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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7년 전 제주 해안서 표류 하멜 일행, 와인이 구세주였다

중앙선데이 2020.05.23 00:02 687호 24면 지면보기

와글와글

일러스트=전유리 jeon.yuri1@joins.com

일러스트=전유리 jeon.yuri1@joins.com

와인은 서양 문화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일상의 중심이기도 하다. ‘와글와글’은 와인과 글의 만남이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이후 더욱 소중해진 일상을 인문학을 통해 재발견하고자 한다. 
 

한반도 첫 와인 기록 『하멜 표류기』
“포도주, 부상 선원들에게 매우 유용
조선인들 맛을 보더니 기분 좋아져”

와인 언급한 이기지 『일암연기』
1720년 베이징 가서 맛 보고 기록
“맛 상쾌해 신선의 음료보다 낫다”

강풍을 만나 표류하던 오디세우스에게 바다의 요정 칼립소가 건넨 것은 포도주였다. 대리석같이 매끄러운 몸매를 자랑하던 또 다른 요정 키르케가 오디세우스에게 나눠준 것 역시 붉은색 포도주였다. 서양 최고의 고전 『오디세이아』에서 호메로스는 와인을 난파당한 자에게 건네는 생명수로 묘사하고 있다.  
 
살다 보면 느닷없는 강풍을 만나 속절없이 고꾸라지는 수가 있고, 그럴 때일수록 당황하거나 투덜거리지 말고 와인 한잔 음미하며 지혜를 구하라는 뜻일까?
  
『오디세이아』 와인을 생명수로 묘사
 
한반도 최초의 와인 역시 태풍과 함께 왔다. 1653년 8월 일본 나가사키로 향하던 네덜란드 선박 스페르베르호는 제주도 해안에 내동댕이쳐진다. 승무원 64명 가운데 살아남은 36명 중 한 명이 『하멜 표류기』로 유명한 헨드릭 하멜이다. 난파당한 배 안에서 그들은 밀가루 한 포대, 베이컨 한 통과 더불어 스페인제 붉은 포도주를 찾아냈다. “포도주는 부상당한 선원들에게 매우 유용했다”고 하멜은 적고 있다.   대항해 시대 네덜란드 선원들의 생명을 구한 것은 흔히 ‘고다 치즈’로 알려진 고단백 ‘하우더 치즈’ 그리고 포도주였다. 언어가 통하지 않고 생명의 위협에 노출돼 있던 하멜 일행을 구한 것 역시 와인이었다. 8월 19일 하멜은 이렇게 적고 있다.
 
“한 통의 붉은 포도주를 들고 가서 우리가 바위틈에서 발견한 회사용 은술잔에 술을 따랐다. 그들은 포도주를 맛보더니 좋은지 연거푸 술잔을 기울였는데 나중에는 대단히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았다.” 한반도 최초의 와인 기록이다. ‘효종실록’에 따르면 당시 행정책임자는 제주목사 이원진이며 그가 급히 현장에 파견한 지휘관은 대정현감 권극중과 판관 노정이었다.  
 
전남 강진군 하멜기념관에 있는 하멜 동상. [중앙포토]

전남 강진군 하멜기념관에 있는 하멜 동상. [중앙포토]

하멜의 기록과 달리 아쉽게도 실록을 비롯해 조선의 기록에는 와인 관련 언급은 전혀 없지만, 이런 정황을 두루 고려해 볼 때 최초로 와인을 마신 영예의 주인공은 권극중과 노정, 두 사람으로 추정된다. 언어가 통하지 않던 상황 속에서 와인은 중요한 소통 수단이었으며 덕분에 하멜 일행은 광해군의 제주 유배지로 숙소를 옮기는 특혜까지 누리게 된다.
 
