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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라드 칼럼] 다시 안 보이는 김정은

중앙일보 2020.05.24 00:04 종합 29면 지면보기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순천 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해 테이프를 끊으면서 그의 잠적 논란이 잦아들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4월 15일 태양절 참배에 불참한 이유는 모른다. 그리고 그는 비료공장 준공식 이후 다시 두문불출이다. 김 위원장이 준공식 참석으로 잠적을 끝냈다기보다는 4월 11일부터 현재까지 거의 5주간 지속한 잠적 기간에 단 한 번 모습을 드러냈다고 보는 편이 맞을 듯하다.
 

비료 공장 준공식 뒤 두문불출
시진핑·푸틴에겐 메시지 전달

김 위원장이 올해 초반 공식적 자리에서 모습을 드러낸 횟수는 지난해 같은 시기와 비교하면 훨씬 적다. 그뿐만 북한 미디어에서 김 위원장에 대해 보도하는 비중도 현저히 줄었다. 올 5월 현재까지 조선중앙통신에서 김 위원장에 대해 보도한 횟수는 지난해와 2018년 5월까지에 비해 3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다.
 
순천에서 모습을 드러낸 김 위원장이 평양으로 돌아갔다는 보도도 없다. 원산 별장 인근을 찍은 위성사진에 그의 방문 흔적이 포착된 것을 볼 때, 4월 11일 정치국 회의와 5월 1일 비료공장 준공식 사이의 기간에 그는 원산 별장에 체류한 듯하다. 그 이후에도 평양 밖에 머물고 있을지도 모른다.
 
5월 8일과 9일에는 김 위원장 명의로 시진핑 주석과 푸틴 대통령에게 메시지가 전달됐다. 이는 김 위원장이 병 때문에 위중한 상태는 아니라는 것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지난달에 필자는 김 위원장이 직함은 유지하지만 실질적인 권력에서 밀려나 온전히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고 썼다. 이 가설은 현재 우리가 아는 정보와 조화를 이룬다. 다른 인물이 권력을 잡았을 경우 북한 공식 매체에서 명목상의 지도자로 추락한 김 위원장에 대한 언급을 줄이고 태양절 참배를 저지함으로써 김씨 일가의 특권을 감소시키려 할 수 있다. 이 가설이 현실에 부합한다면 김 위원장의 비료공장 방문은 그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증명하는 것에 불과한 일이다.  
 
만약 이 가설이 참이라면 과연 누가 권력을 차지했을까? 북한은 지극히 관료주의적인 사회이기 때문에 고위 간부들은 규율을 중시한다. 북한 노동당 규약에 따르면 정치권력은 중앙위원회에 귀속된다. 중앙위원회는 민주주의 중앙집권제 원칙(제11조)에 따라 정치국의 지배를 받고, 정치국은 상무위원회의 지배를 따른다. 상무위원은 김정은 국방위원장, 최용해(명목상의 국가수반), 박봉주 전 내각 총리 등 세 명뿐이다. 따라서 김 위원장이 실권했을 경우 권력은 두 상무위원에게 쥐어진다. 공식적으로 공개된 4월 15일 태양절 참배 사진을 보면 노동당 규약은 여전히 지켜지고 있다. 김 위원장 자리는 최용해가 대신 메웠고, 그 옆에 박봉주가 섰다.
 
최용해는 4월 15일 이후 김 위원장보다도 더욱 철저하게 사라진 듯하다. 그는 순천 영상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박봉주는 81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활발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노동신문에 따르면 박봉주는 비료공장 준공식에서 연설했고, 5월 11일에는 함경도를 시찰했다. 박봉주는 경제 개혁과 관련이 깊은 인물이다. 따라서 누군가가 김 위원장에게서 권력을 빼앗았다면 그는 개혁파 쪽일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필자의 가설은 김 위원장이 모종의 수술을 받았다는 가설과 반드시 충돌하지는 않는다. 위원장이 실제로 수술을 받았고, 그 사이에 권력을 대행한 인물이 이를 돌려주는 대신 그의 평양 귀환을 저지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게 맞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북한의 동향을 계속 지켜보면서 최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뭔가 수상하다는 점이다.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 대사 
 
※ 위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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