서 확산하자 지난 1월 25일 설명절 음악회 참석 이후 2월 16일 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일 기념 참배 때까지 공개활동을 중단한 바 있다.  
 
북한 매체는 이날 “회의에는 중앙군사위 관계자와 국가보위성, 인민보안성, 호위사령부 및 당 주요부서 부부장이 참석했다”며 “국가방위력과 전쟁억제력, 무장력을 비약시키기 위한 군사적 대책, 조직문제를 논의하고 불합리한 기구와 편제 조정, 새로운 부대를 조직ㆍ편성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북한은 “나라의 핵전쟁억제력을 더한층 강화하고 전략 무력을 고도의 격동상태에서 운영하기 위한 새로운 방침들이 제시되었다”며 “포병의 화력 타격 능력을 결정적으로 높이는 중대한 조치들이 취해졌다”고 했다. 중요한 결단의 순간을 앞두고 공개활동을 중단하는 패턴을 보였던 김 위원장이 장고(長考) 끝에 군사카드를 들고나온 셈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7기 4차 중앙군사위 확대회의를 주재한 사실을 보도한 노동신문 24일자 1면[사진 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7기 4차 중앙군사위 확대회의를 주재한 사실을 보도한 노동신문 24일자 1면[사진 뉴스1]

 
이번 회의는 미국과의 핵 협상이 장기간 교착 상태에 있는 가운데 코로나 19로 인한 봉쇄로 인해 군을 중심으로 한 내부 결속 강화와 주변 위협 강화 차원으로 풀이된다.  
 
무엇보다 지난해 정면돌파전을 주장했던 김 위원장이 군사카드를 꺼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전직 정부 고위 당국자는 “김 위원장은 북ㆍ미 협상이 여의치 않자 지난해 연말 ‘미국과의 협상은 장기전이 될 것’이라며 자력갱생을 통한 정면돌파전을 제시했다”며 “그러나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코로나 19로 이마저도 어렵게 되면서 군사 중심의 국정운영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각종 자원 부족으로 경제 분야에서 구체적인 성과가 나타나기 어렵게 되자 경제는 내각 총리에 일임하고 자신은 신무기 개발을 통한 국방력 강화를 과시하려는 차원일 수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7기 4차 중앙군사위 확대회의에서 지휘봉을 들고 설명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7기 4차 중앙군사위 확대회의에서 지휘봉을 들고 설명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실제 5월 들어 김 위원장은 일체의 민생 챙기기를 보이지 않은 채 김재룡 내각 총리와 박봉주 국무위 부위원장에게 맡기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이날 회의에서 대형 TV에 군사자료로 추정되는 자료(모자이크 처리)를 띄운 뒤 지휘봉을 들고 회의 참석자들을 향해 설명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포병 출신의 박정천 총참모장을 차수로 승진시킨 것 역시 대구경 방사포의 실전 배치 등 ‘가시적’ 조치를 염두에 둔 차원일 수 있다.  
 
지난 12월 이후 5개월여 만에 군사위원회 회의를 개최한 사실을 공개한 건 ‘미국용’을 염두에 뒀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8일과 9일(북한 매체 보도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각각 코로나 19 승리 축하 구두 친서와 제2차 세계대전 승전 75주년 축하전문을 보냈다. 코로나 19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보란 듯이’ 북방 삼각관계를 강화하는 모양새를 연출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포병 출신의 박정천 총참모장을 차수(왕별)로 승진시키고, 미국이 우려하는 ‘핵’과 ‘전략 무력을 고도의 격동상태에서 운영’이라는 언급을 한 건 미국이 양보하지 않으면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위협용일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양무진 북한 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미ㆍ중간 신냉전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미국 대선이 열리는) 연말까지 북ㆍ미협상의 유동성이 예상되자 군사 분야에서 논의과정이 필요했을 것”이라며 “2년 만에 등장한 ‘핵 억제력 강화’라는 표현은 대미압박 차원의 메시지로 우려되는 부분”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은 그동안 '핵억제력'을 자신들의 핵개발, 즉 핵무기 개발의 명분으로 여겨왔다. 따라서 북한이 향후 핵무기를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이나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 개발 가속화로 이어갈 가능성도 제기된다.
 
북한이 이날 회의에서 최근 상황을 “관건적인 시기에 조성된 대외정세”라고 판단한 것도 엄중한 상황을 군사적으로 돌파하겠다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한 부분이다. 단, 김 위원장은 과거 핵실험이나 장거리미사일(ICBM) 등을 발사를 통해 잠행을 끝내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번에는 ‘군사회의’라는 수단을 동원한 건 나름 수위를 조절했다는 평가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