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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머리 맞댄 노사정, 시선을 오직 국민에 두라

중앙선데이 2020.05.23 00:21 687호 30면 지면보기
모처럼 노사정이 머리를 맞댔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증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표자 회의’가 그제 출범했다. 양대 노총과 기업을 대표하는 대한상공회의소·한국경영자총협회, 그리고 정부가 참여하는 협의체다.
 

위기 극복에 필요한 건 요구 아닌 양보
노동계는 바세나르 협약 정신 되새기고
재계는 사람 아낀 구본무 회장 돌아보길

대표자 회의 출범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공식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있건만, 조직을 박차고 나간 민주노총이 별도의 협의체를 요구했다. 경사노위를 지키던 한국노총은 반발했다. 한 달여 줄다리기 끝에 협의체가 닻을 올렸다. 무조건 만나야 할 만큼 상황이 급박했다. 올해 1분기 한국 경제는 -1.4% 역성장했다. 2분기는 더 암울하다. 지난달엔 일자리 47만6000개가 증발했다. 일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쉬고 있는 일시 휴직자까지 합치면, 일거리를 잃은 국민이 무려 160만 명에 달한다. 특히 임시·일용직이 많은 저소득층의 타격이 컸다. 근로소득이 줄어 그러지 않아도 어려운 살림에 빚까지 내는 형편이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아직 한국 경제는 끝 모를 터널 속에 있다. 미국과 유럽, 신흥국 들이 잇따라 코로나19에 무너지며 이달 들어 수출이 20% 감소했다. 산업과 경제에 파급효과가 막대한 자동차 수출은 반토막 났다. 버텨오던 기업들이 흔들릴 판이다. 자칫 고용 재앙이 닥칠 수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제 기업인들을 만나 “기업과 정부가 정말로 한배를 탄 심정으로 ‘으쌰으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정부가 온갖 수단을 동원해 기업을 지원하겠다고 나선 이유다. 여기에 미국은 “탈(脫) 중국 경제 블록에 동참하라”고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 한국은 위기 속에서 딜레마에까지 맞닥뜨렸다.
 
이런 상황을 헤쳐가고자 외환위기 이후 22년 만에 노사정이 모였다. 핵심 소명은 가계 소득의 근간인 일자리 지키기다. 이를 이뤄내려면 협의 자세를 바꿔야 한다. 그간 노사는 만나면 서로 요구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지금 같은 위기 상황에서 요구를 잔뜩 늘어놓는 것은 판을 깨는 처사다. 필요한 건 고통을 나누기 위한 양보다.
 
모델이 있다. 1982년 네덜란드 경제를 수렁에서 건져 올린 바세나르 협약이다. 당시도 핵심은 일자리였다. 노동자 측 대표였던 빔 코크 네덜란드 노조총연맹위원장은 임금인상을 자제하는 것은 물론, 실업급여를 받는 기간을 줄이는 등의 방안까지 받아들였다. 조합원들로부터 “배신자”라는 비난을 받았으나 협약을 바탕으로 네덜란드 경제는 재도약했고, 빔 코크는 국민의 지지를 받아 훗날 총리가 됐다.
 
노측은 조합원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 경제를 살리기 위해 모인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정세균 총리도 첫 회의에서 “시선을 두어야 할 곳은 조직 내부가 아니고 오로지 국민”이라고 했다. 재계는 지난 20일로 2주기를 맞은 고(故) 구본무 LG 회장의 정신을 되새겨 보라. 금융위기 때 일부 경영진이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꺼내자 구 회장은 “어려울 때 사람 내보내는 것 아니다”라며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런 정신이 이어져 LG전자는 경북 구미 공장의 TV 생산라인을 인도네시아로 옮기면서도 감원 없이 모든 직원을 전환 배치하기로 했다.
 
한국은 보건 측면에서 코로나의 위협을 그 어느 나라보다 빨리 이겨내고 있다. 국민은 양보와 배려의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불편함을 감수하며 방역 수칙을 철저히 지켰고, 의료진들은 국민을 위해 헌신했다. 위대한 우리 국민은 이번 경제 위기도 똘똘 뭉쳐 넘길 수 있다. 이젠 노사 대표들이 헌신하고 양보를 할 차례다. 정 총리의 당부대로 시선을 오로지 국민에 두라. 부디 이번 노사정 회의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까지 대비한 한국판 바세나르 협약으로 결실 맺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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