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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취하는 자본가 대신 ‘자본주의자’가 많아져야

중앙선데이 2020.05.23 00:20 687호 22면 지면보기

[큰 생각을 위한 작은 책] 루트비히 폰 미제스 『반자본주의적 사고방식』

네덜란드 화가 크리스티안 크로그(1852~1925)가 그린 ‘생존을 위한 투쟁’을 잉크 번짐 효과로 표현했다. [사진 노르웨이 내셔널 갤러리]

네덜란드 화가 크리스티안 크로그(1852~1925)가 그린 ‘생존을 위한 투쟁’을 잉크 번짐 효과로 표현했다. [사진 노르웨이 내셔널 갤러리]

영어 ‘capitalist(캐피털리스트)’는 우리말로 두 가지로 번역된다. 첫째는 자본가다. (자본가는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노동자를 착취하는 악인, 돈밖에 모르는 나쁜 인간, 배불뚝이 이미지가 강한 것도 사실이다. 과연 그런지에 대해 냉혹하고도 엄밀한 사회과학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현실 속 자본가는 많이 억울할 것 같기도 하다.)
 

『국부론』 못잖은 자본주의 핵심 문헌
경제학자로서 ‘소비자의 힘’도 믿어

지식인이 자본주의 꺼리는 이유 분석
‘이코노미스트’ 공격으로 가치 껑충

둘째, ‘자본주의자’다. 국립국어원의 정의에 따르면 자본주의자는 “자본주의를 따르거나 주장하는 사람”이다. 우리에게 ‘자본가’는 익숙해도 ‘자본주의자’는 좀 낯설다. (감히 주장한다면, ‘통일 대한민국’의 성공 여부는 자본가의 역량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자가 대폭 늘어나는데 달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중국과 베트남은 소위 ‘사회주의 방식’으로 자본주의를 수용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일단 서구식 의미의 다당제 민주주의는 유보한 것 같다. 충분히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유보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모든 나라는 시간과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아시아에서 민주주의의 장점을 체험한 대한민국·일본·대만은 다당제 민주주의의 성과를 동아시아 전 지역에 유포하고 싶은 열망을 가라앉히기 힘들 것이다.)
  
중국, 사회주의 방식으로 자본주의 수용
 
『반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의 영문판 표지.

『반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의 영문판 표지.

19세기 미국에서나 21세기 한국에서나 자본주의 수용이 성공하려면 우선 자본주의자가 많아져야 한다. 얄궂게도 중국과 베트남에 한국보다 ‘자본주의자’가 더 많은지도 모른다.
 
루트비히 폰 미제스의 『반(反)자본주의적 사고방식(The Anti-Capitalistic Mentality)』은 1956년에 나온 책이지만, 21세기 한반도 상황에서 깊고도 넓고도 강렬한 영감을 준다. (『자본주의 정신과 반자본주의 심리』(1988)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김진현 번역본은 현재 절판 상태다) 영문판은 아마존에서 주문할 수도 있고 ‘루트비히 폰 미제스 연구원(mises.org)’에서 무료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반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이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못지않게 자본주의의 핵심 문헌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동시에 추구하는 나라다. 통일 대한민국도 결국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국시가 될 가능성이 크다.
 
『반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은 오늘의 이 시대 상황과 좀 어긋날 수도 있다. 오늘의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그렇다.
 
미제스는 1881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태어나 1973년 미국 뉴욕에서 사망했다. 그는 오스트리아학파의 거두로 대표적인 자유경제 지상주의자다. 『반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은 시장경제에 반대하는 기류가 곳곳에 퍼져있음을 안타까워했기 때문에 탄생했다. 『반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은 자본주의가 수많은 사람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했으나 또 많은 지식인이나 예술인들이 자본주의를 싫어하는 이유를 분석했다. 사회적·심리적 이유를 치밀하게 열거했다. 미제스는 반자본주의 심리가 나타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기회가 주어지지만, 실제 성공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성과를 올리지 못한 사람이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변명하기 위해 속죄양을 찾는 경향이 있다.’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사람은 이런 이유로 자본주의를 잘못된 체제로 본다.  
 
루트비히 폰 미제스. [사진 루트비히 폰 미제스 연구원]

루트비히 폰 미제스. [사진 루트비히 폰 미제스 연구원]

미제스는 이런 생각이 잘못됐다고 일갈한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성공하고 부자가 될 기회가 누구에게나 주어진다”라고 강조했다. 세계 자본주의의 명품 매체인 이코노미스트가 이 책을 맹공했다. 그래서 미제스와 이코노미스트의 위상이 동반 상승했다고 볼 수도 있다.
 
책 내용은 상당히 상식적이기도 하고 충격적이기도 하다. 어쩌면 상식성과 충격성을 동시에 만족하게 하는 책이 스테디셀러다.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자유기업 정신과 개인의 창의성을 발휘하는 길에 장애물을 덜 설치하려고 노력한 나라일수록 더 번영하고 있다. 창의와 혁신이 가능한 자본주의가 인류에 풍요와 번영을 가져다준다.’  
 
그는 사회주의 제도에는 가격기구에 의한 합리성이 없으므로 사회주의 계획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경제학자로서 그는 자본 못지않게 ‘소비자의 힘’을 믿었다. 이 믿음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기업은 소비자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시장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는 명제로 이어진다.
  
여야 모두에 필요한 필독서
 
미제스는 국가의 인허가 등 시장 진입을 가로막는 법적 장애물이 없다면 ‘독점’을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시장경제는 경제력 남용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책은 영문판 기준으로 112페이지에 불과하다. 하지만 세계가 왜 자본주의로 갈 수밖에 없는지 설명하는 책이다. 미제스는 진실이라 확신하는 원칙과 관련해서는 타협과 양보를 하지 않았다. 오늘날 자유주의 이념이 살아있는 건 미제스의 이런 단단한 생각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은 한국 정치권의 여야 모두에 필요한 필독서다. ‘뜨거운 감자(hot potato)’ 같은 책이지만 여야 모두 자본주의를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경제적 활동은 합리적인 행동"
루트비히 폰 미제스에게는 20세기 최고의 경제학자라는 영광이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이론의 입증은 그 이론을 누가 후원하느냐가 아니라 그 이론의 추론(推論)에 달렸다.” 『화폐와 신용의 이론』(1912)
 
-“모든 합리적 행동은 경제적이다. 모든 경제적 활동은 합리적인 행동이다. 모든 합리적인 행동은 일차적으로 개인적인 행동이다. 생각하는 것은 오로지 개인이다.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오로지 개인이다. 행동하는 것은 오로지 개인이다.” 『사회주의』(1922)
 
-“모든 복지국가와 계획의 옹호자는 잠재적으로 독재자다.” 『에필로그』(1947)
 
-“진리의 기준은 그것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아무도 그 사실을 인정할 준비가 안 되어 있더라도 말이다.” 『경제과학의 궁극적 기초』(1962)
 
-“종교의 영역에서, 사람들이 오로지 한가지 계획만을 채택해야 한다는 생각에 헌신했을 때 그 결과는 유혈 전쟁이었다.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자 전쟁은 멈췄다.”  『에필로그』 (1947)
 
김환영 대기자 / 중앙콘텐트랩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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