하멜은 17세기의 오디세우스였다. 칼립소의 매력과 주술에 포박돼 7년의 세월을 그녀와 함께 있어야 했던 오디세우스의 운명보다 두 배 가까운 긴 시간인 13년 28일 동안 하멜은 조선 땅에 억류돼 있어야 했다. 한국어에 가장 능통했다는 마테우스 에보켄의 증언에 따르면 하멜 일행 가운데 일부는 조선 여성과 살림을 차렸던 듯싶다.
 
그렇다면 최초로 와인을 기록한 한국인은 누구였을까? 300년 전의 베이징 여행자 이기지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남당(南堂)을 비롯한 베이징의 가톨릭교회를 일곱 번이나 방문하고 세 번이나 서양선교사들의 답방을 받아 천문지리와 과학을 논하게 되는데 그 자리에서 와인을 수차례 접하게 된다. 1720년 10월10일 일기에는 “포도주 색이 검붉고 맛은 매우 방열(芳烈)하여 상쾌하다”고 적고 있다. 향기가 매우 짙다는 뜻이다. 그의 와인 체험은 계속된다.
 
“포도주 세 잔을 내왔는데 지난번에 마신 것보다 맛이 더 좋았다. 나는 연거푸 두 잔을 마셨을 뿐인데도 많이 취했다. 입에 들어갈 때는 상쾌하고 목으로 넘어갈 때는 부드러워 그 맛을 형언할 수 없었다. 선인(仙人)의 음료라 하더라도 이보다 낫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리하여 이기지는 해외에서 서양와인을 체험한 첫 번째 조선인이며 최초의 와인 시음기와 제조법을 남긴 주인공이 된다. 앞서 9월 27일의 일기도 눈에 뜨인다.
 
“식사를 대접하려고 하기에 이미 먹었다고 사양하니 서양떡 30개를 내왔다. 그 모양이 우리나라의 박계와 비슷했는데, 부드럽고 달았으며 입에 들어가자마자 녹았으니 참으로 기이한 맛이었다. 만드는 방법을 묻자, 사탕과 계란, 밀가루로 만든다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서양떡이란 무엇일까? 그의 기록과 베이징에서 만났던 다양한 국적의 서양 신부들 가운데 소림(蘇霖)이라 적고 있는 조셉 수아레즈 등 포르투갈 신부들이 있었던 점 등을 보려해 볼 때 그것은 카스텔라의 한 종류로 추정된다.  
  
하멜, 13년간 조선 땅에서 억류 생활
 
이기지는 소림을 통해 포도주 만드는 레시피와 서양 고약의 사용 방법을 알아내기도 한다. 반면 그는 서양의 신부들에게 조선의 종이와 약과, 전복 등과 함께 조선 시루떡 두 찬합을 만들어 답례로 건넨다. 역사의 진귀한 한 페이지이며, 이름처럼 기지 넘치는 답례방식이 아닐 수 없다.
 
열려 있으면서도 당당하고 자존심을 지키면서도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겸손한 마음이 살아 있다. 이기지에게 천주당과 서양 신부들은 종교보다는 서양 문화와 과학을 이해하는 관문이었듯이, 와인은 자유와 지식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는 통로였다.  
 
이기지가 귀국해 남긴 『일암연기』는 18세기 조선사회에 그랜드투어와 문체혁명의 바람을 일으킨다. 명나라와 청나라 두 시대에 걸쳐 약 800여 차례 베이징을 오가는 사행을 다녀와 남긴 기록을 가리켜 조천록(朝天錄) 또는 연행록(燕行錄)이라 부르며 현재까지 전해지는 기록은 100여 종이다. 그의 여행기는 조용하던 조선 지식인들에게 큰 자극을 주었으며 60년 뒤의 또 다른 여행자 연암 박지원으로 하여금 『열하일기』를 쓰게 만든다. 와인과 글이 만나 혁신적 사고가 탄생하니, ‘와글와글 인문학’의 출발이라고 할까?
 
손관승 인문여행작가 ceonomad@gmail.com
MBC 베를린특파원과 iMBC 대표이사를 지낸 인문여행 작가. 『괴테와 함께한 이탈리아 여행』, 『me,베를린에서 나를 만났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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