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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21대 국회에 바란다

중앙일보 2020.05.22 00:37 종합 31면 지면보기
박원호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박원호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의회의 역할과 관련된 정치학의 해묵은 논쟁 하나를 꼽는다면 그것은 국민의 대표인 의원이 과연 국민의 대리인(delegate)인지 수탁인(trustee)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일 것이다. 의원이 만약 국민의 단순한 대리인이라면 그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을 뽑아준 지역구민의 의견과 이해를 단순히 대변만 해야 할 것이며, 반대로 그가 만약 국민으로부터 전반적인 권한을 위임받은 수탁인이라면 자신의 경험과 양심을 다하여 국가 전체의 안녕과 이해를 위해 판단하고 표결해야 할 것이다.
 

코로나와의 전쟁을 수행할
21대는 ‘전시 국회’에 필적
시민들 일상 회복이야말로
전쟁에서의 진정한 승리

일견 간단해 보이는 문제 같지만, 대리인과 수탁인의 대립항에 국회의원들이 직접 맡게 될 구체적 역할을 대입해보면 그리 단순하지는 않다. 예컨대, 중앙정부로부터 쪽지 예산을 따내고 동네에 새로 다리를 개통하면서 “지역경제 활성화”만 줄기차게 부르짖는 의원이 있다고 하자. 누구나 이러한 지역구의 단세포적인 “대리인”을 비난하고 공격할 수는 있겠지만 그가 바로 당신의 지역구에서 선출된 의원이라면 다른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더 큰 딜레마는, 재선과 삼선에 성공하는 것은 결국 그런 부정적인 기사가 방송과 언론에 한 줄이라도 더 많이 나간 이런 “대리인”들의 차지가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누구나 비난하기 좋아하는 비례대표의 장점이 오히려 명백해진다.
 
반대로, 국가의 장기적이고 균형된 발전을 고민하면서 자신의 역량과 양심과 비전에 따라 위임받은 입법·예산 등의 권한을 알아서 행사하겠다는 “수탁인”이 미덥지 않은 것도 매한가지다. 선출된 ‘의원님’의 역량과 양심과 비전을 애초에 믿을 수 없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며, 특히나 그 역량과 양심과 비전을 크게 좌우하는 것이 만약 당론(黨論)이라면, 차라리 지역구민의 눈치를 살피는 의원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애초, 지역구민들이 동네 다리를 놓는 것에는 의견이 일치할지언정 외교·통상에 대한 일치된 견해가 없다면 결국 의원들이 수행할 수탁인의 역할 또한 막을 길이 없다.
 
이상과 같은 토론을 통해 우리는 몇 가지 비관적인 사실들을 직면하게 된다. 첫째, 의원들은 애초 대리인과 수탁인이라는, 혹은 부분과 전체라는, 혹은 장기와 단기라는 여러 길항관계들을 동시에 고려하고 대변해야 하는 상당히 모순된 역할을 부여받았다. 둘째, 의원들은 이 중 어느 한 가지 역할만을 선택적으로 수행할 수는 없으며, 그 경우에는 의원 개인의 파멸이나 나라의 파멸, 혹은 양자의 동시적 파멸이 기다리고 있을 따름이다. 셋째, 대의(代議)의 어려움, 의회라는 과정의 지난함은 결국 이런 불가능한 밸런스를 찾아나가는데 있으며, 정치의 근원적 비극이야말로 이 불가능한 과정을 포기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제21대 국회는 이러한 어려움에 더하여,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수행해야 하는 ‘전시(戰時)국회’라는 의미 또한 지니면서 개원하게 된다는 말에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눈에 보이는 외부의 적이 있고 뚜렷한 전선(戰線)이 형성되어 있는 전시 상황이라면, 국회가 어떤 일을 해야 할지는 비교적 분명하다. 시민들의 지역적이고 단기적 이해관계는 잠시 유보될 수 있을 것이며, 의원들은 나라의 근본적인 존속을 위한 보다 시급한 문제들을 고민할 ‘수탁인’의 역할을 열심히 수행해야 할 것이다. 온 국민의 생활과 잠재의식에까지 파고든 바이러스와, 가라앉을 것이 확실한 경제와, 뿌리부터 흔들리면서 새롭게 재편되는 세계질서로부터 시민들의 위태로운 삶을 막아줄 유일한 방패가 국가라면, 그것이 바로 전시상황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21대 국회는 전시국회로 불리워야 하지 않겠는가. 지난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국가를 재발견했다는 것은 그런 의미였다.
 
그러나 국회가 맞이한 전선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대치하고 경제공황을 걱정하는 시민들의 삶 곳곳에 미시적으로 놓여 있으며, 우리가 가는 길은 아직 인류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라는 의미에서 분명한 전시상황과는 다르다는데 판단의 어려움이 있다. 특히나, 우리가 원하는 승리가 자그마한 일상의 회복이라면, 이 전쟁에서 승리를 위해 우리가 그 일상을 얼마나 포기할 준비가 되었는지를 역설적으로 자문해야 할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방역을 위한 개인정보 수집과 활용에서부터 긴급재난지원금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상상할 수 없는 각종 경제정책들과 피할 수 없는 대외정책들에 이르기까지 21대 국회가 떠안은 짐은 전시국회와 일상국회의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내는 일이자, 그것을 지역구민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21대 국회의원들은 지역구민들의 일상과 생명과 안녕을 살필 ‘대리인’의 임무와 함께 나라의 존속과 번영을 고민할 ‘수탁인’의 이중적 역할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면서 한꺼번에 수행해야 할 유례없이 어려운 임무를 새로이 떠맡게 된 셈이다. 그래서 21대 국회는 굳이 이름 붙이자면 일상회복의 국회여야 할 것이고, 그 임기가 끝나기 전에 목표를 이루었으면 한다. 그런 21대 국회의 성공을 마음으로 염원한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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